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이 연극무대에 오를 당시, 도스토옙스키는 한 연출가에게 이런 조언을 했다고 한다.

"연극무대를 위한 각색을 원한다면, 당신이 할 수 있는 한 소설을 변화시키십시오. 근원적이고 중심된 이념을 하나 선택한 후 줄거리를 완전히 바꾸십시오."

세계 문학 중 걸작으로 손꼽히는 <죄와 벌>은 도스토옙스키의 철학과 사상이 집약된 엄청난 작품임에 분명하지만, 오히려 그 엄청남이 대중들로 하여금 쉬이 손을 댈 수 없게 한 것 또한 사실이다.

때문에 연극 무대에 오르는 <죄와 벌>은 문학작품보다는 가벼운 무게로 대중들의 부담을 줄이면서도, 원작에서의 '근원적이고 중심된 이념'은 놓치지 말아야 했다. 그리하여 연극은, <죄와 벌>의 내용 중에서도 라스꼴리니꼬프가 소냐에게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장면만을 선택하여 새롭게 각색하였다.

그 중에서도 눈에 띄는 것은 단연 무대 연출이다. 도끼와 떨어진 문짝들, 그리고 한쪽 면에 계단을 달고 있는 조그만 큐빅 형태의 철골이 소품의 전부인 무대는 간결하기 때문에 더욱 강렬할 수 있었다.

죄를 범한 이를 벌하는 것은 결국 자기 안의 죄의식이며, 자신이 세운 이론과 인간의 합리주의가 얼마나 오만하고 추악한 것인지, 문자를 벗어난 무대 위의 몸짓이 이를 증명한다. 11월 17일부터 11월 28일까지. 국립극장 별오름극장. 02)3673-2003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