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아트프리즘] 후세인 샬라얀의 미디어 패션 미학

후세인 샬라얀의 작품

스페인이 낳은 불멸의 건축가 가우디는 건축물을 인간의 몸에 비유하였다. 인간의 몸이 뼈와 살로 이루어져있듯이 건축물 또한 뼈에 해당하는 구조물과 살과 피부에 해당하는 외피로 이루어져있다는 것이다. 이 기준으로 보자면 벽은 상당히 애매하다.

외벽이든 내벽이든 상관없이 벽은 대체로 외피로 보아야 타당하겠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벽이 외부와 내부 혹은 내부들 공간을 나누는 칸막이 벽(curtain wall)으로 볼 때의 이야기다. 하지만 벽은 하중을 받치는 기둥의 역할도 한다. 이런 벽을 내력벽(load bearing wall)이라고 한다. 이렇게 보자면 벽은 건물의 중요한 구조물, 즉 뼈에 해당된다. 벽의 정체성이 모호해지는 것이다.

벽의 정체성에 대한 문제는 벽에 미디어를 활용하면서 더욱 복잡해진다. 가령 압구정동 에 있는 갤러리아 백화점의 외벽이 그 한 예가 된다. 조명장치를 활용한 이 외벽은 네덜란드의 유명한 건축 사무소인 UN 스튜디오를 이끌고 있는 건축가 벤 반 베르켈(Ben Van Berkel)의 작품이다.

이 건물이 고급의류를 주로 판매하는 의류전문 백화점이라는 점에 착안하여 그는 건축을 통해서 어떻게 4계절의 패션변화가 주는 느낌을 전달할 수 있을지 고민하였다. 고민의 결과 역동적 변화를 위해서 외벽에 무지개 빛깔의 포일이 부착된 4,830개의 유리 원형 판을 달고 이 원형 판 각각에 조명장치를 연결하였다.

독특한 점은 해가 지면 그날의 기상조건에 따라 벽은 다른 색깔의 빛을 띠게 된다는 것이다. 환경의 변화에 따라서 벽이 다르게 반응하도록 설계한 것이다.

UN 스튜디오의 작업이 갖는 의의는 단순히 벽에 미디어를 결합하였다는데 있지 않다. 또한 건물 자체를 마치 화려한 패션처럼 패셔너블하게 만들었다는데 있지도 않다. 비록 기술적으로 초보적인 상태에 머물고 있지만, 이 작업은 전통적인 벽에 미디어를 결합함으로서 벽 자체의 본질에 대한 물음을 제기하고 있다는 데서 큰 의의가 있다.

벽이란 칸막이 혹은 기둥의 보조물이라는 기존의 도식을 파괴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벽은 원래 외부와 내부를 차단하는 ‘가로막음’ - 말 그대로의 벽 - 이 아니라 공간적 연속을 이루는 인터페이스라는 사실을 자각하게 만든다.

디자인을 인터페이스의 창출과정으로 본 기 본지페(Gui Bonsiepe)의 통찰을 적용하면, 벽을 디자인한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외부와의 차단을 위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인간의 몸과 외부환경과의 소통을 위해서 디자인된 것이다. 벽이 불변적인 육중한 구조물이나 차단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외부의 환경에 따라 유연하게 가변적으로 반응할 수 있다는 사실은 벽에 대해서 다시 근본적으로 통찰을 유도한다.

동시에 벽과 미디어의 결합, 아니 더 정확하게는 미디어화된 벽은 단순히 미디어가 건축의 영역으로까지 확장될 수 있다는 단순한 가르침이 아닌 벽 자체가 미디어라는 근본적인 진리를 새삼 각성시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패션 디자이너 후세인 샬라얀(Hussein Chalayan)의 작업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일반인들의 눈에는 그 자체가 파격적으로 보이는 패션계 내에서도 샬라얀의 작품은 파격적인 작업으로 눈길을 끌고 있다. 이슬람 문화에 바탕을 둔 터키출신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업은 매우 전위적이다. 소재면에서도 그는 매우 전위적인 소재들을 사용한다.

심지어 합성비닐로 만든 버블을 옷감으로 사용하는데, 이렇게 만든 옷은 외관상 전혀 옷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이다. 하지만 그의 작업이 파격적인 이유는 이러한 소재의 사용에 있는 것이 아니라 패션에 테크놀로지를 결합하였다는 사실에 있다.

가령 한 모델은 몸에 간단한 천을 두르고 모자만 쓴 채 등장한다. 그런데 이 모자는 생김새부터 뭔가 특이하다. 마치 비행접시 모양에 소재 또한 천이 아닌 반투명한 합성플라스틱 소재이다. 모델이 워킹을 중지한 순간 몸에 걸쳐있던 옷은 모자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마치 비행접시 속으로 물건이 빨려 들어가는 모습이다.

또 어떤 모델의 경우에는 망토의 목덜미 부분이 갑자기 올라와서 머리를 덮는다. 마치 컨버터블 자동차의 스위치를 작동할 경우 덮개가 자동으로 올라와서 차의 몸체를 덮는 것과 같은 모양이다.

심지어 예외적으로 평이해 보이는 짧은 드레스마저 테크놀로지를 통해서 극적인 반전효과를 제공한다. 기계로 제어되는 드레스의 치마는 전혀 손이 닿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우산을 펴듯이 스스로 펼쳐진다. 모델이 걸친 재킷 또한 전자장치에 의해서 저절로 단추가 풀리고 벗겨진다. 처음부터 범상치 않아 보이는 비늘 모양의 갑옷 치마 역시 전동장치에 의해서 저절로 펼쳐진다.

테크놀로지를 이용한 샬라얀의 작품은 획기적인 아이디어라는 측면에서 뿐만 아니라 그 미학적인 아름다움 때문에 엄청난 파격성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극찬을 받고 있다. 그는 분명 옷에 미디어 테크놀로지를 결합한 매우 창조적인 작가임에 틀림없으며 극찬의 대접 또한 마땅하다. 하지만 이를 통해서 망각하지 말아야 할 사실이 있다.

그것은 그의 작업이 갖는 중요한 의미가 단지 미디어 테크놀로지를 미학적으로 세련되게 패션과 결합하였다는 것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건축에서 미디어를 활용한 벽이 그러하였듯이, 샬라얀의 작업은 옷 자체가 무엇인지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옷은 헝겊으로 만들어져서 우리 몸을 보호하거나 혹은 우리의 신체적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장식으로 환원될 수 없는 그 무엇이다. 벽이 그러하듯이 옷 또한 우리 신체의 내부와 외부 환경을 연결하는 하나의 인터페이스이다. 그런 점에서 옷은 미디어임에 틀림없다.

샬라얀의 작품은 옷에 미디어 테크놀로지를 결합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를 통해서 옷 자체가 하나의 미디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박영욱 연세대학교 미디어아트연구소 HK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