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의 기억-사유의 숲'
나무만큼 제 나이를 드러내는 생물이 또 있을까. 구태여 쪼개어 보지 않아도 갈라진 껍질은 세월을 보여주고, 꺾어 쥔 나뭇가지 속 나이테는 제 나이를 번연히 드러낸다. 땅은 또 어떠한가.

땅은 외부환경에 민감해 쉬이 마르고 젖는다. 그러다가도 금세 스스로를 치료하고, 다시 식물을 품어낸다. 자연이 이토록 깊은데 어찌 인간만이 사유하고 기억한다고 할 수 있을까? 작가 이운구는 제 몸에 흘러간 모든 것을 품고 기억하는 땅과 그 위를 이루는 숲에 주목했다.

겨울나무만을 그린 듯, 이운구의 화폭 속에는 마른 가지가 얽혀있다. 캔버스 안에 그려진 숲뿐만 아니라 그림을 넘어서 무한히 이어져 있을 것 같은 나무의 이미지들은 세월의 아득함을 보여주는 듯하고, 가끔 보이는 낙엽이나 푸른 잎은 나무의 이야기를 더욱 풍성하게 한다.

배경인 듯, 땅인 듯 그려진 대지는 나무와 어우러져 위화감이 없다. 자칫 '나무 그림'으로 오해하기 쉽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풍성한 땅의 이미지를 엿볼 수 있다. 으로 일관된 제목은 작품의 의미를 한정하지 않고 그림 자체의 이미지와 메시지에 주목하게 한다.

작가는 어린 시절 농촌에서 봤던 흙, 바람, 식물 등이 등장하는 '땅의 기억' 시리즈를 연작으로 확장하며, 단일 개체인 나무가 주는 의미뿐만 아니라 나무의 군집이 주는 느낌까지 전하고자 했다. '숲이 영원히 꿈틀대며 유지되기를' 바라는 작가의 <땅의 기억-사유의 숲>전은 가나아트 스페이스에서 일주일간 열린다.

3월 30일부터 4월 5일까지. 02)734-1333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