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음악단체 '컨템포러리뮤직밴드567' 크로스오버 공연, '공간 정신' 되살려

찬바람이 매서운 초저녁. 골리앗 같이 서있는 서울 계동 현대 사옥 옆의 아담한 벽돌건물 지하 99.174m²(30여 평) 남짓한 공간.

연주자가 가야금을 튕기기 시작한다. 가야금 소리에 맞춰 징이 울린다. 징 소리는 잦아들고 다시 호리병이 등장한다. 호리병을 두드릴 때 나오는 공기의 파장이 가야금과 묘한 조화를 이루며 실내를 메운다.

관람석에는 70여 명의 중장년층이 방석을 깔고 앉아 음악을 즐긴다. 크로스오버 공연은 요즘 많아졌다. 그럼에도 추억이 깃든 통섭 공연장만의 친근한 분위기는 중장년 관람객에게 더 각별하다.

12월 23일 저녁 8시께 서울 종로구 원서동 소극장 공간사랑 풍경이다. 창작음악단체 '컨템포러리뮤직밴드567'은 이날 공연에서 김기영 작곡, 한국계 덴마크 작가 마야 리 랑그바드 글, 김화림 바이올린으로 연주한 '명상적으로'를 비롯한 창작음악 6곡을 선보였다.

뮤직밴드567은 김기영, 박영란을 비롯한 서양음악 작곡가와 김화림 바이올리니스트, 김준희 해금연주자 등을 중심으로 7월 초연한 창작음악 단체다.

1970~80년대 통섭 예술 공연의 메카였던 소극장 공간사랑이 다시 기지개를 켜고 있다. 창작음악단체 '컨템포러리뮤직밴드567'은 23일 송년공연으로 공간사랑 부활의 신호탄을 쏘았다. 공간사랑의 부활은 예술 간 통섭과 공연 다양성 확보에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날 공연은 일찍이 크로스오버 예술의 장으로 기능했던 공간사랑의 정신을 그대로 이어받았다. 김애란 소설을 음악으로 표현한 'my room... mobile me...(작곡 김기영)'가 기타연주로 펼쳐졌다.'겨울(작곡 박영란)'이 해금과 가야금, 타악기로 연주됐다. 가야금과 징, 항아리를 동원해 연주한 '호접지몽(작곡 황호준)'도 이채롭다.

공간사랑의 부활은 정통성 있는 예술 간 소통의 장을 확보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관객동원력이 떨어지는 통섭 예술이 대형공연장을 대관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공간의 부활이 통섭을 선호하는 예술가에게 희소식인 이유다.

이날 공연을 펼친 김기영 작곡가는 "국악음악 연주자와 공연을 하다 보면 표현할 수 있는 음색이 더 많아지고 한국인으로서 해낼 수 있는 게 더 많아진다"며 "즐겁게 음악을 갖고 놀고 대중과 만나고자 하는 창작음악을 펼치려 해도 마땅한 공간이 부족해 아쉬웠는데 공간사랑이 다시 그 역할의 중심에 설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예술의 경계 허물기에서 영감을 얻는 애호가도 전통 소규모 공연장이 다시 돌아온 것을 반긴다. '시장의 룰'이 모든 욕구를 해결해주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공연장을 찾은 김광원 부천필 타악기 부수석 단원은 "예전에는 실내악 살롱 연주를 할 수 있는 곳은 공간사랑과 독일문화원 정도뿐이었다"며 "아늑한 장소에서 아방가르드 실내악 연주를 다시 즐길 수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

공간사랑은 우리나라 서양건축의 효시격인 건축가 김수근이 자신의 건축사 '공간' 사옥에 1977년 개관했으며, 80년대까지 음악 무용 연극 등을 모두 다루는 공연예술의 메카였다. 황병기의 가야금, 홍신자 공옥진 김숙자 이매방의 춤, 오태석의 연극 등을 대중에 알렸다.

당시에는 생소했던 크로스오버 공연으로 유명세를 떨쳤다. 강준혁이 기획한 김덕수 사물놀이와 피아노 연주 합동 공연, 재즈와 국악을 혼합한 최선배의 공연 등이 대표적이다.

시인 구상이 낭독회를 자주 열었으며, 작곡가 이만방이 유신독재에 항거하는 내용의 창작음악을 발표하기도 했다. 90년대 이후 '공간'의 경영난 등으로 유명무실해진 공간사랑이 외부 공개 공연을 펼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김청환기자 ch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