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화 교수, 유럽 간학회서 임상시험 결과 공식 발표. 바이러스 증식 억제 등 탁월… 다국적 제약사, 벌써 견제

“Congratulations! 바이러스 증식 억제 효능이 강력하고, 변종 바이러스 출현이 전혀 없었다니 놀랍다.”
“e항원(간염이 활동성임을 나타내는 지표)이 양성에서 음성으로 전환하는 음전율 수치가 너무 낮은 것 아닌가?”
“e항원 음전율은 6개월 시점이 8%, 1년 시점이 16%로 낮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비단 클레부딘에 국한한 문제가 아니라 모든 B형간염 치료제가 공통적으로 안고 있는 취약점 아닌가?”
“30㎖에서 시작한 복용량을 6개월 뒤부터 10㎖으로 크게 낮춰도 항바이러스 효능에 별 문제가 없었다. 장기복용에 따른 환자들의 과다복용 부담을 그만큼 줄일 수 있게 됐다는 의미다.”
“복용량을 왜 하필 10㎖로 줄였나? 무슨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

지난달 28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41차 유럽 간학회(EASLㆍEuropean Association for the Study of the Liver) B형간염 세션장. 서울아산병원 정영화 교수(소화기내과)가 B형간염 토종 신약 클레부딘에 대한 지난 1년간의 3상 임상시험 결과를 처음으로 세계에 공식 발표한 현장이다.

세계 간 분야의 대가 1,500여 명이 참석한 이날의 발표장은 순수한 학문적 열정만이 넘쳐난 자리는 아니었다.

세계 의학계의 ‘비주류’ 한국에서 개발 중인 신약 클레부딘을 둘러싸고 지지그룹과 안티그룹이 양분돼 불꽃튀는 논전을 벌였다는 게 이날 연사로 나섰던 정 교수의 전언이다.

질의 응답 시간이 지났는 데도 꼬리를 물고 이어진 질의자들이 마이크를 놓지 않는 바람에 사회자의 제지로 발표회가 간신히 막을 내렸을 정도였다고 한다.

다국적 거대 제약사와의 싸움

이번 유럽 간학회 현장 풍경은 글로벌 시장을 놓고 다국적 제약사들이 사활을 걸고 맞붙는 ‘신약 전쟁’이 얼마나 살벌한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날 클레부딘의 아군은 그 신약의 효능에 대해 익히 알고 있던 각국 B형간염 전문의들. 반면 경쟁 신약을 개발 중인 거대 다국적제약사 관계자들은 적군으로 나서 정 교수의 발표 내용에 토를 달거나 말꼬리를 물고 늘어지는 등 효능 깎아내리기에 여념이 없었다.

이날 설전은 그러나 토종 신약 클레부딘이 앞으로 헤쳐가야할 힘든 여정의 서곡일 뿐이다. 싸움 상대가 클락소스미스클라인(GSK), 브리스톨마이어스(BMS), 노바티스 등 골리앗 다국적 제약사들이기 때문이다.

현재 클레부딘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막바지 임상시험 중인 신약의 수는 3~4개. 모두 개발비만 수천억원이 들어간 비장의 역작들이다.

주도권에서 밀리면 투자비를 모두 날려야 할 판이다. 그래서 세계적으로 B형간염 항바이러스 제품의 교체 주기와 맞물린 요즘, 시판 허가가 나기도 전에 사운을 건 전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안티 쪽에서는 내가 뭐라고 말해도 트집을 잡더군요. 아주 긴장된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어요. 하지만 오랜 기간 고민하고 매달린 것이었기에 성공할 자신이 있습니다.”

정 교수는 또 “국제학회에서 자주 얼굴을 내비치고, 연구 결과를 알려야 우리나라의 제약기술력에 대한 국제적 신인도가 올라간다”며 “클레부딘이 세계시장에서 승리한다면 자연스레 한국의 위상도 크게 달라질 것”이라고 기대감을 내비쳤다.

그는 근거로 현재 B형간염 치료제 시장을 석권한 라미부딘을 예로 들었다. 이 약이 나온 이래 지난 10년 동안 이 약에 대한 연구결과들이 유수 학회지를 도배하다시피 하고 있다는 것.

1년 이상 복용해도 독성 없어

정 교수는 일단 “외국 골리앗들과의 대결에서 클레부딘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말한다. 그 근거는 약효다. 바이러스 증식 억제능력(Potency)이 다른 제품들에 비해 월등히 강할 뿐만 아니라 복용을 중단하더라도 약효가 지속되는 특성 때문이란다.

기존 약들의 경우 복용 중단 후 3개월이 지나면 대부분 재발하는 데 반해 클레부딘의 경우 복용한 환자 88%가 정상 간수치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 1년 이상 복용해도 독성이 없고 내성을 키우지 않는다는 것도 큰 장점이다.

“이번 임상실험 발표 결과가 만족스럽지만, 그 못지않게 발표하기까지의 과정에 더 큰 자부심을 느끼고 있습니다. 임상스터디를 국제적인 기준에 전혀 손색이 없도록 했거든요. 꼼꼼한 감사도 거쳤고 기록 유지도 누가 와서 뒤져도 자신 있을 정도입니다.”

“예전에는 경험 부족과 시스템의 미비로 국제적 신뢰를 얻을 만한 임상연구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 국내 실정”이었다는 정 교수는 “하지만 이젠 국내 의료의프라도 많이 정비됐고 의사들도 열정을 가지고 연구하는 만큼 세계도 한국을 다르게 볼 것이다”면서 정부의 관심과 지원을 당부했다.

클레부딘 개발… 12년 땀과 긴장의 결과

"기술력보다 이 정도의 신약을 개발해본 경험이 없었다는 게 가장 큰 어려움이었습니다."
B형간염에 대한 토종 신약 클레부딘의 임상시험을 이끌어온 제약사 관계자는 개발 과정의 어려움을 한마디로 압축했다.

국내에서 신약을 개발하는 일은 그만큼 무모한 모험에 가깝다.

연 매출이 수십조원에 달하는 다국적 제약사들의 거대 자본과 맞장을 떠야 하는, 계란으로 바위치기 식의 도전이다. 기존 약물의 화학 구조를 살짝 바꾸는 개량 신약이 아닌 완전히 새로운 약을 개발할 경우엔 더욱 그렇다.

클레부딘의 개발 과정이 쉽지 않았던 것은 이처럼 완전 신약인 데다가 시스템과 노하우가 아직은 취약한 국내에서 그것도 대규모로 임상실험을 했기 때문이다. 거쳐야 할 작업과 절차가 많았던 반면 축적된 임상시험 노하우가 미비하다 보니 숱한 시행착오를 겪어가면서 시스템을 하나씩 구축해야 했던 것.

그 때문에 95년부터 12년간 이어진 개발 과정에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북미와 유럽 지역 판매권 계약을 맺은 미국 제약사가 경쟁제품 개발사에 흡수되는 바람에 파트너십이 틀어졌고, 또 캐나다, 프랑스, 홍콩 등과 공동 실시한 초기 임상시험 때는 운동을 심하게 한 미국 환자의 간 수치에 이상한 변화가 생긴 것을 놓고 혹시 클레부딘의 부작용 때문은 아닌지 심야에 확인하느라 한바탕 소동을 벌이기도 했다.

제약사 관계자는 "이번에 클레부딘의 임상시험 결과를 발표까지는 가슴졸이는 초긴장의 연속이었다"며 "그렇지만 그 덕분에 한국의 신약 개발 능력은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됐다"고 그 의미를 평가했다.




송강섭 차장 special@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