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남 씨 母子, 28년 만의 ?은 만남… 다시 긴 이별

“엄마,나 맞아. 막내 맞아. 막내 아들이 이제 효도할게.”

까까머리 고교 1년생 아들은 어느덧 마흔이 넘은 중년이 되어 팔순 노모의 품에 안겼다.

남과 북으로 갈라져 생이별한 지 28년 만이다. 17세의 어린 나이에 실종됐던 김영남(45) 씨는 불혹을 넘겨서야 어머니 앞에 다시 섰다.

6월 28일 금강산호텔에서 열린 제 14차 이산가족 특별상봉 4회차 행사를 통해 어머니 최계월(82) 씨와 누나 영자(48) 씨를 눈물 속에 상봉했다. 혈육의 정 이외는 그 어떤 것도 범접할 수 없는 순간이었다.

이날 남측 취재진 앞에 처음 모습을 공개한 김 씨는 건장한 체격의 밝은 모습이었다. 지난 97년 재혼한 것으로 알려진 부인 박춘화(31) 씨, 김 씨와 요코다 메구미의 딸 은경(19) 양, 재혼한 부인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철봉(7) 군의 표정도 밝았다.

김 씨는 남측 취재진을 상대로 연 기자회견을 통해 “은경이는 김일성 종합대에서 공부하고 있고, 철봉이는 소학교에 다니고 있다. 집사람은 당(黨)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다. 장인은 평양시 인민위 부위원장으로 사업하고 계신다”며 “남부럽지 않게 살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대남공작기관인 노동당 대외정보조사부에서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회견에 앞서 노모에게 팔순상을 차려 올리며 못다 한 효도를 대신하기도 했다. 잉어, 털게, 신선로, 토종닭, 각종 과일과 떡이 푸짐하게 차려진 북한식 팔순상이었다. 최 씨의 생일은 음력 7월 15일이지만, 28년간 생일상을 차려주지 못한 죄스런 마음에 미리 앞당겨 마련했던 것이다.

아들은 또 어머니에게 산삼을 선물하며 “어머니 이거, 건강하시라고 제가 마련한 산삼인데 90년 짜리야, 꼭 잡수시고 오래오래 사셔야 해”라고 말했다.

그러나 못다 한 28년간의 효도를 다 하지도 전에 이들 모자는 또 다시 눈물 속에 다시 작별했다. 2박 3일간의 아쉬운 만남을 마치고 30일, 다시 남북으로 각자의 발길을 돌려야만 했다.

아들 영남 씨가 선물한 휠체어를 탄 최 씨는 이날 작별상봉장에 들어서자마자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으며 오열했다. 최 씨를 안아주며 “엄마 울지마”라고 말하는 김 씨의 목소리도 울먹임으로 떨렸다. 작별 상봉에서 두 모자는 한참동안 부둥켜 안고 서로 다독였다.

그러나 아쉬운 상봉이 끝나고, 아들이 어머니를 안아 버스에 태우자 어머니는 또 오열했다. 아들의 표정도 굳어졌다. 어머니가 탄 버스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아들은 자리를 뜨지 못했다. 아들은 “8월 아리랑 공연 때 꼭 모시겠다”고 약속했다.

이번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통해 김 씨 가족을 포함해 2000년 2차 상봉 이후 가족을 만난 납북자는 총 15가족 69명으로 늘었다. 6.25 전쟁 후 납북자 총 3,790명 중 미귀환자는 여전히 485명인 점을 감안하면 아직도 납북자 전원 상봉으로 가기까지는 갈 길이 멀기만 하다.

그래서 분단이라는 비극적 상황의 희생양이 된 납북자 문제의 처리를 위해 남북한 당국이 보다 적극적으로 해법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현재 일회성 상봉 행사에 그치고 있는 이산가족 문제의 돌파구를 열어야 한다. 적십자사에만 행사를 맡기기보단 당국이 나서 상시적인 만남이 가능할 수 있는 통로를 뚫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번 김영남 모자 상봉은 평화통일이라는 막연한 구호보다는 더디더라도 피부에 와닿는 이산가족의 만남 자리가 더 많아져야함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주고 있다.


배현정 기자 hjba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