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후판 등 원자재 수급 불안 심화● 기능인력 부족 따른 인건비 상승● 공급 초과로 향후 발주량 감소세계적 호황에 '묻지마투자'… '선박왕국' 암초 피해 순항할까

“조선 경기는 지금이 정점으로 보인다. 때문에 현재의 조선업 활황세만 보고 뒤늦게 뛰어드는 후발 주자들은 자칫 ‘상투’를 잡을 가능성도 있다.”

지난 수 년간 초호황을 누리며 콧노래를 불러온 국내 조선업계에 최근 ‘설비 과잉공급의 딜레마’를 심각하게 경고하는 목소리가 심심찮게 터져 나오고 있다.

현재 국내 조선업계는 신규 선박 건조 물량을 하나라도 더 따내기 위한 설비 신ㆍ증설 움직임이 붐을 이루고 있다.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등 세계 시장을 주름잡는 대형 조선업체들이 생산 설비를 대대적으로 확충하는 가운데 신생 조선업체들도 설비 신ㆍ증설에 가세하는 상황이다.

국내 조선업계는 최근 수 년째 사상 최대의 수주 실적을 계속 경신해 나가고 있다. 올 상반기 신규 선박 수주 물량은 364척에 금액으로는 332억 달러에 달했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무려 51% 증가한 것으로 사상 최고액 기록이다.

개별 업체들의 신기록 행진도 눈부시다.

업계에 따르면 현대중공업이 지난 5월 한 달 동안 33억 달러어치(현대삼호중공업 포함)를 수주해 월간 기준으로 사상 최대 수주액을 기록한 데 이어 대우조선해양은 7월에 40억 달러 수주를 넘어서면서 단일 업체 월간 수주액으로는 세계 기록을 세웠다.

이에 질세라 삼성중공업은 지난 상반기 100억 달러 수주를 돌파해 상반기 기준으로는 세계 조선업계 최초로 100억 달러 클럽에 가입하는 기염을 토했다.

국내 조선업계의 수주 대박 행진이 이어지는 것은 2000년대 들어 해상 물동량 증가와 선박 대용량화, 노후선박 대체 수요 등에 힘입어 세계 조선 경기가 꺾일 줄 모르는 상승세를 보이고 있는 덕분이다.

조선ㆍ해운 전문조사기관 로이드(Lloyd’s)의 통계에 따르면 세계의 선박 건조 수요는 2003년 3,550만GT(총톤수)로 전(前)고점인 1975년의 기록을 넘어선 이후 해마다 급증하고 있다. 지난해 5,179만GT로 가파른 수주 실적을 쌓은 데 이어 올해는 상반기에만 무려 6,900만GT의 기록적인 수주량을 나타냈다.

이처럼 세계 조선시장이 초활황세를 타면서 국내 조선업계에는 황금어장을 노리는 신생 업체들의 합류 움직임도 거세다. 2000년대 이후 새로 조선 시장에 뛰어든 신설 조선업체가 10여 개에 이른다.

특히 블록(선체를 이루는 큰 덩어리의 부분 몸체) 제작업체나 선박 수리업체가 조선업체로 전환하거나 다른 업종의 기업이 새로 조선소를 설립해 뛰어드는 사례가 크게 늘고 있다.

그 중 성동조선해양과 SPP조선은 2005년부터 조선업을 시작했지만 지난 6월말 기준 수주잔량이 200만CGT(표준화물선 환산톤수ㆍ조선소의 실질적 공사량을 나타내는 톤수)에 육박하는 세계 20위권 업체로 급성장해 주목받고 있다.

뿐만 아니라 최근 경남, 전남 해안벨트를 끼고 새로운 조선산업 단지가 조성되면서 20여개 업체가 기존 시설을 확장하거나 신설을 추진하고 있어 국내 조선업계의 설비 확충은 더욱 가속화할 전망이다.

문제는 이 같은 설비 신ㆍ증설 러시가 마치 ‘묻지마 투자’ 식의 기류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수 년간의 활황으로 조선산업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처럼 인식되면서 일단 뛰어들고 보자는 업체들이 적지 않다는 것.

한 업계 관계자는 “외국계 컨설팅 기관 등이 내놓는 세계 조선시장의 장기전망 자료만 보고 낙관적인 판단을 하는 업체들이 많은 것 같다”며 “하지만 이들 자료는 워낙 시황이 좋았던 최근 몇 년 동안의 기간을 바탕으로 나온 측면이 있어 무턱대고 믿어서는 곤란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신규 조선소 가세 등에 따른 설비 신ㆍ증설 열풍은 벌써부터 부작용을 낳고 있다. 우선 원자재 수급 불안이 심화하는 점이 우려스럽다. 수주 물량은 쏟아지는데 이를 모두 소화하기에는 원자재 공급이 너무 달리는 것이다.

특히 필수 원자재인 선박 건조용 후판(두꺼운 철판)의 경우 공급 부족난이 심각한 상황이다. 한국조선공업협회에 따르면 올해 국내 조선업계의 후판 수요는 752만톤에 달하지만 포스코, 동국제강 등 국내 철강업체 공급량과 해외 수입량을 모두 합쳐도 공급이 90만톤 가량 모자란다.

이 같은 후판 수급 불균형은 해가 갈수록 더 심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국내 주요 철강업체들이 현재 후판 공급 확대를 위한 시설 확충에 나서고 있지만 수요량이 더 빨리 늘어나는 탓에 2011년에는 후판 공급 부족량이 무려 370만톤 이상 될 것으로 보인다. 공급 부족도 문제지만 이에 따른 후판 가격 인상이 조선업체들의 비용 상승으로 고스란히 이어진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원자재뿐만 아니라 기능인력 수급 불균형도 점차 큰 문제로 다가오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현재 국내 조선업계의 연간 기능인력 신규 수요는 매년 1만 명 가량 증가하고 있지만 공급 증가는 8,000명 정도에 그치고 있다. 약 2,000명의 기능인력 공급 부족 현상이 빚어지고 있는 것.

지금처럼 조선소 설비 증설 경쟁이 지속되면 기능인력 부족 인원이 조만간 3,000명을 넘어설 것이라는 예상도 나오는 실정이다.

이처럼 근본적인 인력난에다 업체간 인력 스카우트전이 치열해지면서 인건비 상승도 부담스러운 수준에 이르렀다는 분석이다. 국내 조선업계 1인당 연간 인건비는 이미 일본을 넘어섰다.

하지만 무엇보다 우려되는 것은 세계 조선시장이 현재의 수요초과 구조에서 공급초과 구조로 전환되는 상황이 조만간 도래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지금은 넘치는 발주량을 주워담기에도 벅차지만 수 년 안에 오히려 수주 전쟁이 불 붙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국제적인 조선ㆍ해운조사기관 MSI의 자료에 따르면 향후 4년간 상당 규모의 공급초과가 예상되고 있다. 선박이 과잉 공급되면 해운업계의 운임하락과 매출감소가 불가피하고 이는 다시 선박 발주량 감소로 이어져 결국 조선시장의 불황으로 귀결된다.

공급초과 시장의 도래 조짐은 벌써 감지되고 있다. 진원지는 바로 중국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중국은 대규모 조선산업 기지 구축사업이 거의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어 세계 조선시장의 태풍의 눈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와 관련, 산업연구원 홍성인 연구위원은 “중국 조선기지가 본격 가동에 들어가면 신규 선박 발주량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일 수 있다”며 “이는 곧 국내 조선업계에 치열한 경쟁 국면이 펼쳐질 것을 예고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은 국내 조선업체들이 선박 건조능력만 갖추면 얼마든지 수주를 할 수 있지만 앞으로 가격 경쟁력이 없으면 살아 남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홍 연구위원은 현재의 뜨거운 조선 시황이 꺾이는 변곡점을 2010년으로 예상했다.

업계에서는 공급초과 시장이 되더라도 국내 조선업계 전체가 흔들리지는 않을 것으로 보는 견해가 좀 더 많다. 대형업체들은 이미 고부가가치 선박 시장에서 차별화된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공급과잉으로 인한 타격은 벌크선 등 범용 선박을 주로 건조하는 중소형 신생업체가 훨씬 클 것이라는 전망이다.

세계적인 조선 호황 덕분에 브레이크 없는 항해를 해온 한국 조선업. 과연 설비 과잉공급의 딜레마라는 암초를 피해 계속 전진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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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