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5세까지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게임, 개인주의 산물서 시대 아이콘으로

이달 30일‘한국판 닌텐도’출시를 앞두고 세간이 떠들썩하다. 국내 중견 게임기제조사인 게임파크홀딩스가 선보이는 ‘GP2X 위즈’는 국내 최초의 휴대용 게임기다. “닌텐도 게임기 같은 것을 개발할 수 없느냐”던 이명박 대통령의 언급으로 자연스럽게 유명세를 탔다.

이 대통령의 언급에서 드러나듯, 이제 닌텐도는 단순한 게임 산업이 아니라 문화를 바꾼 시대의 아이콘이 됐다.

닌텐도의 대표 상품, 닌텐도 DS는 출시 4년 3개월만인 지난 3월 1억대의 세계 판매량을 기록했다. 게임 소프트웨어를 텔레비전에 접목시킨 닌텐도 위(Wii)는 3000만 대가, 닌텐도 위 핏은 1000만 대가 팔렸다.

화투에서 게임기로 이어진 닌텐도의 성장을 두고 한 전문가는 “기술력에 문화가 접목될 때 어떤 부가가치가 창출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고 말한다.

닌텐도로 달라진 사회상, 어떤 것이 있을까?

닌텐도, 개인주의 문화의 상징?

2007년 여름, 미국 월 스트리트에 재미있는 풍경이 연출됐다. 바로 월 스트리트의 상징적 존재인 경제 애널리스트들이 새로 출시된 ‘닌텐도 DS’를 사기 위해 가게 앞에 장사진을 치고 있었던 것. 새벽부터 이어진 줄은 건물 전체를 둘러쌌다.

당시 월가에서 일했던 한국인 K씨는 “월스트리트 애널리스트들은 하루 12시간 이상의 고된 노동을 하면서 대부분 인간관계가 단절된다. 휴일이나 쉬는 시간을 혼자 보낼 때가 많은 데, 이때 공허감을 떨치기 위해 닌텐도 게임을 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일본의 개인주의 문화에서 탄생한 닌텐도 DS가 자본주의 핵심부인 미국에서도 통했다는 말이다. 일본 게임전문지 ‘닛테이엔터테인먼트’의 편집인 시나다 씨는 “일본은 오타쿠 문화처럼 개인주의를 선호하기 때문에 콘솔게임이 유행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일본의 개인주의 문화는 게임을 비롯한 문화산업 전반에 나타난다. 일본 전철에서 젊은 직장인이나 학생들이 닌텐도 게임기를 들고 혼자 게임에 열중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주목할 점은 닌텐도로 대표되는 개인주의 문화가 이제 한국의 10~20대 세대에게 고스란히 드러난다는 사실이다.

대학생 박광현(24) 씨는 광고를 보고 호기심에 닌텐도 DS를 구입했다. 그는 집과 학교를 오가는 차안에서, 수업을 기다리는 공강 시간에,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다 머리가 복잡해지면 닌텐도로 게임을 즐긴다. 짜투리 시간을 닌텐도로 보내면서, 또 다른 21세기 아이콘, 인 ‘아이팟’은 더 이상 쓰지 않는다. 음악 대신 게임을 선택한 셈이다.

박 씨는 “요즘 대학생들은 1학년 때부터 취업준비를 하기 때문에 혼자 시간표를 짜고 수업을 듣는 경우가 많다. ‘나홀로 족’이 늘어나는데, 닌텐도로 사람들과 대화를 더 하지 않는 면도 있다”고 말했다.

10대에서 ‘닌텐도 현상’은 더 두드러진다. 30명이 평균 정원인 초등학교 한 반에서 닌텐도를 갖고 있는 아이는 적게는 5,6명에서 많게는 15명이 된다. 초등학교 교사 구봉주 씨(28)는 “닌텐도를 갖고 있는 아이들은 소프트웨어를 공유하면서 자연스럽게 친해지는 것 같다.

그렇지만, 닌텐도 게임을 하면서 혼자 놀게 된다. 닌텐도가 없는 아이는 닌텐도가 없기 때문에 혼자 논다. 이제 닌텐도를 갖고 있는 아이와 닌텐도를 갖고 있지 않은 아이로 나뉜다”고 말했다.

세계인의 놀이문화

닌텐도가 단지 개인주의의 산물이라면 어떻게 시대의 아이콘으로 부상할 수 있었을까?

바로 게임문화의 향유 계층을 폭발적으로 늘렸기 때문이다. 닌텐도로 인해 10대는 물론, 50~60대 중장년층도 게임문화를 접하게 된 것이다.

게임 전문가들은 닌텐도의 성공 비결에 대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가족 게임’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실제로 닌텐도의 타깃은 ‘5세부터 95세’까지다. 이에 맞춰 닌텐도는 전형적 ‘오타쿠’(특정 분야에 광적인 집착을 보이는 사람)문화인 게임 산업에서 탈피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쉬운 게임’을 출시해왔다. 폴더형 소형 게임기에 터치 패널을 이용한 ‘닌텐도 DS’가 그랬고, 특별한 조작 없이 게임을 즐기는 ‘닌텐도 위(Wii)’가 그랬다.

특히 닌텐도 위의 경우 게임 문화의 계층을 넓히는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 동작 인식 기능으로 실제 운동을 즐기는 듯한 느낌을 주는 닌텐도 위 핏은 게임 산업의 주 타깃인 남성보다 여성과 중장년층을 노린 게임기다. 닌텐도가 한국에서 TV광고를 내보낼 때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닌텐도 위핏(Wii Fit)전용 보드 판에 올라 요가와 근력 운동을 하는 장면을 내세워 세 살부터 여든까지 즐기는 게임임을 강조했다.

그 결과 ‘그레이 얼리 어답터’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회사원 한영준(31) 씨는 지난 설날에 닌텐도 위를 갖고 고향집을 방문했다. 온 가족이 모인 저녁에 닌텐도로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였다. 조카들이 게임을 반길 것이라는 기대도 잠시, 정작 닌텐도를 즐겼던 것은 어린 조카가 아닌 50대 어머니였다.

“어머니가 많이 신기해 하셨어요. 아들 둘만 있는 집이라서 어머니가 저와 뭔가를 함께 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데, 같이 할 거리가 생겨서 좋아하셨습니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손자, 손녀와 오락하면서 즐거워 할 수 있다는 데 신선한 느낌이 들었어요.”

한 씨는 “그 후 부모님이 닌텐도 위를 즐겨 사용한다”고 덧붙였다.

닌텐도가 가져온 사회현상에 대해 서울대 국제대학원 김현철 교수는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이 닌텐도 위(Wii)로 볼링 게임을 즐기고, 미국 공립학교에서 닌텐도 두뇌 게임을 활용해 교육하는 현상까지 벌어지고 있다”고 말한다.

닌텐도로 세대와 국가를 초월한 게임문화가 탄생했다는 말이다. 김현철 교수는 “닌텐도는 하나의 상품이 아니라 우리 생활문화까지 바꾸는 괴력을 발휘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