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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눈] 차라리 벌레를 먹어?


모스크바에서 특파원으로 근무할 때였다. 추운 겨울 어느날, 서울에서 온 한 친구 부부를 가까운 자유 시장으로 데리고 갔더니, 대뜸 이랬다. “너무 지저분한데, (사먹어도)괜찮을까….”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당시만 해도 시장 주변은 썩 깨끗하지 않았다. 또 흙투성이의 그릇에 담긴 감자나 붉은 무, 꽁꽁 언 감과 사과, 그리고 거의 맨바닥에 진열해 놓은 고기들과 생선들이 서울 손님에겐 불결하게 보였을 것이다. 겉 모습은 그래도, 깨끗하게 씻어 놓으면 먹음직스러웠다.

역시 추운 겨울날, 서울의 지하철역 입구에서 구수한 냄새를 피우는 노점상 앞에 서면 몸과 마음이 훈훈해 진다. 당국이 비위생적이라며 조리 자체를 금지시키고, 때론 눈살이 찌푸려질 만큼 불결한 곳도 없지 않지만, 출출한 배를 채워주는 김밥과 오뎅, 떡볶이, 튀김 등은 요긴한 간식 거리였다. 튀김과 만두를 떡볶이 양념에 섞어 먹은 뒤 오뎅 국물을 입가심으로 마시면 속이 다 개운해졌다.

‘ 쓰레기 만두’니, ‘ 유통 기한이 지난 라면 스프’니 하는 소위 ‘먹거리 대란’이라지만, 지난 겨울 노점상에서 사먹었던 만두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한 입에 넣기 좋게 토막을 내다보니 삐쳐 나온 만두 속이 보일 때도 있었는데, 솔직히 꼭 집어 말할 수 없는 뭔가가 늘 마음 한 구석에 걸렸다.

그런 만두도 즐겼던 입장에서 “ 도대체 뭘 먹으란 말이냐”고 분노하는 소비자들을 부추겨 “죽일 X, 살릴 X” 할 바는 못 되지만, 위생적이라고 믿었던 사람들을 우롱한 식품업자들은 엄벌을 받아야 마땅하다. 모스크바 시장에서 산 먹거리들도 깨끗하게 씻으면 전혀 나쁘지 않다는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는데, 가공 식품이라는 게 그 모양이니 말이다. 노점상 음식이야 으레 그런 것이라고 포기하고 먹으면 그만이다. 솔직히 말해 이번에 만두가 재수 없게(?) 불거졌지만, 되짚어 보면 ‘ 쓰레기 족보’가 어디 단무지뿐이겠는가.

우리 식품들이 쓰레기 취급을 당하게 된 데는 역시 허술하고 관대한 우리나라 식품위생법을 탓하지 않을 수 없다. 그 동안 숱한 식품 사고로 국민의 건강이 위협 받아 왔지만 정부의 무책임한 행정, 솜방망이 처벌은 여전하다. 쓰레기 단무지를 만두소에 넣은 혐의로 적발된 업체들이 최근 30일 이내의 경미한 행정처분 통고를 받은 것으로 그쳤다니, 업체들의 ‘ 배째라’식 영업만 나무랄 수도 없다는 생각이다. ‘ 먹는 것 갖고 장난치는 X들은 사형을 시켜야 한다’는 게 국민 감정인데, 행정 당국은 딴 나라 사람들로 채워져 있는가 보다.

느닷없이 ‘ 웰빙’ 바람이 불어 닥친 게 그런 연유가 아닌지 궁금하다. ‘일 빙(ill-being) 만두소’를 만드는 사장님이, 위생법 체계를 잘 아는 고위 공직자들이 값 비싸고, 깨끗한 최고급 유기농 식품을 찾고, 급기야는 ‘웰빙’ 열풍은 만들어낸 것 아닐까?

이런 나라에서 ‘잘 먹고 잘 사는 법’은 자기가 직접 농산물을 재배하고 키워 먹는 것일 게다. 하지만 도회지 생활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바람이 스치는 대숲과 솔숲이 있고 물소리가 들리는 개울이 있는 곳에 조그만 집을 지어 낙향한 소설가 정찬주의 ‘ 소박한 삶’에는 자연을 따르는 이치가 녹아 있다. “ 농사군 1년차 였던 작년에는 경험 부족으로 크게 실패했다. 고구마 줄기와 잎이 무성하여 크게 기대하고 삽질을 했는데, 땅속에서 드러난 고구마는 실망 그 자체였다. 못 생기고 부실한 고구마. 그야말로 허장성세였다. 겉모습을 근사한데, 보이지 않은 부분은 빈약하기 짝이 없었다.” (‘ 소박한 삶, 고구마를 보고 깨닫는다’ 중에서)

모르긴 해도 ‘쓰레기 만두‘ 역시 많은 소비자들의 눈을 속이기 위해 겉은 더 번지르르했을 것이다. 잘 먹고 잘 살려면 겉이 번지르르한 건 우선 피하는 게 좋을 듯 하다. 일본 마이니치 신문의 후코오카 켄세이 기자가 쓴 유기농 체험서 ‘즐거운 불편’에는 몸에 해로운 농약이 야채에 어떻게 기능하는지 절절하게 적어 놓았다.

“4월이 되자 몇 마리의 하얀 작은 악마들이 밭으로 쳐들어 오더니 양배추니 브로콜리니 할 것 없이 여기저기에 알을 낳아대기 시작했다…(중략)… 전멸시켰다고 한숨 돌리는가 싶었는데, 사흘 후 몸길이 4Cm나 되는 놈이 유유히 양배추 잎으로 식사를 하고 있는 게 아닌가…(중략)… 결국 봄에서 가을까지는 무농약으로 양배추를 키우기 힘들다. 시판되고 있는 곱디고운 양배추 대부분은 흙에 뿌려진 약제를 뿌리로부터 흡수해 자라기 때문에 벌레들이 기생하지 못한다. 벌레도 먹지 못할 것을 인간이 먹는 셈이다.”

한마디로 곱디 고운 양배추는 농약투성이라는 말이다. 겉이 조금은 허술한 것, 그게 오히려 몸에 좋을 수도 있다. 눈에 뻔히 보이는 불량식품을 고를 수는 없다. 결국은 개인의 판단에 의한 선택의 문제다.

분명한 것은 지난 겨울에 먹은 노점상 만두로 아직 한번도 탈이 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모스크바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정찬주씨나 켄세이 기자처럼 직접 키워먹지 않으려면, 역설적이지만 무얼 먹든 마음이나 편하게 하는 게 우리의 식품위생법 아래서 잘 먹고 잘사는 법이다.



이진희 부장 jinhlee@hk.co.kr


입력시간 : 2004-06-16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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