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와 오늘] 마틴의 두 백일몽


스티븐 해들리 백악관 국가안보 보좌관은 12월 7일 “미국은 북한에 대한 정권 교체나 체제 붕괴 같은 계획이 추호도 없으며, 굳이 표현하자면 체제 변환(regime transformation)이다”고 밝혔다. 워싱턴을 방문한 국회 대표단과의 대담에서였다.

11월 30일과 12월 3일 두 차례에 걸쳐 뉴욕에서 미국측과 6자회담 실무접촉을 한 북한 대표는 밝혔다. “우리는 6자 회담에 계속 참가할 용의가 있다. 다만, 미국이 적대 정책을 철회하는 등의 일정한 조건과 환경이 마련돼야 6자 회담이 의미가 있다”는 뜻을 전했다.

또 한번 엉뚱한 가정을 해 본다. 10월 15일 나온 브래들리 마틴의 ‘친애하는 어버이 수령 아래 – 북한과 김씨 왕조’를 백악관 안보팀과 북한 뉴욕 대표부측이 읽어 보았을까 라는. 양측은 최소한 마틴이 1979년 4월 첫 방북이후 2004년 7월까지 살펴 본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미국에 대한 인식을 이해 한 것일까?

특히 양측은 마틴이 미국대통령 재선 전에 꿈 꾼 부시 대통령의 김정일위원장에 대한 특사 파견의 ‘백일몽’을 알아 냈을까? 또 양측은 1960년대 평화 봉사 단원으로 타이에서 살아 본 마틴이 62세로 동갑나기인 김 위원장이 후계자 결정에 대해 마틴이 품고 있던 또 다른 ‘백일몽’을 이해했을까?

현재 루지애나 주립대학 언론학부 교수로 있는 마틴은 ‘발티모어 선’, ‘뉴스위크’, 방콕에서 발행되는 ‘아시아 타임스’ 등에서 ‘평양 워치’의 컬럼니스트로 동아시아, 특히 북한에 대한 객관적 관찰자로 일하고 있다. 1990~91년은 하와이 동서문화센터에 기자 연구원이었고, 92년에는 풀브라이트 장학생으로 한국에 오기도 해다.

그는 1979년 4월 한국전 휴전 후 처음으로 대규모로 파견된 미 탁구팀을 따라 평양에 첫발을 디딘 뒤 89년, 92년에는 임수경이 참가한 세계청소년 축제 등을 취재했다. 2000년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방북 후, 금강산을 찾기도 했다.

그는 0.5포인트의 “깨알 같은 글씨가 박힌 이 880쪽의 책을 위해 ‘노동신문’은 물론, 한국에 떠도는 루머와 시사 잡지 등의 기사들을 취재했다. 그것도 모자라 1백여명의 탈북자들에게 10만원 안팎의 교통비까지 지급하며 인터뷰했다.

그의 결론은 명확했다. 김정일 위원장은 “한때 미쳤지만, 지금은 북한의 경제를 시장 경제화 하려는 개혁가다. 그는 사담 후세인이나 히틀러가 아니다. 아버지인 수령 김일성이 물려 준 나라를 3대째인 손자에게 물려주면 되겠지만 그것은 꼭 정남, 정철, 정운 등의 손자가 아니라, 손녀(설송)일 수 있다”는 것이다.

마틴은 서로를 ‘악마’와 ‘악의 축’으로 적대시하는 미국과 북한의 관계는 김 위원장이 변화한 것처럼 달라져야 한다고 결론 짓고 있다. 그는 지난 7월 13년간 연구한 북ㆍ미 관계와 김정일 위원장의 변화를 종합하며 ‘낙관적 백일몽’을 얻은 것이다. 재선에 나선 대통령이나 그에 도전하는 후보가 김 위원장에게 특사를 보내 미국의 입장을 전했으면 하는 꿈이었다.

마틴의 꿈은 엉뚱한 것이 아니다. 미국내에서 일고 있는 김 위원장의 비인권적 독재에 대한 반응을 감안한다면, 미사일ㆍ핵 문제는 물론 북한에 변화가 있어야 함을 일깨워 준다. 김 위원장이 미국과 동맹을 맺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북한의 핵무기는 미국을 향한 것이 아님”을 명확히 할 때 북미 관계는 정상화 된다는 것이다.

그는 꿈을 꾸었다. <김 위원장이 북한의 인권 문제에 대한 개선을 바라는 미국 특사에게 빈정대며 말한다. “그래, 미국 대통령이 ‘10월 충격’ 운운하며 북한의 해방자가 되겠다는 것을 인정하라는 거요?” 미국 특사는 웃음을 띠고 분명히 말한다. “우리 대통령은 그런 신뢰를 북한 인민에게서 얻는 게 당신에게 무리입니까. 그 보다 미국 대통령은 당신이 북한에서 위대한 해방자가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의 꿈은 계속된다. <김 위원장은 공안담당 비서를 즉각 불러오라고 명령한다. “모든 지방 담당 비서에게 오늘밤 안으로 모여 정치범 수용소를 정상적인 마을로 변화 시키는 방안을 연구토록 하라. 내가 후회하게 될 지 몰라도, 1개월 내에 수용소의 철망을 모두 걷어 내겠다.”>

마틴의 또 다른 꿈은 김 위원장이 딜레마에 빠진 북한 경제의 시장 경제화와 왕조적인 북한 체제의 후계자자 문제 해결이다. 그는 김 위원장이 북한이 공산사회주의에서 벗어나 스웨덴이나 타일랜드 왕국을 모델로 삼았음에 유의했다. 그가 한 때, 그리고 최근까지 일했던 타이가 김 위원장의 모델이라는 사실을 그는 후에 접할 수 있었다.

마틴은 그가 김 위원장으로부터 이에 대한 자문을 받았다고 생각하며 다시 꿈을 꾼다. <“김 위원장님! 김정운(고영희와의 둘째 아들)이가 좀 거칠다는 소문입니다. 사담 후세인의 거친 두 아들 우다이, 퀘세이의 오늘날의 운명을 생각해 보십시오. 독재가 아닌 현대의 왕조국가는 인민의 복지를 지향합니다. 거친 후계자는 안됩니다. 타이에서는 국민들이 부미왕의 공주, 수린손을 대단히 좋아 합니다. 비록 그의 큰오빠가 공식 승계자이지만 말입니다. 아직도 후계자를 공식화하지 않은 위원장께서는 인민들에게 인상이 깊은 설송(고 김영숙과의 첫딸)은 어떻습니까? 그는 경제에도 밝고 부드러우며 인민들의 마음에 들어, 좋은 왕가를 이루지 않을까요?>

브래들리 마틴의 두 백일몽은 말그대로 백일몽에 그칠 공산이 크다. 그러나 김 위원장이 변하고 있다는 낙관 속에서 북ㆍ미, 남ㆍ북 관계를 꿈 꾼다면 일장춘몽으로만 끝나지 않을지는 모른다.

봄에는 마틴의 백일몽이 피기를 바란다.

입력시간 : 2004-12-16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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