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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아리아 싸구려 멜랑콜리로 전락

[Classic in Cinema]
(25) 영화 <피아노 2> 속 오페라 <진주조개잡이>의 '귀에 익은 그대 음성'
아무리 좋은 음악도 극적 구성 받쳐주지 않으면 아무 의미없음 보여줘
작품성은 별로 없는데 분위기 있는 배경음악 덕분에 왠지 '있어' 보이는 영화가 있다. 샐리 포터 감독의 <피아노 2(원제: The man who cried)>가 그런 영화가 아닌가 싶다.

이 영화에는 비제의 오페라 <진주조개잡이> 중에 나오는 아리아 '귀에 익은 그대 음성'이 전편에 걸쳐 깔린다. 미성(美聲)의 테너가 부르는 이 아리아는 그 감미롭고 부드러운 멜로디로 듣는 사람을 단번에 무장해제 시키는 마력을 가지고 있다.

이 영화에서도 그랬다. 이 아리아를 배경으로 여주인공이 아버지와 함께 숲 속을 산책하는 첫 장면이 펼쳐졌을 때, 나는 기꺼이 감동하겠다고 결심했다. 이렇게 아름다운 음악을 듣고 가슴을 촉촉이 적시지 않는다면 그것은 음악에 대한 배반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영화의 줄거리는 의외로 간단하다. 전운이 감돌던 1927년 러시아. 주인공 페길레의 아버지는 돈을 벌기 위해 어린 딸을 러시아에 남겨두고 미국으로 떠난다. 아버지가 떠난 후 러시아에 전쟁이 터지고, 졸지에 고아가 된 페길레는 영국으로 보내져 한 가정에 입양된다.

이때부터 페길레는 수지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미국에 가서 반드시 아버지를 찾겠다는 일념으로 살아온 수지는 미국으로 가는 여비를 벌기 위해 프랑스 파리로 건너가 쇼단에 취직한다. 그러다가 동료의 도움으로 오페라단에 들어가는데, 여기서 백마와 함께 엑스트라로 출연한 집시 케사르를 만나게 된다.

곧 사랑에 빠진 두 사람. 하지만 이런 행복은 오래가지 못한다. 파리에 독일군이 들어오면서 유태인인 수지의 처지가 위험해진 것이다. 결국 수지는 케사르와 이별하고,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미국행 배에 몸을 싣는다. 미국에 도착해 아버지의 낡은 사진을 들고 유태인촌을 찾은 수지는 놀랍게도 이곳에서 아버지의 소식을 듣게 된다. 수지의 아버지는 할리우드에서 영화산업에 종사해 크게 성공했으나 지금은 건강이 좋지 않아 병석에 누워있는 신세다.

드디어 아버지의 병실을 찾은 수지. 아버지는 "패길레, 나의 작은 새"라며 딸을 껴안는다. 눈물을 흘리는 아버지에게 수지는 어린 시절 아버지가 자기에게 들려주었던 자장가를 들려준다. 이 장면을 끝으로 영화는 끝나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동안 영화를 보는 내내 지겹도록 '귀에 익은' 바로 그 노래 '귀에 익은 그대 음성'이 나온다.

처음에 그토록 가슴을 적시던 이 노래가 여기서는 식상하고 지루하게만 느껴진다. 이렇게 시간이 지날수록 신선한 감동이 떨어지는 것은 극적인 구성이 전혀 받쳐주지 않기 때문이다. 이 영화를 보면 감독이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자 했던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줄거리는 산만하고, 캐릭터는 모호하다. 특히 집시 남자 케사르가 그렇다.

영화에서 말을 거의 하지 않는 그는 일종의 분위기 메이커로 기용된 것이 아닌가 싶다. 그가 백마를 타고 나타날 때마다 영화의 분위기가 로맨틱 무드로 바뀌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전환이 전혀 자연스럽지 않다는 것이 문제다. 로맨틱한 장면이 전체적인 극 속에 녹아있는 것이 아니라 분위기를 잡기 위해 억지로 삽입된 듯한 인상을 준다. 그래서 영화에 몰입할 수 없고, 몰입하지 못하다 보니 음악에서도 감동을 주는 데 실패한 것이다.

이 영화를 보면서 느낀 것이 있다. 영화에서는 아무리 좋은 음악이라도, 그것이 극적인 요소와 조화를 이루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첫 장면에서는 '귀에 익은 그대 음성'이 그런대로 영화를 '있어' 보이게 하는 역할을 했지만, 그 후의 장면들에서 극적인 필연성이 결여되면서 비제의 아름다운 아리아는 그만 싸구려 멜랑콜리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건 여담이지만 원제목과 전혀 상관없는 이 영화의 한국어 제목 <피아노 2>도 저급한 로맨티시즘의 냄새를 풍긴다. 그것이 아니라면 제인 캠피온 감독의 <피아노>에 살짝 기대려는 저급한 상업주의일까. 아니면 온갖 직유와 은유를 동원해도 '피아노'가 연상되지 않는 내 빈약한 상상력이 문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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