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태의 인터넷 세상 읽기] IT기술은 자본가들이 만든 저작권의 벽을 없애는 혁명적 수단

최초로 정보 공개 및 공유를 이루어낸 인쇄술과 카피라이트의 출현

서양에서 최근 천 년 사이에 인류 역사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발명을 선정하면 구텐베르크의 인쇄활자가 대부분 1위로 선정된다. 구텐베르크의 활자를 통해 인류는 처음으로 정보를 공유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이전까지 정보와 지식은 귀족과 성직자만이 소유한 권력의 원천이었다. 성경은 필사본을 통해 만들어졌기 때문에 라틴어를 할 줄 아는 지배계급만 소유하고 해석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인쇄를 통해 시민들의 언어로 된 성경이 수 십 만 권씩 대량으로 복제되고 배포되었다.

지배계층만이 소유했던 정보의 대량복제가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이루어졌을 뿐만 아니라 지배층의 정보가 시민들에게 공개되고 공유된 첫 번째 문화적 충격이 발생한 것이다.

성경을 소유하게 된 시민들은 귀족과 성직자가 거짓말을 했음을 알게 된다. 면죄부를 사고 교회에 헌금하고, 지배계층이 하라는대로 해야만 천국에 간다는 말이 거짓말임을 알게 되었고, 피지배계층은 성경이 말하는대로 살아야 한다면서 종교개혁을 일으킨다.

문화에서 르네상스가 일어나고 정치에서 시민혁명이 일어나며 금기시하던 과학을 발전시키고 산업혁명을 일으킨다. 소수가 지배하던 정보가 시민에게 공개되면서 모든 부문에서 지배계층에 반발하는 혁명이 일어났고 결국 시민들은 권리를 획득한다.

소수가 독점하던 정보가 대량 복제되면서 권력은 분산되었으나 대량 유통은 새로운 부를 창출하는 기회가 되었다. 그리고 이 기회를 잡은 계층은 자본가다. 1557년 영국왕실의 칙령은 특정 단체에게 인쇄할 수 있는 독점권을 부여했는데 ‘저작권(Copyright)’은 여기에서 유래된 말로 출판자에게 주어진 복사권(Right to Make Copies)을 의미한다.

이후 1710년에 앤여왕법(Statute of Anne)의 입법을 통해 자신의 저작물을 출판업자에게 양도하는 보통법(Common Law)적인 관행이 시작되었다. 저작물을 저작자가 아닌 돈을 가진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시대가 열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후 저작자를 보호하기 만들어졌다는 저작권(Copyright)은 저작자를 보호하기 위한 개념이 아니라 자본가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법으로 발전하며 자본 축적의 근거를 마련해준다.

자본가들이 카피라이트를 내세우며 독점해버린 정보와 창작물, 문화유산

자본가는 가난한 예술인과 문인의 작품을 헐값에 사서 비싼 값에 팔아먹기 시작했다. 이중섭, 고호 등의 근대 미술가는 물론이고 현대의 대중가수도 노력만큼의 대가를 얻지 못 했다. 송골매의 배철수는 음반을 발매한 후에 하루도 쉬지 않고 공연했으나 돈은 한 푼도 받지 못 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음반을 내야 라디오를 타고 DJ를 통해 음악 소개가 가능하기 때문에 자본가의 조건대로 계약할 수밖에 없었다. 음반을 내는 일은 많은 돈이 들어가는 일로 가난한 가수들이 자기 자본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자본가는 저작권 보호를 외치면서 복제를 큰 죄악으로 홍보하지만 정작 저작자의 생각은 다르다. 화가나 음악인 문인이 원하는 것은 밥이나 재료 걱정 없이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하고, 글을 쓰는 것이다. 음악가 작가 만화가는 자신이 만든 노래와 글, 만화를 많은 사람들이 보고 공감하는 것으로도 행복해한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창작에 필요한 생활비이며, 이 돈은 작품이 나온 후 1~3년 사이만 보장되어도 충분했다. 작품을 내고 그 작품으로 생활비를 벌고, 그 돈으로 다시 작품활동을 하면서 살다가 죽으면 만족스러운 것이다. 도대체 저작자가 죽은 후 수 십 년 동안 저작권을 보호해야 할 이유가 어디 있단 말인가? 저작권을 사후까지 보호하면 저작자가 살아나서 저작활동을 한다는 소리일까?

정작 저작권은 창작인의 예술활동을 제약하는 족쇄가 되었다. 원하는 음악 대신 음반업자가 원하는 노래를 만들어야 했다. 이익은 기획사나 음반사가 챙겨갔다. 요즘은 음원시장을 이통사가 장악하면서 이통사에서 수익의 대부분을 챙긴다. 노래를 만들고 부른 사람에게는 몇 %도 돌아가지 않지만 이들이 죽은 뒤에도 자본가는 사후 수 십 년 동안 돈을 쓸어담는다.

인터넷은 창작인에게 자유를 주고 정보를 시민에게 돌려주는 중

IT 기술은 자본가들이 독점한 정보를 다시 시민들이 공유할 수 있도록 할뿐만 아니라 저작자에게 다시 창작의 자유와 노력의 대가를 돌려주기 시작했다. 수 천 만 원 들어가는 음반을 내지 않아도 자신의 팬들에게 음악을 들려줄 수 있다. PC 한 대만 있으면 조악한 음질이지만 자신의 음악을 녹음해서 인터넷에 올릴 수 있다.

노래가 좋다고 음반을 구입하고 싶다는 팬들에게는 MP3 파일을 판매하거나 CD레코더로 공CD에 음악을 녹음해 판매한다. 최근 장교주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는 ‘장기하와 얼굴들’도 CD레코더로 공CD 백 장에 음악을 저장한 뒤에 손으로 라벨을 붙이고, 종이로 케이스를 접어서 판매했다.

(좌) 장기하 (우) e테크 ‘디지털저작권 관리 솔루션’
(좌) 장기하 (우) e테크 '디지털저작권 관리 솔루션'

그렇게 밴드 멤버와 기획사 직원이 손으로 만들어 판매한 것이 5천 장이나 된다. 김C나 올밴도 공CD에 노래를 녹음해서 팔았다. PC와 5만원 짜리 CD레코더, 100원 짜리 공CD면 이제 언제든지 음반을 찍어서 판매할 수 있는 것이다. 소비자 직거래임을 감안하면 앨범 판매 금액은 100% 장기하 팀의 매출이 된다. 만약 휴대폰 벨소리로 판매한다면 10억 원 어치는 판매되었어야 손에 쥘 돈이다.

이미 미국에서는 수 많은 밴드가 직접 생산, 유통을 담당하고 있다. ‘버드몬스터’ 밴드는 자신들이 모은 1만 5천 달러라는 적은 돈으로 미니 앨범을 만들었다. 스튜디오만 사용하고 나머지는 집에서 PC로 믹싱 및 녹음을 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노래는 MP3 파일로 만들어져 아이튠스 등을 통해 판매되었다. 유명해지자 많은 음반사가 계약하자고 했지만 그들은 계약을 거절했다. 피터 아쿠니는 “음반회사를 통해 발매했을 경우 입을 손실에 비해 얻을 것이 없기 때문에 거절했다”고 말했다.

‘나인 인치 네일(NIN)’은 새 앨범 ‘고스트 1-4’를 CCL로 풀었다. 카피라이트에 반대되는 카피레프트(Copyleft)를 선택함으로써 누구나 무료로 음원을 내려받을 수 있게 한 것이다. 9곡이 네 장에 들어간 36곡을 무료로 풀었을 때 기존 음반사는 NIN의 행동에 황당해했다.

그러나 NIN의 앨범은 아마존닷컴의 ‘2008 베스트셀러 앨범’에서 1위를 차지했다. 공짜로 공개했음에도 가장 많이 팔려나간 앨범이 된 것이다. 팬들은 저작권 때문에 앨범을 사고 안 사는 것이 아니다. 좋은 노래이고, 좋아하는 그룹이기 때문에 앨범을 사서 소장하는 것이다. NIN은 이를 알고 있었다. 더 많은 사람이 자신의 노래를 들을 수 있도록 무료 배포를 한 것이고, 그들은 자신의 노력만큼 팬으로부터 보상을 받았다.

더 많은 창작을 위해 저작자의 권리를 보호해야 하지만, 저작권법을 통해 자본가의 유통 이익을 보호하는 방법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100원 짜리 배추가 시장에서 천 원에 팔릴 때 900원은 자본가의 손으로 들어간다. 직거래로 500원에 판매할 때 농민은 500% 매출을 올리고, 시민은 절반에 살 수 있어 행복하다. 마찬가지로 창작인의 노력만큼 팬들이 주는 돈으로 보상받을 때 창작자와 팬 모두 행복하다.

인터넷은 자본가들이 만든 카피라이트 장벽을 없애는 혁명의 수단이 되고 있다. 이제 창작자는 자본가의 도움 없이도 누구나 인터넷으로 자신이 만든 노래와 영화, 작품을 올리고 팬들과 직접 대화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또한 팬이 주는 경제적 보상을 바로 챙길 수 있는 기회도 갖게 되었다.

카피레프트를 통해 많은 팬이 자유롭게 음악을 들을수록 이들은 자신의 음악을 더 알릴 수 있고, 공연 및 판매를 통해 생활에 필요한 수익을 거둘 수 있다. 법이라는 테두리를 이용해 소수의 자본가들이 독점하던 창작 결과물을 창작자와 소비자의 직거래 관계로 바꾸고 있는 것이다.

인쇄술이 정보를 모든 시민이 공유할 수 있는 혁명을 가져왔다면 인터넷은 자본이 독점하던 문화유산을 모든 시민이 공유할 수 있는 혁명을 가져오고 있다. 카피라이트 대 카피레프트의 싸움은 이제 막 시작된 것이다.



김중태 (IT문화원 원장. www.dal.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