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반리뷰] 장사익 <따뜻한 봄날 꽃구경>5월 12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공연 실황 2장의 CD에 담아

인기를 얻은 음악인들은 귀가 순해진다는 예순이면 으레 '음악인생 외길' 30주년이다, 40주년이다 기념 콘서트를 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소리꾼 장사익의 예순은 조촐하다. 마흔다섯 살, 늦깎이로 무대에 선 그는 올해로 데뷔 15주년이다. 상대적으로 길지 않은 시간, 그러나 그가 일궈낸 음악 세계는 감히 헤아리기엔 깊고 넓다.

가수를 꿈꾸던 젊은 시절, 좀처럼 그를 받아주지 않던 무대와 대중이었다. 한동안 평범한 회사원으로 살던 그가 팍팍한 세상살이에서 중심을 잃었던 적이 있다. 더 이상은 밑이 없을 것 같던 절망의 끝, 그때 떠오른 것은 뜻밖에도 태평소였다. 저녁 햇살 어스름해질 때면 둑 위에서 늘 태평소를 불던 마을 아저씨, 그 옆에 앉은 철부지의 달뜬 마음을 가만히 다독여주던 소리였다.

그 후, 3년간 미친 듯이 태평소를 불었던 장사익은 동료 음악인들의 독려로 오랜 꿈이었던 노래를 부르게 된다. 대중 가수가 아닌 소리꾼으로서였다. 단지 노래가 아니라 온몸으로 겪어낸 생의 질곡에서 길어 올린 소리는 대중의 마음과 무대를 열었다. 무엇보다 국악을 기반으로 팝, 재즈, 클래식 그리고 대중가요까지 받아들인 덕에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독자적인 음악성을 완성해냈다.

1994년 11월 예 소극장에서 시작된 공연은 서울, 부산, 대전, 광주, 대구, 그리고 일본과 미국까지 이어졌다. 이제 그의 공연 소식을 듣는 것보다 티켓을 구하는 일이 훨씬 더 어렵다. 연말, 그의 공연 소식이 들려오는 가운데 실황음반이 발매됐다. 올해 5월 12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린 공연 실황이 두 장의 CD에 담겼다.

삶과 죽음을 하나의 순환고리로 보는 장사익의 삶의 방식은 고스란히 음악으로 치환됐다. 천상병 시인의 '귀천', 고향 광천의 상여소리를 즉흥으로 풀어내는 '하늘 가는 길', 정호승 시인의 '허허바다', 서정주 시인의 '황혼길', 허형만 시인의 '아버지'등이 장사익의 소리에 엮여 노래가 되었다. 대표곡 '찔레꽃'도 담겼다.

실황 음반은 어쩌면 그의 음악 스타일과 가장 잘 맞는 형식이다. 악보를 쓸 줄 모르는 그는 음반을 녹음하고 공연을 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차례 공연에서 다듬어진 노래를 레코딩하기 때문이다. 공연을 하면서 일어나는 연주자들과의 즉흥의 앙상블, 우연의 멜로디와 리듬이 곧 노래를 완성하는 소중한 요소다. 기존에 녹음되었던 곡들이어도 색다른 맛이 있다.

아프고 힘든 이들을 위로하는 22곡의 구성진 가락의 '희망가'를 듣고 있자니, 꾸밈없는 추임새와 초연하면서도 천진한 미소까지도 눈앞에 선하다.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