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접으며] '정선아리랑' CD 8장에 깃든 뜻


아리랑 사나이 김연갑씨가 최근 이뤄낸 성과는 여러 가지 상념을 떠올리게 한다. 사이버 문명이 지배하는 시대에 구전 문화를 재현해 낸다는 일은 도대체 어떤 함의를 지니고 있을까 하는 문제 의식이 맨 앞머리에 위치했을 것이다.

그의 성과물은 민중의 문화는 그 나름의 재생산 논리를 갖고서 ‘지금 이곳’의 상황과 함께 꾸준히 동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시켜 주기 때문이다. 민속 예술을 박제화시켜 둔 채 잘났네 못났네 싸움질을 시키던 ‘전국 민속 경연’ 같은 것이 얼마나 허섭스레기 같은 접근법이라는 사실을 그는 카랑카랑 확인시켜 주었다.

동시에 이번 음반은 또 다른 고민 하나를 안겨 주었다. 며칠씩 걸린 녹음 작업에 진지하게 응해 준 순박한 일가족에 대해서도 어떤 식으로 고마움을 표해야 할까 하는 것이다. 문화 자산이 사회적 시스템과 어떻게 맞물려 가야 하는가라는 문제가 들이닥친 셈이다. 어느날 문득 들이닥친 관심에 대해 산골 사람들이 나름의 합당한 경계심도 갖게 된 것이 모두 외지인들의 책임이란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외교통상부 산하 한국교류재단을 통해 세계에 산재한 500여곳의 한국학 연구소에 이번 음반이 공식적 연구 자료로 채택될 수 있도록 첫 접촉을 한 것이 9월 1일. 긴 시간을 두고 추진해야 할 일이다. 또 세계에서 가장 긴 사설을 가진 노래로서 기네스북에 등재되도록 하는 작업도 자신의 과제로 믿는다. 마침 2005년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에서 잡힌 테마 중 하나가 바로 ‘한국의 해’다. 행사를 기획하던 재독 교포가 김씨의 한민족아리랑연합회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연락해 옴으로써 그 사실을 알게 됐다. 이 작업이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한국은 기네스북에다 자랑스런 기록 하나까지 남기게 되는 셈이다.

현재 유네스코에 등재된 세계 최장의 전승 민요는 필리핀의 ‘후두후두 송가’. 소실 위기의 구비 문학을 보존하자는 취지의 이 상 이름이 공교롭게도 ‘아리랑상’이라는 사실을 아는 한국인들은 얼마나 될까? 또 그 노래는 3시간 분량이지만, ‘아라랑’은 제대로 불려지면 5,000여수의 사설에 3박4일을 불러도 못 다 한다는 사실을?

무궁무진한 콘텐츠, 바로 ‘아리랑’에 있다.

장병욱 차장


입력시간 : 2004-09-15 17:00


장병욱 차장 aj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