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복 조각전>

"호랑이 눈이 네 개인 것은 두 개의 눈으로는 남을 보되, 남은 두 개의 눈으로는 자신의 내면을 살피게 함이죠. 한마디로 힘과 용맹을 남을 괴롭히는데 쓰지 않고 좋은 곳에 발산하라는 의미입니다."

조각가 김성복 교수(성신여대 조소과)는 새해 호랑이 조각전을 열면서 나름의 주석을 붙인다. 예로부터 나쁜 기운을 막고 길운(吉運)을 부른다는 호랑이를 자신의 조형 언어로 재해석한 것.

경인년을 맞아 호랑이를 주제로 한 전시가 줄을 잇는 가운데 김성복 교수의 전시는 드물게 조각인데다 그 함의 또한 독특하다. 인사동 장은선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그의 '금 나와라 뚝딱'전(1.6 ~1.23)은 호랑이를 주요 테마로 고단한 현대인의 삶을 어루만진다.

'삶을 조각하다'라는 이름으로 열린 전시에는 <신화> 연작과 <금나와라 뚝딱> <슈퍼맨> <바람이 불어도 가야 한다> 연작 등 다양한 작품이 선보이고 있지만 핵심은 호랑이다. 그의 작품 속 호랑이는 용맹스럽거나 무서운 형상과는 거리가 멀다. 도깨비 방망이 모형의 꼬리가 달린 호랑이를 비롯해 오방색으로 몸을 치장한 호랑이, 날개 달린 호랑이 등 장난스러운 모습에 익살스럽기까지 하다.

"도깨비방망이는 하루하루 쌓여가는 일상의 고단함에서 벗어나고 싶은 인간의 소망을 우화적으로 형상화한 것입니다. 남을 두렵게 하기보다는 장난스러운 표정을 짓는 호랑이를 통해 무거운 현실을 경쾌한 익살로 넘어서 보고자 한 것이죠." 그에 따르면 삶이 던지는 그대로의 진지함을 피하고 가벼움의 미학을 취한 셈.

'신화', FRP채색 2009(왼쪽)
'바람이 불어도 가야 한다', 대리석 2009(오른쪽)
무거운 재료를 가지고 또다시 무거운 메시지를 전달하는 대신 힘든 삶을 넘어서는 방법으로 경쾌한 유머를 택한 것이다. 그래서일까, 그가 쪼아내고 다듬고 갈아낸 호랑이의 얼굴 어딘가엔 역경을 익살로 넘겨왔던 한국인의 여유롭고 능청스런 모습도 엿보인다. 그의 작품 세계는 해학적이거나 아니면 인간의 강한 의지를 표현한다.

해태제과의 해태상을 비롯 이번 조각전의 호랑이가 전자에 해당한다면 대표작인 <바람이 불어도 가야 한다> 연작은 후자를 대변한다. 그의 해학은 대학(홍익대) 때부터 가르침을 받은 전뢰진 조각가의 골개적 유희의 미를 떠올리게 하면서도 그만의 관조적인 색깔을 풍긴다. 그의 작품 속 강한 의지는 삶을 대하는 자세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삶은 불확실한 것이지만 분명한 것도 있다"고 말한다. 반드시 살아본 자만이 삶을 이야기 할 수 있다고. 그런 삶은 희망을 찾아 앞으로 행군하는 조각에, 해학적인 호랑이 형상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래서 이번 조각전은 누구나 한번쯤 도깨비방망이를 두드려보고 싶게 한다. 02)730-3533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