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접으며]선심 한 번 쓰고, 100만표 얻고.


주지하다시피 국회의원의 힘은 막강하다. 하청업체에게 대기업과 거래할 수 있도록 연결 끈을 놓아줄 수도 있고, (지금은 워낙 검찰의 힘이 막강해져서 어떨지 모르겠지만) 검사들에게 청탁을 넣어 수사를 막아주기도 한다. 건축물 인ㆍ허가권도 절반 가량 갖고 있다는 우스개 소리도 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혹시라도 뒤탈이 날 수 있는 불법적인 권력 행사다.

국회의원들이 아무런 탈 없이 합법적으로 유권자들의 호감을 살 수 있는 일은 법 제정이다. ‘입법(立法)’이 그들의 고유 권한이니 당연한 얘기다. 세금을 깎아주고, 연금을 올려주고, 혜택 기간을 늘려 주고…. 유권자들을 사로잡을 수 있는 법안이라면 이것 저것 따질 이유가 없다. 법안에 따른 부작용은 해당 부처가 고민할 일이지 ‘의원님’들이 애써 걱정할 필요가 없다. “어차피 선심 쓰는 것인데 법안은 많이 쏟아 내놓고 보자”는 식이다. 물론 선거철이 되면 그들의 선심은 더욱 넘쳐 난다.

청년 실업 해소를 위해 향후 5년간 공기업에 대해 매년 정원의 3% 이상을 의무적으로 채용토록 하는 ‘청년실업해소 특별법’이 최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를 통과, 법사위에 넘겨졌다. 통상 최저선인 20명을 간신히 넘겨 발의가 이뤄지는 다른 법안과 달리 제안에 참여한 의원은 무려 148명에 달했다. 다수당인 한나라당이 입법을 강력히 추진하고 있어 이번 임시국회 회기 중 본회의 통과가 확실시된다고 한다.

의원들은 이런 계산을 하고 있을지 모른다. “구직 포기자를 포함해 청년 실업자가 100만명에 달한다고 하니 법안이 통과되면 4월 총선에서 100만표는 확보한 셈이군.” 정확하지는 않겠지만 얼추 크게 틀리지 않는 계산 같다. 실업난을 해소하자는 명분도 그럴 듯하고, 만약 시행이 된다면 효과도 적지 않을 법하다.

하지만 강제적으로 3%의 인원을 충원해야 하는 공기업, 혹은 정부출연기관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어떨까. 법이 그렇다니 울며 겨자 먹기로 신규 채용을 하긴 하겠지만, 궁극적으로 생산성 향상을 저해하고 효율성을 떨어뜨려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대규모 감원에 나서야 하는 악순환이 불가피할 것이다. 가뜩이나 DJ정부 4대 개혁 중 공공 개혁이 가장 미진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마당에. 혹시 이들은 몇 년뒤 공기업 사장들을 국정감사장에 앉혀 놓고 “왜 이렇게 방만한 경영을 했느냐”며 태연하게 질책하고 있지나 않을지 모르겠다.

뭐, 그렇다고 이번 법안에 대해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일 일은 아니다. 그저 총선을 앞두고 향후 쏟아질 숱한 선심성 법안의 예고편 정도에 불과하니까.

이영태 기자


입력시간 : 2004-01-02 15:42


이영태 기자 yt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