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참혹함을 잊기 위해 스스로 마법에 걸린 공군 비행사애니 거장 미야자키의 오리지널 스토리, 향수 불러오는 '낯익음'

[시네마 타운] 붉은 돼지(Porco Rosso)
전쟁의 참혹함을 잊기 위해 스스로 마법에 걸린 공군 비행사
애니 거장 미야자키의 오리지널 스토리, 향수 불러오는 '낯익음'


한국에서 제일 먼저 선보인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은 <이웃집의 토토로>(1988)로 제작년도 보다 십년이 더 지나고 나서 개봉이 되었다.

그 후 <원령공주>로도 잘 알려졌던 <모노노케 히메>(1997)가 저화질 비디오로 밖에 감상할 수 없었던 미야자키의 팬들을 극장으로 불렀고, 그리고 작년에 개봉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2001)이 국내에서도 큰 성공을 거두었다. 몇 년 사이에 국내에서는 복사판 비디오로 밖에 볼 수 없었던 그의 애니메이션들이 연달아 극장에서 개봉되면서 미야자키의 인기를 확인시켜주었는데, 그에 힘입어 이번 주에는 미야자키의 오리지널 스토리로 제작된 다섯 번째 작품인 <붉은 돼지>가 한국 관객들에게 선을 보인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이름을 몰라도 한국에서 성장한 대다수의 사람들은 어렸을 때부터 텔레비전을 통해 <알프스의 소녀 하이디>(1974), <엄마 찾아 삼만리>(1976), <미래소년 코난>(1978), <빨강머리 앤>(1979) 등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아마 미야자키의 애니메이션들이 무엇보다도 친근하게 여겨지는 것은 그의 작품의 주제나 내용에서 찾을 수도 있지만, 특별히 일본 작품이라는 생각도 없이 마냥 즐겁게 시청했던 어렸을 적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낯익음’이 아닐까 싶다. 부드러운 선과 따뜻하고 밝은 색채감과 더불어 한없이 선해보이면서도 의지가 강하고 용기와 호기심이 강한 주인공(주로 어린이나 청소년)들과 아주 가깝다고 느꼈던 기억이 성인이 된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 남아있을 것이다.

물론 한국 관객이 가지고 있는 미야자키 작품에 대한 공통된 경험은 일본 관객이 느끼는 친근함과는 질적으로 차이가 있겠지만, 최근 미야자키 에니메이션들을 극장에서 오랫만에 관람했던 사람들은 순간순간 하이디의 미소와 코난의 모험심을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미야자키의 작품은 공식적으로 불과 2년에 걸쳐 세 편이 개봉이 됐지만 한국에서는 상당한 시간에 걸쳐 그의 스타일과 이야기에 매혹당해온 관객층이 넓다고 할 수 있다.


1차 대전 이후 유럽의 공허함 그려

앞에서 언급한 세 편의 작품들은 배경이 모두 일본이지만, <붉은 돼지>는 미야자키가 장면설정과 화면구성 혹은 감독을 했던(<미래소년 코난>은 감독이었고 나머지는 장면설정과 화면구성을 담당했다) 70년대 작품과 유사하게 배경이 유럽이다.

1차 대전후 전쟁으로 인한 허무함과 경제적 어려움이 지배하고 있던 때, 뚱뚱한 인간의 몸과 돼지 얼굴을 한 포르코 로소는 붉은 색 비행기를 몰며 하늘의 해적(공적ㆍ空敵)들을 소탕하고 거액의 보상금을 타내는 일로 유명하다. 그는 이탈리아의 아드리아해 무인도에 숨어 살며 가끔 오랜 친구 지나가 운영하는 아드리아노 호텔에 들러 그녀의 노래를 듣거나 담소하며 저녁을 먹는다. 지나는 포르코의 마법이 풀리기를 바라며 마르코라는 옛이름을 부르지만 포르코는 과거 이야기를 꺼내기 싫어한다.

하지만 포르코의 과거는 그가 비행기를 수리하기 위해 피콜로에게 찾아가 비행기 공학을 전공한 피콜로의 손녀 피오를 만나게 되면서 피오의 질문으로 인해 서서히 베일을 벗는다. 대사로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전쟁의 참혹함을 잊기 위해 스스로 마법을 걸어 돼지가 된 전직 공군 비행사였다는 사실이 포르코의 회상을 통해 드러난다.

대단한 비행기 액션은 전쟁 장면에서도 등장하지만 내러티브의 축이기도 한 미국인 비행기 조종사 마이클 커티스와 포르코의 대결장면에서도 보여진다. 공적들은 자신들의 힘으로는 포르코에게 대적할 수 없다고 판단되자, 커티스를 고용하게 된다.

아름다운 여성만 보면 결혼하자고 달려드는 단순함이 매력(?)인(커티스를 통해 1차대전후 강국이 된 미국과 할리우드를 조금은 비웃고 있는 듯 보이竪?한다) 커티스는 포르코와 비장한 결투보다는 유머가 넘치는 코믹한 대결을 펼치게 된다. <붉은 돼지>는 결국 전쟁의 황폐함과 비극보다는 낭만적이고 서정적인 감정이 충만하게 펼쳐지고 유쾌한 종말을 맞는다.

미야자키의 최근 작에서 돋보이는 어린 소녀의 강인함은 피오를 통해서도 발견된다. 여자에다가 나이가 어리다고 불평하는 포르코를 실력과 노력으로 놀라게 하고, 순수하고 진실됨으로 포르코의 친구가 되며, 그리고 나중에는 파트너가 될 뿐만 아니라, 이 애니메이션 영화의 마지막 이야기를 보이스 오버 나래이션으로 처리하는 중요한 인물이기도 하다.

또한 지나는 아름다운 외모와 더불어 모든 남성들의 마음에서 증오를 사라지게 하는 매혹적인 목소리로 샹송을 멋지게 부른다(이점이 영화의 배경이 프랑스인지 이탈리아인지를 헷갈리게 하는 요소이기도 하다).

그녀는 젊은 시절 포르코와 그의 친구들과 함께 비행클럽을 결성하고, 연이어 파일럿 세 명과 결혼하지만 모두 전쟁과 사고로 그녀 곁을 떠났고, 지금은 포르코를 마음에 담고 있다. 부유하며 매력적인 지나는 그러나 비밀요원(아마 프랑스에서 일하고 있는 이탈리아 공군을 위한?)이기도 하고 매순간 폭력적인 상황을 해결하는 평화의 여신과도 같은 존재로 그려진다.


따뜻하고 정감있는 이야기

피오와 지나 이외에도 비행기 조종사들이 주인공인 이 이야기에는 의외로 여성들이 더 많이 등장한다. 바로 피콜로의 비행기 제작사에서 포르코의 비행기 제작하는 인력들이다. 남성들은 일자리를 찾아 모두 떠났기 때문이라며 피콜로는 다양한 연령대의 자신의 친척 여성들을 모두 불러 비행기를 만들게 한다.

그리고 피오와 더불어 그들이 훌륭한 작업을 해낸다며 포르코를 안심시킨다. 그리고 그들 모두는 포르코가 비밀경찰에 붙잡히지 않고 무사하게 비행기를 몰고 이탈리아를 탈출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미야자키의 최근 작들이 자연과 인간에 대한 대서사시라는 점과 비교해보면 <붉은 돼지>는 좀 소박하고 단순한 이야기라고 여겨진다. 그러나 프랑스와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포르코, 지나, 피오의 이야기는 오히려 대서사극의 장엄한 철학적 주제들보다 따뜻하고 정감있게 다가온다. 이 단순하고 소박하다는 평가는 서사극의 복잡한 내러티브의 미로에 빠지지 않으면서 즐길 수 있는 대중영화의 장점이라는 측면에서 칭찬이다.

시네마 단신
   

이수연 감독, 시체스 영화제서 시민 케인상 수상

<4인용 식탁>의 이수연 감독이 바르셀로나에서 막을 내린 36회 시체스 영화제에서 'Citizen Kane'(시민 케인)상을 수상했다. 시체스 영화제는 브뤼셀 국제 판타스틱 영화제, 포르투갈의 판타스포르토 영화제와 함께 세계 3대 판타스틱 영화제 중 하나. 'Citizen Kane'상은 신인감독상으로, 한국 감독의 수상은 이번이 처음이다.


<디 워> 1,500만 달러 외자유치 성공

영화제작사 영구아트는 신작영화 <디 워>가 북미 지역 개봉 수익의 50%를 주는 조건으로 미국의 투자전문회사 락우드(Larkwood)와 1,500만 달러의 외자 투자 유치를 계약했다고 밝혔다. <디 워>는 용이 되기 위해 여의주를 차지하려는 이무기들의 싸움을 그린 SF 영화로, 이미 국내에서 미니어처 촬영을 시작했으며 내년 2월 초부터 LA에서 드라마 촬영에 들어간다.


입력시간 : 2003-12-17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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