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프링 어웨이크닝' 등 생동감 있는 체험형 공연 관람 인기… 매진 행진

<스프링 어웨이크닝> 공연 장면. 무대 좌우에 만든 무대석에 관람객들이 앉아 있다.
막이 올라가고 배우들이 좌우에서 튀어나온다. 교복을 입은 연기자들이 발을 구르자 쿵광거리는 무대에 있는 의자가 함께 요동친다. 열창하며 돌아서는 배우의 이마에서 땀이 날리는 게 생생하게 보인다. 침을 튀며 열변을 토하는 연기자의 혼이 느껴진다.

교실을 배경으로 한 무대. 학생 역(役)이 제 답을 못하자 교사가 회초리를 꺼내든다. 교사는 학생의 가슴을 향해 사정없이 회초리를 내리친다. 부러진 회초리가 무대 뒤쪽으로 튀는 모습을 가까이서 보는 관객들은 소스라친다. 가슴을 쓸어내리는 모습이 곳곳에서 보인다.

극의 중간중간 배우들은 무대석 관객 바로 옆에 앉아 있는다. 벌떡 일어나 품 안의 마이크를 꺼내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갑자기 뒤편에서 화음을 넣을 때는 깜짝 놀라는 관객도 있다. 주인공 남녀의 성애 장면이 무대 중앙에서 적나라하게 펼쳐진다. 무대 위에 앉아있는 관객의 표정에서 약간의 불편함도 읽힌다.

이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공연시간보다 15분 일찍 입구에 모여 입장했다. 소지품을 모두 사물함에 보관해야 했고 진행요원으로부터 주의와 안내를 받았다. 공연이 시작하기 직전 무대 위 객석으로 자리를 안내한 진행 요원은 다시 한번 "조용히 해주시고 배우가 옆에 오면 말을 걸거나 만지지 말아주세요"라고 주의를 줬다.

15일 오후 8시부터 서울 종로구 연지동 두산아트센터에서 벌어진 뮤지컬 <스프링 어웨이크닝>의 무대석 풍경이다. 뮤지컬 <사춘기>와 동일 원작인 이 작품은 성에 눈뜨기 시작한 청소년의 방황과 이를 억압하려는 성인의 대립을 19세기 독일을 배경으로 그려냈다. 특이한 것은 무대 위에 있는 객석의 존재다. 이 공연은 무대 위 세트에 객석을 만들어 관객의 호기심을 끌었다.

1) 저녁에 공연하는 뮤지컬 <렌트> 무대석을 구하려는 관람객들이 낮부터 길게 줄지어 서있다. 2) 서울 연지동 두산아트센터에 설치된 뮤지컬 <스프링 어웨이크닝> 무대. 좌우에 무대석이 있다. 3) 지난 4월 예술의 전당 토월극장에 설치되고 있는 <레이디 멕베스> 무대석. 4) 연극 <라 까뇨뜨> 무대석. 국립극장 해오름 극장.
㈜뮤지컬해븐은 <스프링 어웨이크닝> 공연을 위해 무대 위에 24석의 특별 객석을 설치했으며 전석 매진을 기록하고 있다. 일반 좌석 점유율 70~80%에 비해 월등히 높은 수준이다. 8일 무대석을 찾은 강정인(25.여) 씨는 "제너두 이후 무대석은 두번째인데, 배우들의 열창하는 모습과 섬세한 표정, 침 튀기는 것까지 다 보여 신기하다"며 "생동감이 느껴져 좋지만, 의자가 너무 딱딱하고 불편하다"고 말했다.

객석을 무대위로 올려 생동감 있는 공연 관람을 유도하는 대형공연이 늘고 있다. 무대 위나 양 옆, 바로 앞뒤에 설치한 무대석은 오케스트라 등 연주석 뒤편에 설치한 피트석에서 더욱 발전된 형태로 체험형 공연관람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신종플루와 경기불황으로 위기를 맞은 공연계에 무대석을 비롯한 각종 이색 관람석의 등장이 어느 정도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공연계 무대석 러시

객석 일부를 무대의 전면에 올린 무대석을 마련한 공연이 날로 늘고 있다. 뮤지컬 <스프링 어웨이크닝>은 무대 위 양쪽에 마련된 무대석에서 관객들이 극을 보다 가까이 관람할 수 있도록 했다. 무대석의 가격은 S석(6만원)보다 저렴한 5만원이다.

뮤지컬 <렌트>는 이달 8일부터 20일까지 서울 여의도 KBS홀에 오케스트라 피트석을 단장한 무대석을 만들어 '렌트석'이란 이름으로 판매하고 있다. 아담 파스칼과 안소니 랩 등의 연기를 140석의 무대석에 앉은 관객들은 보다 가까이서 볼 수 있다.

연극 <라 까뇨뜨>는 이달 9일부터 12일까지 있었던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공연에서 582석의 무대석을 무대 양옆에 설치하고 일반객석은 커튼으로 가린채 공연했다.

지난 5월 막을 내린 뮤지컬 <주유소 습격사건>은 무대 앞쪽 좌석을 재배치해 배우들이 객석을 오가며 체험을 극대화하는 해프닝 존을 만들어 공연하기도 했다.

원종원 뮤지컬 평론가는 "무대극의 등장은 아날로그적 예술인 극의 현장성·즉시성을 높여 커뮤니케이션의 쌍방향성을 강조하는 재미 있는 현상"이라며 "상업 프로덕션들이 마니아 사이의 입소문으로 안정적 소비층을 확보할 수 있는 마케팅 수단으로 각광받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마니아 겨냥, 체험형 관람 주도하는 무대석

무대석을 가장 즐겨 찾는 사람들은 공연 마니아들이다. 이들은 R석에 버금가는 공연료를 지불하고 공연시작 시간보다 일찍 와 주의사항을 지키며 공연을 관람한다. 뮤지컬 <렌트> 역시 마니아층 덕인지 무대석은 거의 100% 매진된다. 좌석점유율 70~80%를 보이는 일반석과 대비된다.

뮤지컬 <렌트> 공연기획사 관계자에 따르면 무대석을 차지하려는 관객들은 정오께부터 줄을 서 장사진을 이루기도 한다. 공연은 밤 8시에 시작한다. 600여 석의 일반석 외에 500여 개의 무대석을 운영하는 KBS <유희열의 스케치북>이나 <개그콘서트>를 보려고 공개홀 앞에 아침부터 줄을 서는 관객들이 존재한다는 것 역시 널리 알려진 얘기다.

이들을 들끓게 하는 것은 보다 직접적인 체험이다. 호러코믹 뮤지컬인 <이블데드>는 작년 공연에서 '스플래터(Splatter) 존'이라는 무대석을 만들었다. '튀기다'는 뜻의 스플레터 존에는 공연 중에 피를 상징하는 액체가 튀어 일반석보다 훨씬 더한 공포감을 자아냈다. 그러나 이를 즐기는 관람객들로 항상 만석이었다.

관객이 가까이서 보다 생동감 있는 공연을 즐기고자 하는 체험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은 이미 공연예술 연출의 대세다. 뮤지컬 <스페셜 레터> 공연장에는 '극중에 객석으로 나와 함께 춤추고 싶으면 통로쪽에 앉으시오'라는 안내문을 붙이기도 한다. 이 극에서는 공연중에 연기자들이 관람객들을 끌어들여 무대위에서 춤을 춘다.

올 23일부터 서울 잠실동 샤롯데시어터에서 막을 올리는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에서는 '샹들리에가 떨어지는 것을 직접 느끼려면 앞부분 가운데 앉으시오'라는 안내문이 붙을 예정이다. 적극적인 체험을 원하는 관객을 유도하는 마니아석이 따로 생기는 셈이다.

원종원 평론가는 "무대석은 특정 마니아들 사이에 입소문이 퍼지며 인기를 끄는 경우가 많다"며 "특별한 나만의 콘텐츠 체험을 원하는 이들의 욕구를 파악한 연출가들이 이들의 확산하는 수요를 만족시키기 위해 만드는 경우가 많아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사실주의·표현주의 수단으로

그러나 아무 공연에나 무대석을 적용한다고 해서 성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공연의 시놉소스나 연출 의도를 표현하는 데도 무대석이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무대석은 그 자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일반석의 관람객에도 노출되는 무대의 한 부분으로 기능한다.

무대에 관람석을 등장시켜 '낯설게 하기'를 시도함으로써 관람객이 이를 환상이 아닌 사실로 느끼게 하려는 기획 의도가 들어간 작품에 무대극이라는 설정이 포함돼 있는 경우가 많다. 극의 환상성을 배제하려는 사실주의나, 작가의 주관적인 해석이 들어간 표현주의 작품에 무대석이 많은 이유다.

<라 까뇨뜨>는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국립극장이 제작한 것으로 시놉소스에서부터 무대석이 포함돼있었다. 작품 자체가 사실주의에 기초한 것으로 무대와 관객의 거리를 최대한 좁힘으로써 극의 환상성을 없애고자 했기 때문이다.

김영봉 국립극장 무대감독은 "작품 자체가 무대석을 전제로 만들어진 것일 뿐 아니라 관객과의 친밀도를 높이려는 의도"라며 "무대의 일루전(환상)을 강조하는 시대에서 리얼리즘의 시대로 넘어오면서 무대와 객석과의 거리가 점점 가까워지는 것으로 볼수 있다"고 말했다.

독일의 표현주의 희곡작가인 베데킨트의 <사춘기>가 <스프링 어웨이크닝>의 원작이라는 점은 연출이 이 뮤지컬에 무대석을 설정한 가장 큰 이유다. 무대석을 통해 관객에게 상황을 인식시킴으로써 표현주의의 주제 의식을 돋보이게 한다는 것이다. 표현주의는 흔히 작가 개인의 내부생명, 즉 자아(自我) ·혼(魂)의 주관적 표현을 추구하는 '감정표출의 예술'로 불린다.

지난 4월 예술의 전당 토월극장에서 공연한 <레이디 멕베스>는 객석을 모두 비워둔 채 300여 개의 무대석을 무대의 좌우, 후면에 만들었다. 순수 연극인 이 작품에 무대석이 들어간 것 역시 체험형 공연기획보다는 작품의 주제 의식에 설치의 더 큰 이유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무대석 등장 왜 의미 있나

그러나 공연자체에 대한 경험이 낯선 사람들이 무대위에 노출될 경우 더욱 경직되는 부작용도 있다. 무대석은 대부분 무대 좌우나 후면에 배치돼 있어 극 전체 구도를 이해하는 데 걸림돌이 될 수도 한다.

무대석이 피트석을 통해 이미 구현되고 있었다는 반론도 있다. 하지만 주로 무대 연주석 뒤에 있는 피트석은 무대위 전면에 무대를 설치하는 무대석과는 개념이 다르다. 피트석 티켓은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으로 고가에 판매되며 무대석보다는 객석의 상업적 활용 의도가 더 강하다.

배우가 중심에 있고 관객이 가까이 둘러앉는 고대 연극의 원형·한국 전통 마당극 등 무대석 개념이 옛부터 극예술 공간에 존재했다는 주장, 과거에도 객석을 비우고 무대에 좌석을 설치하는 일부 작품이 있었다는 반론도 있다.

하지만 공연장의 대형화와 함께 무대와 관객의 거리가 멀어져 왔던 게 사실이다. 과거의 로얄석이 공연장과 거리가 있는 상층의 시야가 좋은 곳에 위치했다는 점을 연상해봐도 쉽게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지금과 같이 무대석을 적용한 공연이 집단적으로 나타나며 관람객으로부터 뜨거운 호응을 얻고 있는 무대석 러시의 시대가 있었다고도 볼 수 없다.

확실한 것은 무대석 러시가 관객과 공연예술 작품의 관계를 뒤바꾸고 있다는 것이다. 공연이 대중화하고 문화예술 향유가 일반화하는 데 극과 관객의 거리 좁히기가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높이, 멀리 서있어 권위와 환상을 강화하는 무대가 '먹히는' 시대가 지나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차태호 명지대 연극과 교수는 "무대석은 관객석이 무대에 들어가 극의 일루전(illusion; 환각)을 배제하기 위한 사실주의 의도에 의해 주로 쓰여져 왔다"면서도 "최근 무대석이 많아지는 것은 대중스타나 연예인들이 무대에 서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이들과 가깝게 접촉하고 싶은 일반관객의 욕구나 욕망이 반영되는 현상으로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김청환기자 ch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