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필 개인전 'Dual Realities'가림막·벽화 찍는 '파사드' 신작, 영상·설치 작업 선보여

한성필 작가와 'Flatten3-D Out'작품
불타버린 남대문 복구 현장의 가림막이나 유럽 대성당의 훼손된 벽면에 설치한 가림막, 또는 벽화 등은 너무 일상적이거나 한순간의 관심 대상 정도여서 지나치기 쉽다.

한성필 작가는 그러한 건물의 개‧보수 현장을 가리기 위해 세워진 가림막이나 벽화를 찍는 '파사드(Facade)' 작업을 통해 가상과 실제가 공존하는 경계 문제에 천착해왔다. 2004년 런던 세인트 폴 대성당의 복원 현장에서 성당을 정확히 복사한 실물 크기의 가림막을 마주하고 실재와 재현 사이에서 얻는 혼동, 공간의 초현실적인 풍경에 매료된 게 계기였다.

한 작가는 서울 소격동 아라리오 갤러리 서울에서 'Dual Realities(이중의 현실)'를 주제로 2004년부터 진행해온 파사드 프로젝트의 신작들과 새롭게 시도한 영상작업, 설치작업을 내달 8일까지 선보인다.

전시작들은 오늘을 사는 현대인들에게 가상과 실제의 문제를 상기시키거나, 공사 현장에 대가의 명화나 공사 후 변모될 건물의 이미지로 방진막을 설치해 가림막의 공공미술화를 이끌어낸다. 또한 일부 낡은 건물의 외벽에는 트롱프뢰유(trompe l'œil, 눈속임 회화) 페인팅이 그려져 대중과 함께하며 일상의 재미를 전하기도 한다.

가령 마그리트의 그림 '빛의 제국'을 그대로 옮겨놓은 작품 'light of Magritte'는 현실에서 또 다른 세계, 즉 이미지로서의 세계를 열어주고, 2009년 겨울 파리 교외의 어느 건물 뒷벽에 그려진 봄의 정원을 찍은 'Fable&Fairy Tale'(우화와 동화)은 눈 쌓인 실제 거리와 그림 속의 따사로운 봄 풍경이 한데 어우러져 초현실적인 풍경을 연출한다.

'Metamophosis' 2011
올해 파리 중심가의 건물 가림막을 담은 작품 'Metamophosis'는 건물이 녹아내리는 듯한 모습과 당장이라도 번개가 칠 것 같은 하늘의 구름이 묘한 대조를 이뤄 그로테스크한 인상을 준다.

이번 파사드 전시작들은 좀 더 진화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작품 'Flatten3-D Out', 'Overlapped Houses'는 건물을 다각도에서 촬영한 후 여러 시점들을 하나로 조합해 평면의 한계를 극복했다. 작품 'Mirage', 'Reflected Reflection'은 주변의 유리벽 건물에 비친 건물 벽화의 모습을 함께 담아 가상과 현실의 구분을 모호하게 한다.

전시장 한편에는 독일 베를린에 있는 카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의 동상을 사진으로 찍은 뒤 사진 속 동상을 실물의 절반 정도 크기로 재현한 전시실과, 시대 변화에 따라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동상이 다른 곳으로 옮겨지고 이를 대하는 시민의 모습을 담은 영상이 설치돼 있다. 과거에 사회주의의 위대함을 증언하던 이 동상들은 오늘날 한갓 관광객의 구경거리로 전락했다.

한 작가는 전시실을 원근감이 없어지는 '화이트 아웃(시야 상실)'을 상징하는 하얀 방으로 꾸며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동과 서의 구분이 모호해지고 가치지향의 방향을 잃은 불확실성시대의 단면을 보여준다. 아울러 역사에서 보여지는 가상과 구현된 역사, 그리고 현재의 모습을 대비해 현실과 이상, 그리고 이분된 것들에 대한 화두를 제시한다.

한 작가는 앞으로 가상과 실제가 공존하는 경계에서 역사적 의미와 함께 이 시대의 기술적 조건, 문화적 기억, 세계-인간 존재의 변화를 담아내겠다고 한다. 이번 파사드 전시의 변화와 진화는 그러한 시도의 첫 걸음을 보여주고 있다.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