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판 판매 불티, SW·콘텐츠 장악 강점… 휴대폰 시장 격변 예고

출시 2년 전부터 각종 루머를 양산해내며 관심을 모았던 애플의 휴대폰 ‘아이폰’이 지난주 정식 출시됐다. 예상대로 초반 기세가 심상치 않다.

휴대폰 판매량을 집계하는 글로벌 이큐어티 리서치는 애플이 지난주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사흘동안 총 52만5천 대의 '아이폰'이 판매됐다고 발표했다. 구매자의 95% 이상이 8GB의 제품을 구매했으며 50%는 다른 이동통신사를 사용하다가 AT&T로 옮겨온 것으로 밝혀졌다.

무서운 기세다. 애플 매장의 초도 물량이 거의 바닥이 났고, 구매자들은 이베이 등 인터넷 쇼핑사이트로 몰리고 있다. 이쯤되면 애플 아이폰의 위력은 MP3 플레이어 ‘아이팟’의 열풍을 넘어 ‘광풍’으로 불리기까지 한다.

그 무엇이 아이폰 폭풍을 몰고 온 것인가. 과연 아이폰은 초반 돌풍을 넘어 말 그대로 광풍으로까지 치달을 수 있을 것인가. 세계 IT업계가 비상한 관심 속에 지켜보고 있다.

■ 2년 전부터 시작된 신비 마케팅

아이폰의 초반 돌풍은 예상됐다. 아이폰은 정식 출시되기 훨씬 전인 2년 전부터 입소문을 타고 회자됐다. ‘애플이 아이팟에 이어 휴대폰도 만들려고 한다더라’는 말이었다.

이런 소문에 애플은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다. 고도의 마케팅 전술이었다. 루머는 루머를 낳고, 각종 추측이 난무하면서 일종의 ‘신비로운 제품’으로 포장됐고 알게 모르게 나오지도 않은 제품의 매니아층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른바 입소문 마케팅을 통한 초반 관심 끌기 전략의 대성공이었다.

애플이 휴대폰을 만든다는 얘기가 관심을 끈 배경에는 MP3 플레이어 ‘아이팟’의 후광효과도 컸다. 쓰러져가는 컴퓨터 회사 애플이 MP3 플레이어를 만들겠다고 했을 때 시장의 반응은 냉담했지만, 애플은 ‘아이팟’으로 멋지게 부활했다.

온라인 음악시장을 완전히 평정한 것이다. MP3 플레이어의 종주국인 우리나라에는 가슴 아픈 일이 됐지만.

캘리포니아 아올로 앨토 애플 판매점에 전시된 아이폰

디지털 기기 시장에서 성패의 열쇠가 콘텐츠에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아이팟의 성공 신화가 애플의 다음 행보를 주목하게 됐고, 그 결과 ‘아이폰’에 대한 무한 관심으로까지 이어진 것이다.

■ 휴대폰이 아니라 스마트폰

애플이 내놓은 ‘아이폰’은 사실 휴대폰이 아니다. 전화통화 기능을 담고 있긴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아이폰은 PC다. '아이폰'으로는 음악을 들을 수 있고, 동영상을 볼 수 있다. 이메일을 주고 받을 수 있으며 인터넷 서핑도 할 수 있다. 손안의 작은 PC라는 표현이 적절하다. 여기에 전화통화 기능이 추가된 것이다. 이 때문에 휴대폰이 아니라 ‘스마트폰’이 아이폰의 정확한 정체성이다.

스마트폰과 휴대폰의 차이는 메인 기능이 무엇인가에 따라 다르다. 전화통화가 기본인 휴대폰에 PC에서 할 수 있는 이메일, 채팅, 게임, 음악듣기 등의 기능을 넣은 것과 PC에 전화통화 기능을 넣은 것의 차이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맥월드 엑스포에 전시된 애플사의 아이폰

휴대폰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전화통화 기능이고, 그래서 다른 어떤 기능보다 가장 좋은 것이 통화다. 스마트폰은 기본이 PC기능이고 전화통화 기능은 부가 기능이다. 하지만 이런 구분 역시 이제 무의미해졌다. 휴대폰이나 스마트폰 모두 이제 주 기능, 부가 기능의 차이 없이 필수적인 기능이 돼 버렸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아이폰을 휴대폰이 아닌 ‘스마트폰’으로 불러야 하는 데는 다른 이유가 있다. 통신 시장의 헤게모니 싸움이라는 아주 중요한 이슈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현재 통신 서비스 시장의 주도권은 휴대폰 단말기가 아니라 통신 서비스 업체가 쥐고 있다. 주도권의 핵심은 소프트웨어와 콘텐츠다. 휴대폰 단말기 안에 들어갈 소프트웨어와 그 소프트웨어로 볼 수 있는 콘텐츠를 누가 좌지우지 하느냐에 따라 거대한 통신시장의 주도권을 확보할 수 있다. 그런데 현재 이 주도권을 서비스 업체가 쥐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애플의 스마트폰 아이폰은 그러한 구도를 뒤집으면서 탄생했다. 아이폰에는 애플이 직접 제작했거나 아웃소싱한 소프트웨어가 내장돼서 나왔다. 애플은 이미 디지털 음악 콘텐츠 시장의 확실한 강자다. 여기에 전화통화 기능을 넣어 출시했으니 헤게모니의 열쇠인 소프트웨어와 콘텐츠를 이미 확보한 채 세상에 나왔다는 것이다.

휴대폰 제조업체뿐 아니라 통신 서비스 업체들이 아이폰에 바짝 긴장하고 있는 진짜 이유다. 아이폰을 평가절하하는 쪽은 ‘아이폰 안에 내장된 기능들이 딱히 혁신적이라고 할 만한 게 없다’고 말하지만, 정작 중요한 부분은 놓치고 있는 셈이다.

아이팟이 나왔을 때도 그런 지적들은 있었지만, 아이팟은 아주 단순한 기능만으로도 시장을 보란 듯이 제패했다. 바로 온라인 음악 콘텐츠 서비스 ‘아이튠즈 뮤직스토어’를 통해서다.

이같은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기존 통신업체들도 뒤늦게 대응에 나섰다. 아이튠즈 뮤직스토어에 대항하기 위한 휴대폰 음악서비스를 공동으로 구축하고 나선 것이다. 바로 ‘뮤직스테이션’ 서비스다. 노키아, 삼성전자, 모토로라, 소니에릭슨 등 휴대폰 제조업체와 유니버셜뮤직, 소니BMG 등 4개 메이저 음반사, 보다폰 등 이동통신서비스업체가 뭉쳤다. 현재까지 약 40개 업체가 연합전선을 구축했다.

애플 아이폰의 위력을 절감하게 하는 대목이다. 반격에 나선 거대 컨소시엄과 IT업계의 이단아 애플과의 대충돌이 시작된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애플의 아이폰은 큰 관심사다. MP3 플레이어의 종주국인 우리가 아이팟에 무너진 뼈아픈 경험이 있다. 아이팟의 단순한 기능을 깎아 내리기만 하다가 보기 좋게 당한 것이다. 이제 아이폰이다.

휴대폰 제조업체들에게는 당장 비상이다. 미국 휴대폰 시장의 30%를 삼성, LG 등 우리나라 업체들이 장악하고 있는 상황이다. 아이폰이 일단 북미에서 출시됐지만, 올 가을부터는 유럽에서도 출시된다. 더구나 내년부터는 아시아에도 출시된다. 휴대폰 강국인 우리나라로서는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김상범 블로터닷넷 대표블로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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