엇! 단기금리는 오르고 장기금리는 내리고… 이젠 역전됐네달러 약세로 앉아서 돈버는 국내 장기채권에 외국 투자자들 몰려예금감소세 두드러져 단기자금난 심각한 은행은 CD금리 등 인상

그린스펀 전 연방준비위원회 의장.
2004년 이후 미국의 경기 회복세가 뚜렷해지자 미국의 연방준비위원회는 인플레이션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하여 재빨리 금리를 인상하였다. 그 결과 연방기금 금리는 2년 동안 3%나 올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은 기간에 10년 만기 미 재무성 채권이나 30년 만기 미 재무성 채권의 수익률은 오르지 않거나 거꾸로 하락하기도 하였다.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하루짜리 단기금리인 연방기금금리가 인상되면, 10년 만기 혹은 30년 만기의 장기금리는 당연히 올라야 하는 것이 정상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그래서 전임 연방준비위원회 의장이었던 그린스펀은 이런 현상을 두고 의회 증언에서 참으로 수수께끼 같은 일이라고 언급하였고, 그 결과 ‘그린스펀 수수께끼’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시장의 전문가나 혹은 학자들 사이에는 단기금리의 상승에도 불구하고 장기금리가 상승하지 않거나 오히려 하락하는 일, 즉 장기금리와 단기금리의 움직임이 상호 역전되는 현상이 왜 발생하는지에 대하여 여러 가지 논의와 연구가 행해졌다.

그린스펀 수수께끼에 대한 설득력 있는 설명으로는 첫째로 미국의 재무성 채권을 매수하기 위하여 해외에서 수많은 자금이 몰려들고 있으며, 특히 중국이나 한국, 일본 등 아시아 지역에서 미국과의 무역에서 발생한 무역흑자 자금이 거꾸로 미국으로 흘러 들어왔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해외에서 풍부한 자금이 집중되어 미국의 장기 채권을 매수하면서 채권가격이 올랐고, 그 결과 장기금리가 하락하였다는 것. 둘째로는 2004, 2005년 당시의 미국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재투자에 나서지 않았다는 것도 장기금리가 상승하지 못한 이유로 제기되었다.

기업들은 장기적으로 미국의 성장세가 지속되리라 확신하지 못하였기에 적극적으로 설비에 투자하기보다는 많은 금액을 현금으로 보유하려 하였고, 그것이 자금 시장에서 대출수요의 감소로 이어지면서 장기금리의 상승세를 막는 이유가 되었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제 미국에서 그린스펀 수수께끼는 그다지 중요한 이슈가 아니다. 왜냐하면 미국의 장기금리가 지속적으로 오르면서 금융시장이 정상을 되찾아갔고, 그래서 ‘수수께끼’가 점차 자취를 감추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는 우리나라에서 되레 ‘그린스펀 수수께끼’ 현상이 번지고 있다.

단기금리와 장기금리가 역전되고 있다. CD금리로 대표되는 1년 미만 단기금리 혹은 은행의 정기예금금리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는 반면, 10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거꾸로 하락하는 모습이 최근 두드러진다.

지난주 채권시장의 실제 거래에서 10년물 채권의 수익률이 5년물 채권의 수익률을 밑도는 양상이 빈번하게 나타나더니 급기야 증권업협회에서 공식적으로 고시하는 국고채 수익률에서조차 금리가 역전되고 말았다. 5년물의 금리가 5.75%를 기록하면서 10년물 금리인 5.72%보다 오히려 높아진 것이다.

국고채 10년과 5년물의 금리가 역전된 것은 사상최초의 일이다. 더구나 10년물 금리뿐만이 아니라 20년물의 금리도 5년물 금리보다 낮은 5.73%에 고시되었으니 일시적인 일이라고 말할 수도 없다.

왜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일까? 그린스펀 수수께끼의 이유처럼 해외에서 풍부한 자금이 물밀듯 우리나라로 쏟아져 들어오는 것일까? 그에 대한 답은 ‘그렇다’이다. 장기 채권에 대한 수요가 봇물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장기금리가 오히려 하락하고 있다. 다만 성격은 전혀 다르다.

최근 우리나라의 자금시장은 철저하게 이원화되고 있다.

단기물 쪽에는 자금의 수요가 많으나 자금의 공급이 없어서 금리가 하늘 높이 치솟기만 하는 반면, 장기물 쪽에는 자금 수요에 비하여 자금의 공급이 넘쳐나는 통에 금리가 연일 하락하고 있다. 그 결과가 사상초유로 5년물과 10년물 금리가 역전되는 현상으로 표출된 것이다.

우선 단기물 쪽으로는 은행들의 자금난이 심하다. 특히 정기예금 등 싸고 안정적인 자금원의 구실을 하였던 예금의 감소세가 두드러져서 은행들이 유동성 비율을 맞추느라 고심하고 있다.

이렇게 된 것은 높은 수익률을 좇아 정기예금 등 예금의 많은 부분이 은행을 빠져나가 주식시장이나 혹은 펀드로 옮겨가기 때문이다. 은행은 예금을 빼앗기지 않으려 예금금리를 잇달아 인상하고 있고, 또한 국내 주식시장도 다소 흔들리는 기색이지만 이미 차이나펀드 등 국내외 주식형펀드의 높은 수익률 맛을 본 예금주들은 정기예금 금리에 만족하지 못한다.

결국 은행은 자금도 모자라고 여력도 없으니 단기물 채권을 매수할 형편이 아니다. 그런데다 단기 유동성 자금을 확보하려고 은행들이 경쟁적으로 양도성 예금증서(CD)의 발행을 크게 확대하면서 CD 금리마저 상당히 많이 올랐다. 자금의 공급은 없고, 수요는 넘치니 단기금리가 연일 오를 수밖에 없다.

서울 중구 명동에 위치한 외환은행 본점 글로벌마켓영업부 외환딜러들이 심각한 표정으로 모니터를 응시하고 있다.

반면에 장기물의 경우에는 자금의 수요에 비하여 자금의 공급이 넉넉하다.

연기금 등 장기투자기관의 매수 수요도 많지만, 특히 외국인들의 장기채권 매수세가 꾸준히 이어지고 있어서 장기채권은 시장에서 품귀현상이 나타날 지경이다. 당연히 장기채권의 가격은 크게 올랐고, 그 결과 장기금리는 하락세로 나타난다.

그러나 외국인들이 국고채 장기물을 꾸준히 매수하는 것은 우리나라의 경기전망을 밝게 본다거나 혹은 채권의 가격 상승을 기대하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보다는 해외의 풍부한 유동성을 이용하여 달러를 국내에 들여와 장기물 채권을 매수하기만 하면 그냥 ‘앉은 자리에서’ 수익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재정거래의 기회가 열려있다.

이론적으로 말한다면 외환시장에서의 선물환율은 두 통화의 금리차이를 정확하게 반영하여야 한다. 예컨대 달러 금리가 4%이고, 원화 금리가 5%라면, 원화의 선물환율은 연율로 1%포인트 비율만큼 높아야(원화 평가절하) 한다.

하지만 요즘 우리나라 외환시장에서는 이런 ‘이론가격’이 통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앞으로 원화 가치가 절상(즉 달러 하락)될 것을 예상하는 기업들의 선물환 달러 매도 물량이 쏟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이론적으로는 선물환율이 현물환율에 비하여 높아야 함에도 실제로는 선물환율이 오히려 현물환율에 비하여 훨씬 낮게(달러 약세) 거래되고 있다. 이것이 외국인들에게 무위험 재정거래를 할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외국인들은 해외에서 국내로 달러를 들여와서 외환시장에서 달러를 현물환으로 팔고, 그 대가로 받은 원화로 장기물 채권을 사기만 하면 무조건 수익을 얻는다.

미래의 환율변동에 따르는 환위험은 현물환율보다 훨씬 낮게 거래되는 선물환율로 달러를 매수하면 사라지므로 이래저래 안전한 수익이 날 수밖에 없다.

결국 외국인들의 재정거래 수요가 집중되면서 장기물 채권이 품귀현상을 보이고, 장기물 채권의 가격이 급등하고, 그 결과 장기금리가 오히려 단기금리보다 낮아지는 현상을 초래한 것이다. 이런 재정거래는 기회가 사라질 때까지는 지속될 것이다.

반면 단기물에서는 여전히 은행들의 자금난이 쉽사리 해소되지는 못할 것이다. 주식시장이나 펀드로 이탈한 은행예금이 다시 돌아오려면 상당한 기간이 걸리기 때문. 그러니 CD 금리만 상승세를 거듭할 터.

하지만 더 심각한 문제는 CD에 연동되어 있는 주택담보 대출이다. CD 금리가 치솟으면서 애꿎은 주택담보대출 금리도 덩달아 상승하였다.

외국인들은 재정거래를 통해 안전한 수익을 누리지만 주택을 마련하고자 담보대출을 받은 서민들의 허리는 더욱 더 휘어지는 형편이다. 자금시장의 불균형이 가져온 단면이다. 그리고 이 불균형이 단기간에 해소되지는 않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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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근 메버릭 코리아 대표 jaykkim@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