바다를 끼고 달리는 7번 국도, 환상의 드라이브 코스

[주말이 즐겁다] 강원도 양양 바닷길
바다를 끼고 달리는 7번 국도, 환상의 드라이브 코스

“동해가 보고 싶어요.” 잿빛 도회지에서 정신없이 바쁜 일상을 보내다 문득 어디론가 떠나고 싶을 때, 동해는 영순위에 속할 정도로 인기가 있다. 파란 물결 일렁이는 바다를 한없이 바라보고, 하얀 파도 부서지는 갯바위에서 맘껏 소리도 지르고 싶어서 일 것이다.

동해로 가려면 백두대간을 넘어야 하지만 그다지 먼 곳이 아니다. 몇 년 전 영동고속도로가 지나는 백두대간의 대관령에 터널이 뚫리면서 수도권서 3시간이면 끝없이 펼쳐진 파란 바다와 대면을 할 수 있다. 영동고속도로를 거쳐 동해고속도로 북쪽 끝의 현남 나들목으로 나서면 바로 우리나라 최고의 드라이브 코스인 7번 국도와 곧바로 연결된다.

양양까지 바다를 끼고 이어지는 도로는 동해의 아름다운 풍광을 만날 수 있는 곳이지만 시속 80㎞로 달리면서 해안 경치를 감상할 수는 없다. 중간중간 만나는 항구나 해수욕장이 있는 마을로 들어가 보자. 의외로 고즈넉한 분위기가 넘치는 겨울 바다가 반겨줄 것이다.

국도를 달린 지 5분도 안 되어 만나는 남애항은 해안에 즐비한 바위섬과 방파제로 연결된 두 개의 섬이 한 폭의 그림 같이 펼쳐진 미항(美港)이다. 하조대 남쪽의 기사문(基士門)항도 깨끗한 반원형 백사장이 아담하고 예쁘다. 마을 포구에선 갓 잡아 올린 싱싱한 수산물을 구할 수 있다.


슬픈 전설의 하조대와 등대

기사문항을 빠져 나와 고개를 하나 넘으면 드디어 바닷가 바위 벼랑인 하조대(河趙臺). 꼭대기엔 정자가 독수리처럼 앉아있다. 정자에서 바다를 바라보면 홀로 바다에 솟아난 바위 너머로 파란 물결 일렁이는 동해가 일망무제로 펼쳐진다.

하조대에 전하는 전설 한 토막. 대변혁기인 고려 말엽 하륜(河崙, 1347~1416)과 조준(趙浚, 1346~1405)은 고려가 기울어져 나라가 어지러워지자 벼슬을 버리고 풍광이 좋다는 이곳으로 내려왔다. 두 사람은 여기서 새 왕조 건립의 모사를 했고, 결국 태조 이성계가 등극하자 벼슬길에 오르기 위해 이곳을 떠났다. 그래서 사람들은 두 사람의 성을 따서 하조대라 했다고 한다.

갈매기 날개를 훑고 불어오는 바람이 살며시 들려주는 또 다른 전설은 슬프다. 옛날 인근 바닷가 마을에 용모가 출중한 하(河)씨 성의 젊은이가 살고 있었다. 이웃 마을 조(趙)씨 집안엔 혼기가 찬 두 자매가 있었는데, 그녀들은 둘 다 이 젊은이에게 애정을 품게 되었다.

셋의 사랑은 갈수록 깊어졌다. 그러나 결국 그들은 관습이란 바다를 넘지 못하고 이 절벽 아래로 몸을 던졌다. 그 후 사람들은 이곳을 하조대라 불렀다. 매년 여름, 다른 데보다 유난히 붉은 빛깔로 피어나는 해당화는 이들의 슬픈 넋이라고 한다.

이루지 못한 사랑의 절망감에 몸을 던진 세 남녀의 전설이 더 가슴에 와 닿는 건 건너편 바위에 자리잡은 새하얀 등대 때문인지도 모른다. 푸른 바다와 잘 어울려 한 폭의 아름다운 풍경화를 보는 듯한 하조대 등대는 밤이면 저절로 불이 켜져 동이 틀 때까지 바닷길을 밝혀주는 무인 등대다.

하조대에서 등대로 넘어가는 길목도 제법 운치가 있다. 파도소리 지척인 하얀 등대에 등 기대고 바다를 바라보는 맛도 일품이다. 차 한 잔 마시며 여유있게 파도소리를 들을 수 있는 분위기 좋은 카페도 한 채 있다.

등대를 빠져 나와 다시 작은 고개를 하나 넘으면 하조대 해수욕장이 반긴다. 백사장 모래는 체로 거른 듯 곱다. 겨울바다의 낭만을 즐기며 백사장 걷는 맛이 좋은 이 해안은 그래서 한여름 만이 아니고 겨울에도 인기가 있다.


낙산사 해조음으로 마음을 다스리고

하조대에서 7번 국도를 타고 북으로 달리면 이내 남대천이다. 매년 늦가을 북태평양의 거친 물살을 헤쳐 온 연어떼가 알을 낳기 위해 물길을 거슬러 오르는 장엄한 광경을 상상하면 곧 낙산사(洛山寺). 우리나라에서 바다와 접한 절집 중 가장 전망이 좋다는 汰甄?

범어의 보타락가(Potalaka)산에서 유래해 낙가산(洛迦山)이라고도 불리는 오봉산(五蜂山)은 동네 뒷산처럼 아담하지만, 그 품에 안긴 절집 낙산사는 바다처럼 크고 너르다. 신라의 의상이 관음을 친견함으로써 유래한 이 절집은 우리나라 관음 신앙의 진원지. 당시의 유물과 역사 깊은 당우들은 여러 차례의 전란 속에서 대부분 화를 면치 못했으나 관음 사상만큼은 줄기차게 이어져 왔다.

의상이 정진했다는 관음굴은 거센 파도가 끊임없이 부닥친 뒤 거친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빠져나가는 바닷가 바위굴이다. 후인들은 그 석굴 위에 홍련암이라는 암자를 세워 의상을 기리고 있다. 불단 앞 마룻바닥엔 관음굴을 볼 수 있는 작은 구멍이 뚫려있다.

의상이 관음 친견을 그토록 갈구했던 바다에선, 삶의 무게에 지친 사람들은 달래려는 듯 오늘도 해조음(海潮音)이 끊임없이 들려온다.


△ 숙식 남애항, 기사문항, 하조대해수욕장, 낙산사 입구 등에 식사할 곳이 많다. 하조대 해수욕장 입구에 하우스여관(033-672-2285), 굿모닝하조대(033-672-0089) 등의 여관이 있고, 민박을 치는 집도 많다.


△ 교통 영동고속도로를 타면 수도권 등지에서 당일로 다녀올 수 있다. 영동고속도로→강릉분기점(주문진 방향)→현남 나들목→7번 국도(양양 방향)→2km→남애항→9km→하조대→13km→양양→4km→낙산사. 또 서울에서 한계령을 넘는 방법도 있다. 서울→양평→홍천→인제→한계령→양양→7번 국도(강릉 방향)→10km→하조대.

민병준 여행작가


입력시간 : 2003-12-05 10:46


민병준 여행작가 sanmin@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