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조7,000억 들여 한국까르푸 인수에 자금 부담 등 우려… 노조도 반대회사는 "기존 사업의 인프라 강화로 그룹의 새 성장 동력 기대" 자신

근래 공격적인 기업 인수합병(M&A)으로 무섭게 회사 덩치를 불려온 패션ㆍ유통 전문기업 이랜드그룹(박성수 회장)의 행보에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시선이 쏠리고 있다.

최근 올해 M&A 시장의 최대어 중 하나인 한국까르푸를 인수한 것은 이랜드 M&A 공세의 하이라이트. 특히 이번 인수전 승리는 롯데, 신세계 등 쟁쟁한 유통 공룡들을 물리치고 따낸 것이어서 재계는 하나의 ‘사건’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그런데 이랜드로선 당연히 잔치를 벌일 만한 일이지만 주변 기류는 어쩐지 냉랭하기만 하다.

우선 이랜드 외형을 감안했을 때 한국까르푸 인수는 다소 무리수가 아니냐는 업계 전문가들의 분석이 적지 않은 데다, 한국까르푸 노조마저 고용보장 등을 외치며 연일 회사 측을 압박하고 있는 상황이다.

M&A 통한 압축성장 전략

지난해 9월 이랜드는 창사 25주년을 맞아 그룹의 중장기 청사진을 발표했다. 2010년까지 패션과 유통 양대 사업 부문을 기반으로 매출 7조원, 순이익 1조원을 달성한다는 내용이었다.

2005년 기준 이랜드그룹의 전체 매출은 2조7,130억여 원, 순이익은 2,360억여 원. 이런 점을 감안하면 불과 5년 만에 그룹 외형을 3배 가까이 늘리겠다는 것으로 야심찬 도전장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한국까르푸 인수로 일정표가 훨씬 앞당겨질 공산이 커졌다. 한국까르푸 매출을 단순 합산하더라도 그룹 전체 매출 규모가 올해 4조원대 이상으로 단숨에 뛰어오르기 때문이다. 이는 이랜드의 성장 가도에서 M&A가 얼마나 중요한 견인차 역할을 하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랜드의 경영 전략은 크게 선택과 집중, M&A를 통한 성장, 세계화 등 3가지로 나눠 볼 수 있다.

그 중에서도 덩치 키우기와 직결된 수단은 바로 M&A다. 창사 이래 2000년대 초반까지 유지해온 성장 전략이 자체 브랜드와 사업부의 출범을 통한 것이었다면 2003년부터는 M&A를 최대 성장 엔진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2003년부터 본격 진행된 주요 M&A를 살펴보면 뉴코아, 해태유통 등 유통 부문 2개 업체를 비롯해 데코, 콕스, 태창 내의 부문, 네티션닷컴 등 브랜드 가치가 높은 패션 업체 10여 개가 포함돼 있다. 올 초에는 레저 사업 진출에 대한 포석으로 콘도 운영업체인 삼립개발을 인수하기도 했다.

일련의 M&A 활동을 통해 이랜드의 외형은 몇 년 사이 몰라보게 성장했다. M&A 전략이 가동되기 시작한 2003년 1조2,700억원대였던 그룹 전체 매출이 1년 만인 2004년에 2조원대를 돌파한 데 이어 2005년에는 2조7,000억원대까지 치솟은 것이다.

이 같은 M&A 활동에 대해 회사 관계자는 “이랜드의 M&A는 다른 영역에 대한 확장이라기보다는 기존 사업의 콘텐츠와 인프라를 강화하는 차원에서 이뤄진다”며 “또 새로운 시장을 키워나갈 때는 많은 비용과 시간이 들 수밖에 없는데 이랜드는 M&A를 통해 이를 비켜가면서 성장 동력을 얻는다는 것이 기본 원칙”이라고 밝혔다.

한국까르푸 인수도 성공작 될까

이랜드는 한국까르푸를 인수하는 데 총 1조7,500억원의 막대한 자금을 쏟아 부어야 한다.

인수 비용은 우리은행과 국민은행으로부터 8,000억원의 대출을 받고, 한국금융개발과 화인캐피탈 등 재무적 투자자로부터 2,500억원 가량의 지분 투자를 받는 등의 방식으로 충당하기로 했다.

그룹에서는 계열사인 뉴코아(2,000억원)와 이랜드월드(1,000억원)가 총 3,000억원을 동원할 예정이다.

문제는 자체 자금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외부 자금을 차입한 데 대한 우려가 적지 않다는 점이다.

김영진 M&A연구소 김영진 대표는 “이랜드가 외부 자본을 효과적으로 활용해 자신의 부족한 자금력을 보완하는 방식으로 M&A에 성공하고 있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면서도 “하지만 차입을 통한 확장 경영은 ‘달리는 자전거’와 같아서 어느 한 곳에서 브레이크가 걸렸을 때 그룹 전체에 위기가 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김 대표는 그러나 “그동안 이랜드의 M&A 행보를 봤을 때 이번에도 무모하게 나서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인수 후 자금상환 계획 등을 나름대로 짜뒀을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이랜드측도 한국까르푸 인수로 인한 자금 부담은 없을 것이라고 장담하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인수 자금 1조7,500억원 가운데 출자를 제외한 순수 금융기관 대출은 1조원 수준이며 까르푸의 영업 이익률이 6% 정도 되면 이자 비용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고 밝혔다.

또 다른 관계자도 “이랜드는 까르푸를 충분히 감당할 능력이 있다. 깐깐한 은행들도 그런 사실을 아니까 8,000억원이나 되는 돈을 선뜻 대출해 줬을 것 아니냐”고 말했다.

하지만 할인점을 포함한 유통업계의 경쟁이 결코 녹록치 않다는 점은 이랜드로서도 부담이 아닐 수 없다.

A증권사 유통업종 담당 애널리스트는 “이랜드그룹은 비상장 기업이어서 정확한 경영 상태를 파악할 수는 없지만 유통업계에선 이랜드가 너무 무리수를 두는 게 아니냐는 시각이 많다”며 “특히 갈수록 경쟁이 치열해지는 유통업계에서 선두 업체에 비해 노하우와 경쟁력이 처지는 이랜드가 큰 덩치의 한국까르푸를 인수한 것은 적지 않은 위험성을 내포한다”고 지적했다.

한 신용평가회사 수석 연구원은 “이랜드의 까르푸 인수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 30여개의 대형 매장을 추가로 확보한 것은 교섭력 증대에 따른 시장 지위 상승을 가져올 만한 긍정적 요인이지만 최근 할인점 업계가 포화 상태를 맞아 수익성이 떨어지고 있는데 과연 이랜드 예상대로 까르푸의 수익성이 올라갈지는 지켜볼 일”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이랜드 측은 “이번에 인수한 점포는 패션 아웃렛이 가미된 새로운 형태의 할인점으로 특화해 기존 할인점과의 경쟁을 피하고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 갈 것”이라며 한국까르푸 인수에 대한 회의적 전망을 반박하고 있다.

노조 반대 넘어서는 것도 숙제

최근 몇 년 동안 외형을 급속하게 키운 이랜드는 사업장이 늘어나면서 노사 갈등도 심심찮게 불거져 나오고 있다. 아직 인수 절차를 마무리하지 않은 한국까르푸 노조에서도 벌써부터 고용안정 보장 등을 요구하며 이랜드와 날카로운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형편이다.

눈길을 끄는 것은 이랜드 노조와 뉴코아 노조도 투쟁에 동참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이 공동 투쟁에 나선 배경에는 이랜드의 한국까르푸 인수에 대한 위기감도 적잖이 작용하고 있다.

노조 관계자는 “회사측이 인수 성공 사례로 자랑하는 뉴코아만 보더라도 아직 자리를 잡은 게 아니다. 이랜드가 들어와 경영 정상화를 했다고는 하지만 동종 업계에 비해 판매가 부진한 것은 사실”이라며 “이런 상황에 또 다시 대규모 차입을 통해 까르푸를 인수한 것도 모자라 뉴코아에서 2,000억원을 충당한다고 하니 걱정스럽기만 할 뿐”이라고 밝혔다.

또 다른 관계자도 “회사측은 새로운 파이낸싱 기법을 통해 M&A를 했다고 하지만 결국 스스로 자본력이 없다는 사실을 자인하는 게 아니냐”며 “가뜩이나 취약한 자본 구조에 뉴코아보다 훨씬 덩치가 큰 까르푸를 인수함으로써 그룹 전체가 외부 위기에 쉽게 흔들리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회사측은 현재로선 한국까르푸 인수 건과 관련한 노조의 주장에 대해 일일이 대응하지 않는다는 원칙적 방침을 밝히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의 기업결합 심사 등 인수 절차가 아직 마무리되지 않았기 때문에 노조와 대화나 협상을 할 수 있는 법적 지위가 아니라는 이유 때문이다.

한 회사 관계자는 “한국까르푸 인수가 확정되면 각종 현안에 대해 노조와 성실하게 대화하고 협상한다는 계획”이라며 “또 한국까르푸 인수와 관련해 세간에서 제기되는 여러 가지 궁금증이나 우려에 대해서도 조만간 회사 입장을 소상히 밝힐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화여대 앞 자그마한 옷가게에서 출발해 패션 명가의 신화를 썼던 이랜드. 이제 유통 거인으로 도약하려는 시점에서 간단치 않은 ‘성장통’을 앓고 있다.


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