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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자본 화상과 '관시'를 맺어라
세계경제 움직이는 큰손들, 미래 경제 동반자로 거듭나는 계기



중국경제의 팽창으로 위안화의 위력도 날로 증가하고 있다. (AFP)

한국 화교(華僑) 120년 역사를 다룬 연구서 ‘차이나타운 없는 나라’(양필승ㆍ이정희 지음, 2004년 삼성경제연구소 발간)에는 저자들이 겪은 일화 한 토막이 이렇게 기술돼 있다.

“1999년 대구화교중고등학교의 고등학교 3학년 교실을 방문 취재하다 다음과 같은 일이 일어났다. ‘여러분은 한국인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고 물었더니, 한 남학생이 바로 ‘난, 한국 사람이 싫어요!’라고 큰 소리로 대답했다. 그 소리를 듣고 제대로 질문을 하지 못했다.”

화교가 한국 땅에 처음 정착하기 시작한 것은 1880년대다. 이들은 영국산 면포의 중계무역과 함께 중국 본토로부터의 수입 무역에 큰 수완을 발휘해 금세 상당한 자본을 축적했다.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한 뒤에도 그들의 상업적 영향력은 한동안 꺾일 줄 몰랐다.

그러나 화교의 득세를 경계한 조선총독부가 고(高)관세 등 정책적 탄압을 노골화한 1930년대부터 그들은 쇠퇴일로를 걷는다.

중일전쟁, 중화인민공화국의 수립, 한국전쟁 등 급변한 국제 정세도 한국 화교의 무역 활로를 옥죄어 들어갔다.

1950년대 이후로는 한국 정부와 국민들의 차별적 대우 때문에 화교의 입지는 더욱 위축돼 갔다.

경제적 여건의 악화와 한국의 배타성을 참다 못한 화교들은 마침내 ‘엑소더스’를 선택했다. 이에 따라 1970년대 초부터 화교 인구는 줄어들기 시작해 1990년대 초까지 무려 30% 이상이 한국 땅을 빠져 나갔다.

이 같은 흐름에 반전을 가져온 계기는 1992년 한ㆍ중 수교다. 중국 본토로부터 ‘코리안 드림’을 꿈꾸는 중국인들이 이 때부터 쏟아져 들어왔다.

이들은 대만 국적의 ‘구(舊)화교’와 구분하기 위해 ‘신(新)화교’로 불린다. 2002년 기준으로 구 화교의 숫자는 2만2,000여명(1992년 이후 거의 변화 없음)인 데 비해 신화교는 그보다 훨씬 많은 3만5,000여명에 달한다.

더욱 큰 변화의 바탕은 전세계 화교들의 고향인 중국의 고성장이다. 중국이 세계 경제의 거인으로 등장하면서 화교를 바라보는 국내의 시선도 과거와는 크게 달라지고 있다.

거대 시장 중국을 비롯한 범 중화권과의 네트워크 형성이나 해외 화교 자본을 유치하는 데 그들이 든든한 가교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한국은 해외 화교들에게 ‘화교를 배척하는 국가’라는 평판을 들어왔던 게 사실이다. 한국 입장에서는 이런 부정적 인상을 지워내지 않으면 급팽창하는 중화권과의 경제 교류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밖에 없다.

화상들의 비즈니스 올림픽



정부가 세계의 유력 화상(華商ㆍ화교 기업인 또는 자본가)들에게 적극적으로 악수를 청한 것도 그런 까닭이다.

우리 정부는 10월 9일부터 12일까지 서울 코엑스에서 열리는 ‘제8차 세계화상대회’를 통해 한상(韓商)과 화상이 손을 잡고 미래의 동반자로 거듭나기를 기대하고 있다.

세계화상대회는 전세계 화교 경제인들의 교류와 협력을 도모하자는 취지로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가 주창해 1991년 시작된 화상들의 ‘비즈니스 올림픽’이다.



상하이와 함께 중국 고선장을 견인하고 있는 선전 경제특구. (로이터)

싱가포르에서 첫 대회가 열린 이후 2년마다 한 번씩 화교가 번창한 국가들을 순회하며 열리고 있다.

대회는 개최국의 화교들이 주도한다. 하지만 이번 서울 대회는 한국 정부가 유치전 단계부터 화교들을 지원하는 등 더욱 적극성을 띠고 있다.

한국 화상의 경제력이 미미해 대회를 유치하기가 버겁기도 했지만, 궁극적으로는 한국 경제에도 도움을 주는 ‘윈-윈 게임’이라는 판단에서다.

정부 측은 이번 서울 대회를 계기로 ‘화상들이 비즈니스 하기 어려운 나라’, ‘차이나타운이 없는 나라’ 등 화교들이 한국에 대해 갖는 부정적 이미지가 상당 부분 쇄신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물론 ‘속보이는’ 단발성 이벤트가 되어서는 이른바 ‘관시’(관계)를 중시하는 화교들의 신뢰를 얻기 어렵다. 때문에 정부는 국내 화교 사회의 활성화를 위한 노력도 병행한다는 방침이다.

현재 전세계 화상의 한국 경제에 대한 인식은 피상적인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거물급 화상들 가운데는 아직 한국 방문을 한 번도 하지 않은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그들이 알고 있는 한국 기업이라야 고작 삼성, LG, 현대차 등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한 일부 대기업뿐이다. 상품력과 기술력을 함께 갖춘 여타 중견ㆍ중소기업들에 대한 이해는 턱없이 부족하다.

그런 까닭에 한국 경제가 IMF 외환위기 이후 거의 100% 대외 빗장을 풀었음에도 화상 자본의 국내 투자는 기대에 못 미치는 형편이다.

2001년부터 2004년까지 중화경제권(중국, 싱가포르, 홍콩, 대만, 태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 7개국) 자본의 유치 실적은 전체 외자 유치의 평균 10% 안팎에 머물렀다.

2004년의 경우 전체 외자 유치 규모는 127억7,000만 달러였고, 이 가운데 중화권 자본은 18억1,000만 달러였다. 1962년부터 2004년까지 한국에 투자된 중화권 자본은 전체 외자의 13.7%였다.

유동자산 2조-3조달러의 거대 자본



그렇다면 화상 자본의 위력은 얼마나 될까. 우선 중국 본토를 떠나 세계 각국에 진출한 화교 인구는 대략 6,000만 명에 이른다는 추산이다.

이들이 현금, 주식, 채권 등으로 운용하고 있는 유동 자산만도 2조~3조달러에 달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황멍푸, 천샹린, 류촨즈, 훠쩐환(왼쪽부터)











중국을 필두로 고성장을 구가하고 있는 범 중화경제권의 경제 규모도 비약적으로 커졌다. 세계은행의 자료에 따르면 2003년 기준 범 중화경제권의 GDP(국내총생산)는 미국 중심의 북미자유무역연합(NAFTA), 유럽연합(EU), 일본에 이어 4위를 기록하고 있다. 전세계 인구의 30%를 상회하는 인구 규모는 시장의 크기와 직결된다는 점에서 더욱 돋보인다.

중국과 아세안(ASEAN)은 미국을 제치고 한국의 최대 교역 파트너로 이미 부상했다. 화상들이 좌지우지하는 이들 국가와의 관계가 껄끄러우면 한국 경제의 미래도 낙관하기 힘들다.

우리 정부는 이번 서울 세계화상대회를 통해 지구촌 화상들에게 한국의 개방적이고 역동적인 이미지를 집중 부각한다는 계획이다.

물론 궁극적인 목표는 한국과 화상 간의 무역 및 투자 협력을 증진해 미래의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형성하는 데 있다.

여기에는 중국과 동남아시아 등을 휩쓸고 있는 한류(韓流) 바람도 한몫을 할 것이라는 기대다. 한류에서 비롯된 한국의 긍정적 이미지가 화상을 움직일지 귀추가 주목된다.
세계화상 부호들, 서울 총집결



이번 서울 세계화상대회에는 중국, 동남아, 북미, 유럽 등지에서 2,500여명의 화상이 참석한다. 참석 인원만 놓고 보면 중국 본토에서 열렸던 5차 대회를 제외하고는 최대 규모라는 지적이다. 한국에 이렇게 많은 화상들이 동시 방문하는 것도 물론 처음 있는 일이다.

참석자 면면을 살펴 보면 거물급도 다수 포함돼 있다. 세계 3대 PC메이커인 롄샹그룹의 류촨즈 회장, 상하이기차의 천샹린 이사장, 중화전국공상업연합회의 황멍푸 회장 등이 우선 눈에 띈다.

롄샹그룹은 지난해 세계 최대 컴퓨터 회사인 IBM의 PC사업부를 인수해 화제를 뿌린 바 있다. 중국의 3대 자동차 제조업체인 상하이기차는 한국의 쌍용자동차를 지난해 인수해 우리에게도 익숙한 기업이다.

중국 경제인들과 상공인들의 연합체인 중화전국공상업연합회의 황멍푸 회장은 현재 전국정협 부주석으로 활동하고 있기도 하다.

중국에서 부총리급에 해당하는 거물이며 이번 대회에 참석하는 중국인 중에 최고위급 인사다. 7차 말레이시아 화상대회 때도 대표단을 이끌고 참석했을 만큼 화상들에 대한 영향력이 큰 것으로 평가된다.

이밖에 홍콩 중화총상회를 이끄는 훠쩐환 회장(세계 406위 부호), 필리핀 최고 갑부이자 동남아 15위 부호인 천융짜이 루시오탄 그룹 회장, 말레이시아 10위 부호인 양중리 YTL그룹 회장 등도 거물급으로 꼽힌다.

이들을 맞이하는 국내 경제인들도 최중량급으로 선택됐다. 강신호 전경련 회장, 김재철 무역협회 회장, 박용성 대한상의 회장,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 김쌍수 LG전자 부회장, SK 최태원 회장, 강창오 포스코 사장 등이 개막식에 참석해 화상들과 친분을 쌓는다.

또한 각 세부 포럼과 행사에는 국내 유명 기업을 이끄는 전문경영인들과 각계를 대표하는 전문가들이 대거 참석해 한국 이미지 제고와 함께 화상과의 사업 협력을 도모하게 된다.



김윤현 기자 unyon@hk.co.kr  


입력시간 : 2005-10-05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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