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갈의 '결혼' 해피엔딩을 암시하다

미술은 언어이다. 하지만 너무나 개인적이고 독창적인 까닭에 우리는 그들의 언어의 독해에 어려움을 느낀다. 그러나 미술작품이 지닌 뜻을 헤아리고 그 작품을 통해 영화를 이끌어 가는 계기로 삼거나 영화의 반전을 암시하는 장치로 사용해 왔다.

이렇게 영화 속에 미술은 영화의 또 다른 은유나 비유로 활용되면서 영화의 완성도를 높여왔다. 영화 속의 미술이야기를 통해 영화의 미술의 통섭의 세계를 만나보았으면 한다.

2. <노팅 힐>(1999)/샤갈(Marc Chagall) ‘결혼’ 등

3. <바닐라 스카이>(2001)/모네(Monet) 그림

4. <종횡사해>(1991) <화가 모딜리아니>(2004)/모딜리아니(Amedo Modigliani) 그림

5. <퐁네프의 연인들> / 렘브란트(Rembrandt) 그림

6. <미스터 빈>(1998)/제임스 에보트 맥닐 휘슬러(James Abbott McNeill Whistler) 의 ‘화가의 어머니’

영화에서 소품처럼 등장하거나 때로는 관객들이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곳에 걸려있는 작은 그림 한 점이 영화의 전체를 상징하거나 결말을 암시하는 도구로 사용되기도 한다. 이렇게 영화와 미술작품은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면서 영화를 보는 재미를 더해준다. 멋진 영화에서 아름답고 눈에 익은 그림을 발견하는 즐거움은 영화를 보는 즐거움을 배가시킨다.

여행전문서적을 파는 헌책방 주인과 당대 최고의 인기여배우의 사랑을 그린 로맨틱 코미디 노팅 힐(Notting Hill, 1999, 영국, 123분)도 그런 대표적인 영화중 하나이다.

로저 미첼(Roger Michell, 1956~ ) 감독이 만들고 줄리아 로버츠(Julie Fiona Roberts)와 휴 그랜트(Hugh Grant)가 출연한 이 영화는 어딘가 <네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1994)과 닮아있다. 그 이유는 리차드 커티스(Richard Whalley Anthony Curtis)가 대본을 쓴 탓이다.

영화 <미스터 빈의 할리데이>(2007)와 <브리짓 존스의 일기>(2001)의 대본도 맡았던 그는 코미디 영화면서도 아기자기한 재미가 곳곳에 숨어있는 영화이다.

런던의 작은 동네에 윌리엄 데커(휴 그랜트 분)가 운영하는 작은 책방에 유명한 여배우가 등장한다. 영화 홍보 차 런던에 들른 안나 스콧(줄리아 로버츠 분)과의 운명적 만남은 이렇게 작은 책방에서 시작된다. 마치 낙랑공주를 만나는 호동왕자처럼 윌리엄은 유명 여배우와 사랑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영화의 재미를 배가시키는 여러 가지 복선과 사건 그리고 장치들에 의해서 영화는 더욱 더 관객들을 영화 속으로 빠져들게 한다.

하지만 이런 두 사람간의 비 대칭적인 신분과 처지로 인해 더 많은 오해와 불신은 계속되면서 영화는 엎치락뒤치락하면서 전개되지만 이 영화의 앞부분에서 주스를 쏟아 옷을 버린 안나가 윌리엄의 집에 들어설 때 현관복도에 걸려있는, 그리고 윌리엄과 안나가 식탁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눌 때 뒤로 보이는 작품이 있다.

이 영화가 해피엔딩으로 끝 날 것이라는 사실을 암시해주는 이 작품은 다름 아닌 러시아 출신의 유태인 화가 샤갈(Marc Chagall, 1887~1985)의 <결혼>(1950)이라는 작품이다.

보색관계인 푸른색과 붉은색을 가장 아름답고 조화롭게 사용할 줄 아는 화가 샤갈이 그린 이 그림은 그의 초현실주의 화가로서의 면모를 잘 드러내주는 작품이다.

일반적인 초현실주의적인 화가들과는 달리 몽환적이고, 서정적이며, 이야기가 있는 샤갈의 작품의 바탕에는 그의 고향인 러시아의 비데프스크의 유대인마을에서 나고 자란 그의 어린 시절과 깊은 관련이 있다. 하지만 그가 세계적인 화가로 성장하는 데는 또 다른 힘이 작용했다.

그것은 바로 여성이었다. 그는 어머니와 아내 벨라 로젠필드(Bella Rosenfeld)의 보호와 배려 그리고 도움으로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그리고 1944년 벨라가 세상을 떠나자 그는 거의 1년 동안 붓을 들지 못했다. 그가 다시 그림을 시작하게 되는 것은 그의 딸 이다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벨라가 죽은 지 8년 후에 발렌티나 브로드스키(바바)와 재혼을 하게 된다.

여성편력이 일반적인 것처럼 알려진 화가들과는 달리 샤갈은 진정으로 벨라를 사랑했고 그 후 재혼한 바바에게도 오직 하나 뿐인 사랑을 바쳤다.

4- 파리의 아파트(오를레앙 가 110번지)에서 즐거운 한때를 보내던 샤갈, 벨라, 이다
5- '파란 얼굴의 약혼녀' 1939~60년
6- '신랑 신부' 1927~35년

사색에 잠긴 듯 한 강렬한 푸른색의 암소, 바이올린을 켜는 붉은 얼굴의 여인과 여인의 어깨에 앉은 새, 양복을 입은 당나귀와 포옹하면서 행복한 미소를 짓는 여인, 날개달린 물고기가 하늘을 날고, 이렇게 한결 같이 몽환적이고 꿈 속 같은 그림을 그린 이가 샤갈이다. 마치 달콤하면서도 쓴 사랑처럼, 사랑에 빠진 이들의 이루 말 할 수 없는 감성을 쏟아내듯 화폭에 담아낸 작가인 것이다.

가난한 집안의 9형제 가운데 장남으로 태어난 샤갈은 현명한 어머니 덕택에 노동자로서의 삶을 모면하고 화가가 될 수 있었다. 어머니의 정성을 다했고 그래서 그는 어른이 되어서도 응석받이 어린애처럼 행동했으며 자기중심적인 성격이 굳어갔다. 하지만 그는 공상가였고 잠이 들지 않고서도 꿈을 꿀 줄 아는 사람이었다.

이렇게 일관된 샤갈의 아내에 대한 사랑은 영화 노팅 힐의 해피엔딩과도 잘 어울린다.

사실 그의 그림의 대부분은 벨라와의 사랑에서 영감을 받았거나 그녀와 함께 지내던 고향마을에 대한 향수를 꿈꾸듯 그려낸 것이다. 그에게 그녀는 늘 순결하고 수줍은 신부였고, 그녀는 자신보다 나이는 많지만 타고난 예술성 외에 현실적인 대안이 없는 어린아이 같은 이 남자를 위해 현명한 동반자가 되어주었다.

아마도 이런 그 둘 사이의 지고지순한 사랑 때문에 그의 작품 <결혼>이 이 영화에서 등장하는 것은 아닐까. 몰론 극작가 커티스가 샤갈의 팬이고, 그림이 "상실한 무언가의 그리움을 표현했기" 때문에 선택했다고 하지만 아무래도 전자에 무게를 두게 되는 것은 누구나 로맨틱한 사랑을 꿈꾸기 때문은 아닐까.

안나와 윌리엄이 테이블에 앉아 있고 그 뒤 벽에 샤갈의 <결혼>이 걸려있다.

안나; 당신이 저런 그림을 가지고 있다니 믿기지 않는데요.

윌리엄; 샤갈을 좋아하는군요?

안나; 네 무척이나. 사랑에 빠질 때 기분을 좋아하죠. 짙은 청색 하늘을 떠다니는.

윌리엄;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염소와 함께.

안나; 네, 그래요.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염소가 없다면 그건 행복이 아니죠.

물론 이 대목에서 보이는 작품은 샤갈의 <결혼>은 포스터이다. 진품이 아닌 것이다. 어디 작은 책방 주인의 형편으로 샤갈의 원화라는 것이 가당키나 할까.

하지만 안나는 윌리엄에게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기 위해 샤갈의 <결혼>원화를 가져와 선물로 주면서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지만 윌리엄은 거절한다. 안나가 자신의 호텔로 돌아가고 그제야 윌리엄은 후회를 하며, 그녀를 잡으러 뛰어간다.

그 후 모든 것이 잘 되어 안나가 윌리엄의 집에 들어설 때 포장된 그림 한 점을 들고 온다. 이즈음에서 속없는 관객들은 샤갈의 수백 억 하는 그림 값을 떠 올리며 당대 최고의 여배우와 비싼 그림을 함께 갖게 된 소심한 남자 윌리엄이 부러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줄리아 로버츠의 연기는 역시 사랑 앞에서 누구나 약해지고 그것을 고백하기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그대로 보여준다. 마치 “하지만 사랑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예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라는 말처럼.

◇ 정준모는…

중앙대를 졸업, 홍익대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동숭아트센터를 거쳐 토탈미술관 큐레이터로 10여년을 근무했다. 이후 1995년 제1회 광주비엔날레 전시부장 겸 전문위원, 대변인으로 활동했으며, 1996년부터 2006년 봄까지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관과 학예연구실장 그리고 덕수궁미술관장을 지냈으며 1996년 제 1회 후쿠오카 아시아 트리엔날레의 커미셔너로 일한바 있다. 현재 재단법인 고양문화재단의 전시감독으로 큐레이터로, 미술행정, 문화정책과 관련하여 일하고 있으며, 홍익대·중앙대·고려대·국민대 대학원 등에 출강하고 있고 한국미술품 감정연구소 감정위원으로 활동중이다.



글/ 정준모(미술비평, 문화정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