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와 오늘] 부시의 '인격 문제'


“오늘 당장에 2004년 대통령 선거가 실시된다면 누굴 찍겠는가.” 워싱턴포스트는 일일 지지도를 10월 4일부터 조사하고 있다.

8일(현지시간)의 제 2차 대선 후보 토론을 하루 앞둔 7일의 결과는 부시와 케리 후보의 지지도가 49% 대 47%였다. 케리가 10%의 차이를 극복하고 대등, 우세로 후격하는 혼전 상태다.

6일 상원에 제출된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WMD) 보유 의혹에 대해 독자적인 조사를 벌인 ‘이라크 서베이 그룹’ 찰스 두얼퍼 단장의 보고서는 20여 일을 앞둔 대선 양상을 바꿀 조짐이다.

두얼퍼는 “지난 해 3월 이라크를 침공할 때 그 나라에는 WMD가 존재하지 않았다”고 요약했다.

부시는 토론에 앞서 아직도 접전 중인 펜실베이니아 유세에 나서며 성명을 발표했다. “두얼퍼 보고서에는 WMD가 없었다는 것 뿐만 아니라, 사담 후세인이 세계를 속이고 제조 금지된 무기를 생산하려 했다는 것도 포함되어 있다.”

“후세인은 유엔이 오일을 팔아 식량을 사도록 한 봉쇄정책 완화를 통해 WMD를 만들려 했다. 그 때의 첩보에 근거해 미 행정부는 정당한 행동에 나선 것이다. 미국은 후세인을 감옥에 넣음으로써 안전을 찾았다.”

부시의 이런 성명이나 발언은 이라크 침공이나 사전 공격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근거로 여러 차례 반복됐다. 왜 그럴까.

그에 대한 답을 지난 8월 5일, 공화당 후보 선출 전당대회를 앞두고 나온 로널드 케슬러의 ‘인격(성격) 문제 - 조지 W 부시의 백악관 안쪽 이야기’에서 찾아본다.

케슬러는 워싱턴포스트, 월스트리트저널의 탐사보도 기자로 지내면서 ‘인격 문제’ 이전에 ‘FBI’ ‘CIA’ ‘백악관 내막기’등을 내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작가의 명성도 얻고 있는 인물이다. 특히 그는 경호원, 수위, 식당종업원, 안내원 등을 통해서 그들이 접촉한 인물의 인격, 특성을 찾아내 논리보다는 사실 추적을 전문으로 하는 작가기자다.

그는 2000년 대선에서 앨 고어 민주당 후보를 찍었다. 그러나 고어가 올해 민주당 후보로 다시 나섰다가 하워드 딘 전 메인 주지사에게 후보 자리를 양보하자 그의 ‘인격’에 손을 들었다. 그가 생각하기에는 고어는 최소한 그의 러닝메이트였던 조셉 리버먼 상원의원에게는 미리 이 같은 생각의 변화는 알렸어야 ‘인격’은 산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는 ‘FBI’ ‘CIA’ ‘백악과 내막기’등의 책을 쓰면서 ‘미국의 대통령은 어떤 사람이어야 하나’를 늘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에게 다가온 것은 대통령 취임 후 모교 예일대에서의 부시 연설이었다.

“내가 이 대학을 졸업할 때, 나는 인생에 대한 계획이 없었다. 어떤 사람은 계획이 있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름에 따라 그 나름의 기대와 달리 인생은 부침(浮沈)한다. 인생 자체의 요구에 따라 인생은 바뀌며 스스로 적어내려 간다. 그렇게 살다 보면 우리는 자신이 인생을 쓰는 작가가 아님을 깨닫게 된다.”

케슬러는 숙명ㆍ운명론 같은 이 연설에서 부시의 미국 대통령 직에 대한 신념을 읽을 수 있었다. 30여 년간의 대통령 직에 대한 그의 탐사는 두 가지로 요약됐다.

한 유형은 “내가 대통령이 돼야 한다”는 형이며 다른 한 유형은 “대통령이 되고프지 않았는데”형이다. ‘되어야 한다’ 쪽에는 린든 존슨, 빌 클린턴, 리차드 닉슨이 있었다.

케슬러는 부시와 중학교, 대학을 함께 다녔고 지금은 백악관 인사 담당인 크레이 존슨, 법률고문인 알베르토 곤잘레스 변호사, 안보 담당 부보좌관인 스테판 하드리 등과의 밀착 인터뷰에서 ‘되고프지 않았는데’형의 부시를 찾을 수 있었다. 20~30년을 부시가 측근으로 삼은 이들은 “부시는 할아버지, 아버지가 세운 부시 가문의 인격에 맞는 인생에 목적을 걸었지, 나라를 다스리는 데 목적을 두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케슬러는 몇 가지 에피소드로 세상이, 특히 자유언론 평자들이 부시에 대해 말하는 ‘소년왕’ ‘곧잘 권총을 빼는 카우보이’ ‘머리가 텅 빈’ ‘조급한’ ‘오만한’ ‘아버지 부시보다는 레이건의 아들’이란 평을 반박하고 있다. 부시는 “대통령 전용기 ‘에어포스 원’ 의 승무원, 조종석을 찾아 꼭 감사와 수고를 이야기한 첫 대통령, 경호원들을 사람으로 대하는 첫 대통령”이라는 것이다. 존슨 대통령은 에어포스 원 화장실에서 보좌관들에게 지침을 내리는가 하면 그가 즐기는 커티샥 위스키를 묽게 탔다고 카페트에 술을 쏟고는 “다시”를 외치기도 했다.

그는 75~97타를 3시간만에 치는 골퍼지만, 그와 게임을 한 사람들은 ‘멀리건’을 요청한 적이 없었다고 했다. 클린턴의 잦은 멀리건 요구와는 사뭇 달랐다.

그는 매일 CIA와 FBI 국장의 브리핑을 받는다. 아침 6시에 기상, 8시에 보좌관 회의를 한다. 밤 10시에 취침하기 전까지 결정할 서류를 읽지만 5개 신문을 훑어보고 저녁 TV뉴스는 보지 않는다. 비서실장이 아침에 뉴스를 요약해 보고한다.

“그는 머리를 컵이라고 한다면 반만 채우고 자야 한다. 악몽에 시달리면 아침에 일어나지 못한다”고 늘 말한다.

“만약 아버지 부시가 그에 관한 좋고 나쁜 뉴스를 보는데 하루를 보낸다는 것을 알았다면 ‘그만 두십시오’했을 것이다.” 앤드류 비서실장의 말이다.

케슬러는 결론 짓고 있다. “누구도 부시 대통령이 재임 중 위기를 맞으리라 예측 못했다. 누구도 그가 위기에 누구보다도 적절히 대처할 것이라고 생각 못했다. 이런 위기 대처를 위해서 대통령에게는 비전, 용기, 인내, 낙관, 정직, 집중, 절제, 결단력이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미국에 대한 헌신 정신이 있어야 한다. 결국 그것은 인격의 문제인 것이다.”

많은 서평가들은 케슬러의 책이 현재의 부시 지지자의 표를 확고히 하고 부동층을 잡는데 큰 기여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 결과는 20여일 남았다.

입력시간 : 2004-10-13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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