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서화감상전 '안목(眼目)과 안복(眼福)']삼원·삼재 등 출품작 80% 처음 공개… 예술성·사료적 가치 높아

1-단원 김홍도 '오원아집소조'
2-다산 정약용 '의증종혜포옹매조도'
3-다산 정약용 '여성화초천사시사첩'

지난 10일 오후, 서울 인사동 초입의 ‘공화랑’ 은 조선시대 명품 서화를 모은‘안목(眼目)과 안복(眼福)’전을 보기 위한 관객들로 발디딜 틈이 없었다.

요즘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고서화(古書畵)’ 전시인 것을 감안하면 이례적인 현상이었다.

단순히 사람만 많은 것이 아니었다. 학계의 내로라하는 저명 인사들과 문화재 전문위원, 고서화 전문가뿐 아니라 한국 고미술품에 관심 있는 외국인도 여럿 눈에 띄었다. 한국 문화재를 다수 소장하고 있는 일본 대화(大化)문화관의 요시다히로시(吉田更志) 학예실장은 연신 감탄하며 서화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는 서울대에서 동주 이용희 교수에게 사사받을 정도로 일본의 대표적인 한국 고미술 전문가이다. “전시 소식을 전해듣고 한걸음에 달려왔습니다. 처음 보는 작품들이 많아 그야말로 안복(眼福)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는 한국의 옛 서화에 대해 잘 알고 있는데 전시 작품 수준이 무척 높고 처음 대하는 것이 대부분이어서 사료로서도 가치가 크다고 전문가다운 평을 했다. 한국 고미술에 정통한 문화재 전문위원은 “조선 회화사를 다시 쓸만한 전시”라고 말했다.

‘안목과 안복’전에는 삼원(三園 :단원 김홍도ㆍ혜원 신윤복ㆍ오원 장승업)과 삼재(三齋 :겸재 정선ㆍ현재 심사정ㆍ관아재 조영석)를 비롯해 정약용, 이정, 김명국, 허현 등 조선시대 회화 대표작가 50여명의 서화와 친필 서신, 도자기 100여 점이 선보인다.

공화랑은 이번 전시를 위해 1년 가까이 심혈을 기울였다. 소장가들로부터 뜻을 얻어냈고 최고 전문가들의 감수를 받아 작품을 엄선했다. 2007년 ‘9인의 명가비장품전’ 이후, 오랜만에 조선시대 명품서화를 감상할수 있는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공화랑의 공창호 회장은 “출품작의 80%가량은 그 동안 전시된 적이 없던 최초 공개작들로 조선시대 명품들의 진면목을 통해 고미술의 흐름을 짚어보는 값진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산 정약용의 친필 서화를 비롯해 액자, 간찰 등 처음 공개되는 5점은 사료적 가치와 예술성으로 인해 특히 주목을 받는다. 정민 한양대 국문과 교수는 “그간 알려지지 않았던 다산의 새로운 면모들이 속속 밝혀지게 되었다”며 “서화가로서 다산의 숨겨진 면모가 유감없이 발휘되었다”고 평가했다.

다산이 1813년 유배지인 강진 자하산방(다산초당)에서 그리고 쓴 ‘의증종혜포옹매조도((擬贈種蕙圃翁梅鳥圖)’는 매화를 그린 소품이지만 정갈하면서도 내력이 깊어 눈길을 끈다.

“묵은 가지 다 썩어서 그루터기 되려더니/푸른 가지 뻗어 나와 꽃을 다 피웠구려/

어디선가 날아온 채색 깃의 작은 새는/한 마리만 응당 남아 하늘가를 떠도네.“

그림에 곁들인 7언절구 시는 유배 시절 다산이 소실에게서 얻은 딸에게 보내는 애틋한 심정을 담은 것이라고 한다. 고미술품 전문가인 공창호 회장은 “매조도의 가치도 의미 있지만 다산의 행서는 명필의 반열에 들어도 손색없을 만큼 빼어난 예술성을 갖추고 있다”고 밝혔다.

4-현재 심사정 '지두절로도해'
5-추사 김정희 사서루

처음 공개되는 단원 김홍도의 ‘오원아집소조(梧園雅集小照)’는 늦은 오후 조선시대 선비들이 여유롭게 노는 모습을 그림자까지 묘사한 수작이다. 단원의 자화상을 가늠할 수 있고 당시 의상, 악기, 풍속 등을 종합적으로 볼 수 있어 학술적 가치가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단원의 또 다른 작품 ‘산사귀승도(山寺歸僧圖)’는 만년기 화풍이 잘 드러나 있다.

심사정의 만년 작품 '하우씨치수도8폭병풍(夏禹氏治水圖八幅屛風)' 은 장대한 화면에 펼친 웅대한 구도와 힘찬 필치로 산수화의 진면목을 잘 보여준다. 심사정의 ‘지두절로도해(指頭折蘆渡海)’는 붓 대신에 손의 일부, 즉 손가락, 손톱, 손등, 손바닥 등을 이용해 그린 작품으로 작가의 천재성을 보여준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공화랑 공상구 본부장은 “달마대사가 갈대 잎을 타고 양자강을 건넌다는 묘사나 손의 일부를 사용해 그림을 그린 것은 현대 회화에서도 찾기 힘든 상상력과 놀랄만한 화법”이라고 평했다. 대학(서울대, 고려대)에서 고미술을 전공한 공 본부장은 “조선 회화의 르네상스라는 영ㆍ정조 시대의 작품들은 내용이나 묘사에서 세계적 수준이라 할만하다”고 말했다.

그외 강세황의 ‘산수도(山水圖)’ 대작, 삼성 리움미술관 소장의 ‘오수도(午睡圖)’와 대련되는 이재관의 ‘전다도(煎茶圖)’, 최북의 미공개 수작 등이 눈길을 끈다.

서예에서는 허목의 미수 명품이 처음 선보이고, 추사 김정희의 명작으로 익히 알려져 있는 ‘도덕신선(道德神僊)’과 ‘사서루(賜書樓)’가 이번에 공개됐다.

공창호 회장은 이번 전시를 ‘오감도(五感圖)’에 비유한다. 귀로 듣고, 눈으로 보고, 머리로 생각하고, 마음을 열고, 이 모든 것으로 느끼는 감상이라는 의미이다. 공 회장은 “대소장가들의 안목으로 좋은 작품을 모은 만큼 많은 분들이 옛 서화를 통해 즐거움(眼福)을 누리고, 우리 선조들의 예술성을 평가하고 자부심을 갖게 되길 바란다“고 했다.

소설가 이병주는 선조들의 옛 그림을 감상하면서 쓴 ‘고인과의 대화’라는 글에서 “고인과 더불어 생각하는 곳에서 현대는 살이 찐다. 현대란 고인의 울력으로 아로새겨지는 미래의 산실”이라고 했다. 더 많은 관객들이 ‘안목과 안복‘전을 통해 고인과 대화하기를 기대해 본다. 전시작은 판매하지 않으며 관람은 무료다. 02-735-9938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