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접으며] 아버지의 이름으로


10년 전 이맘 때다. 해방 50주년을 맞아 중국의 동북 3성(랴오닝성, 지린성, 헤이룽장성)내 우리 역사, 그 중에서도 항일 독립 운동의 자취를 찾아 개인 답사를 갔다. 조선족 가이드와 함께 헤이룽장성(黑龍江省) 하얼빈을 거쳐 목단강시에 도착해 가장 먼저 달려 간 곳은 청산리대첩(1920년)의 영웅인 백야 김좌진 장군의 딸이 살고 있는 집이었다.

거의 허물어져 가는 중국식 다층집에서 만난 67세의 김강석 노인은 아주 작은 몸이었지만 목소리는 카랑카랑했다. 힘차게 부르던 독립군가가 점점 눈물 속에 잦아 들면서 깊게 패인 주름에는 우리의 뒤틀린 현대사와 개인의 슬픈 역사가 옹이처럼 박혀 있는 듯했다. 김 노인의 어머니는 그를 낳자 마자 정체 불명의 일제측에 의해 피살당했고, 부친 김좌진 장군은 목단강에서 조금 떨어진 산시에서 1930년 초 공산계열 동포에게 암살당했다.

김 노인은 부모가 남긴 가난을 떠 안은 채 조선족이라는 소수 민족의 서러움과 남ㆍ북의 무관심 속에서 힘겨운 나날을 살아 왔다. 김 노인은 잠시 한국을 들러 언론의 조명을 받기도 했지만, 중국에서는 켜켜이 쌓인 고달픔을 감내하며 살다 2003년 쓸쓸히 운명하셨다.

김좌진 사후 12년 뒤인 1942년 3월, 지린성(吉林省) 창춘(長春)에 위치한 만주국 육군군관학교에서는 2기 예과졸업식이 있었다. 당시 수석 졸업생인 오카모토 이노부(다가키 마사오)는 천황에 충정을 바친다는 내용의 졸업생 답사(어전 강연)를 하였다. 그리고 수석의 특전으로 일본 육사 57기로 입대, 44년 뛰어난 성적으로 임관해 만주군 보병 제8단에 배치, 항일투쟁을 하던 마오쩌둥(毛澤東)의 팔로군을 상대했다. 그의 한국명은 박정희, 1961년 5ㆍ16 군사 쿠데타로 집권했던 사람이다.

최근 과거사 청산과 한일협정 관련 문건 공개로 여론이 들끓자 박정희의 딸인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는 “요즘, 아버지를 잊고 싶다”며 심정을 토로했다고 한다. 김 노인을 한국에서 다시 만났을 때, “아버지의 이름으로 생을 버텨 왔다”는 독백 같은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부모의 비극적 운명사를 닮은 박 대표 역시 김 노인이 말했듯 ‘아버지의 이름으로’ 삶을 챙겨 갈 지 자못 궁금해 진다.

박종진 기자


입력시간 : 2005-01-27 17:29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