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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와 오늘] ‘클린턴의 인생’ 속의 한국 대통령들


빌 클린턴 전 미 대통령의 회고록 ‘ 나의 인생’은 발간 10여일 만에 인터넷 서점 아마존닷컴의 베스트 셀러 1위에 올랐다. 그러나 뉴욕 포스트에 칼럼을 쓰고 있는 네오콘의 한 기둥인 존 포드 호레츠(‘부시의 나라-어떻게 부시는 위대한 대통령이 되었으며 자유주의자들을 미치게 했는가’를 지난 3월에 냄)는 이 책을 혹평했다.

“ ‘나의 인생’은 너무 길다. 내 인생은 너무나 짧아 이 책을 다 읽을 생각은 없다.” 속독가인 그는 975쪽의 이 책을 사흘에 걸쳐 읽었고 대략 50만 단어가 될 것으로 봤다. 그가 읽은 클린턴의 인생과 시대는 읽기에는 고통스러운 것이었다. 그는 ‘120쪽이나 되는, 클린턴이 어린 시절을 보낸 아칸소주의 홋 스프링이나 호프의 거리 모습을 꼭 읽어야 하는가’하고 묻고 있다.

“ ‘파크가(街) 먼 아래쪽에 작은 이발소가 있고 그 곳에서 미스터 브리젠다인이 내 머리를 깎았다’로 시작되는 거리 모습은 12줄이나 나온다. 비행기 옆 좌석 친구가 듣고 싶지 않은 자기 인생 이야기를 끊임없이 해대 화장실로 빠져 나갔다가 돌아오자 또 이야기를 시작하는 그런 지루함이 이 책에는 널려 있다”고 비아냥댔다.

그는 “클린턴은 2차 대전 후 대통령이 된 베이붐 세대의 첫 대통령으로 그 세대를 대변해왔다. 그러나 9.11이후의 상황 속에서 그의 인생 이야기는 너무 가식적이고 먼 곳에 있는 것 같다”며 새로운 21세기에 대한 전 대통령으로서의 비전이나 대안이 없는 것에 실망했다.

아마존닷컴에 독자평을 쓴 버지니아주에 사는 토니 산체스는 두 서평가와 인식을 달리 했다. “그의 책이 매쪽마다 매혹적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가 지닌 탁월한 지성에 대해 호평할 필요는 없다.” “그가 정책을 펴는 모습에는 남에게 좋은 일을 하겠다는 그의 생활철학이 담겨 있다.” “클린턴은 여러 어린아이들같이 어렸을 때부터 대통령을 꿈꿨다.그는 투표함에 부정표를 넣거나 (존슨 대통령이 첫 선거할 때), 상대방을 음모로 훼손(전 닉슨 대통령)하거나 아버지나 부자 친구들의 도움을 받지 않고도 대통령이 되었다. 이 책에는 그의 대통령시절의 명암이 있다. 그런 대통령을 가진 것이 없는 것보다 낫다.” 그의 의견에 독자 5명 중 3명이 동의했다.

지루할 정도의 동네친구, 선생님, 책, 영화, 음악에 대한 기억. 그 기억과 대통령직과의 연결을 꾀하며 전개되는 이야기는 서울과 평양까지 뻗쳐 있다.

그가 취임하며 닥친 93년 4월의 북한의 IAEA사찰 거부 파동 때문이지만 그가 서울의 YS, DJ 대통령을 보는 눈은 따뜻하다.

그는 YS에 대해 네 곳에서 쓰고 있다. 93년 7월 스시 정상회담이었던 교토 G-7 회의를 마치고 서울에 처음 왔을 때를 이렇게 썼다. “ 내가 청와대 실내 풀장에 몸을 담그자 엘비스 프레슬리에서 재즈까지 내가 좋아하는 음악이 나왔다. 이게 유명한 한국인의 친절이다. 나는 한국을 떠나며 한국이 영원한 우리 동맹이며 이를 반드시 지키겠다고 결심했다.”

그 후 93년 11월에는 APEC 정상회담 후 YS를 취임 후의 첫 국빈으로 초청해 만찬 등 행사를 가졌음을 14줄이나 썼다. 독자들에게 미 대통령의 공식만찬이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알리기 위한 것이다.

해를 바꿔 94년 7월 YS가 워싱턴의 한국전쟁 기념탑 제막식에 왔을 때다. 그는 “우리는 북한의 핵을 완전히 동결하는 것을 재확인했다. 김영삼 대통령의 활약은 제시 헤름즈 상원의원(공화당 극우파 최원로 의원) 등이 북과의 협상을 비난하는 것을 누그러뜨렸다. 김 대통령은 한국이 권위주의 정권 아래 있을 때 감옥에 갔고 민주주의의 주창자 였기에 그의 재확인은 큰 도움이 됐다.”

그는 DJ에 대해서는 YS보다 더 친근감을 느끼는 듯 기술했다. 97년 12월 24일, DJ당선 후 IMF가 한국에 17억 달러의 지원을 보내자 그는 이렇게 썼다. “ 김대중은 오래된 민주투사로 1970년대 카터 대통령이 개입하지 않았다면 이미 처형되었을 것이다. 나는 예비선거운동이 한창인 1992년 5월, LA 시청 앞 계단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내가 활약하고 있는 것처럼 새로운 방법으로 정치에 접근하는 데 동의했다. 그는 용기와 비전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그를 돕고 싶다.”

클린턴은 회고록의 거의 끝부분에서 아라파트의 이스라엘과의 평화조약 반대로 북한에 가지 못했음을 아쉬워 했다. “ 나는 한국의 참여 없이는 북한과 어떤 핵 협상도 하지 않는다고 공약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한국전 이후 남북 화해에 가장 가까이 접근했다. 그 때문에 노벨 평화상을 탄 게 아닌가. 북한과의 장거리 유도탄 동결을 못한 게 아쉽다.”



박용배 언론인


입력시간 : 2004-07-06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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