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우리당 탈당 도미노… 대선구도 격변 예고

그것은 가히 둑의 터짐이요, 위기를 벗어나려는 엑소더스며, 차례로 무너지는 도미노였다.

1월 22일 임종인, 23일 이계안, 24일 최재천, 28일 천정배, 30일 염동연, 2월 5일 정성호 의원에 이어 6일 강봉균, 김낙순, 김한길, 노웅래. 노현송, 박상돈, 변재일, 서재관, 양형일, 우윤근, 우제창, 우제항, 이강래, 이근식, 이종걸, 장경수, 전병헌, 제종길, 조배숙, 조일현, 주승용, 최규식, 최용규 의원이 무더기로 열린우리당호(號)에서 하선했다. 그 다음 탈당의원은 누구?

탈당 대열에 전 원내대표와 전 정책위의장이 포함돼 더 충격적이다. ‘100년 정당’의 기치를 내걸고 백년가약을 맺었던 열린우리당은 겨우 3년3개월 만에 단꿈을 접고 이혼도장을 찍었다. 열린우리당 의석은 17대 총선 당시 147석에서 110석으로 급감했고 127석의 한나라당은 얼떨결에 원내 1당이 되었다. 열린우리당발(發) 정계개편은 시동이 걸렸고, 대선 가도는 시계불량의 짙은 안갯속에 휩싸였다.

이번에 탈당한 의원들은 이혼 명분으로 “현재 열린우리당이 추진하는 통합신당에는 외부인사 참여 가능성이 희박하다”며 “모든 중도개혁세력과 함께 통합신당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다소 급진적인 일부 친노 그룹이 열린우리당의 진로에 대해 발목을 잡는 한, 올해 대선에서 희망이 없기 때문에 차라리 갈라서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탈당은 열린우리당의 태생적 한계 때문에 예견된 일이었다. 노무현 대통령 측이 ‘탈(脫)지역당’을 명분 삼아 민주당에서 탈당하여 신당을 만들면서 열린우리당=노무현당이 된 것이다.

그런데 노 대통령이 인사 난맥상과 국정 혼선으로 민심이 등을 돌리면서 같은 배를 타다간 모두가 공멸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탈당파로 하여금 배에서 뛰어내리게 했다고 할 수 있다. 대선 참패는 물론이거니와 내년 총선에서 자신의 안위마저 장담할 수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열린우리당은 보수파에서 좌파까지 이념의 스펙트럼이 너무 넓어 언젠가는 노선투쟁이 일어날 것으로 예상됐다.

노 대통령과 다른 길을 선택한 탈당파의 앞길은 여전히 험난하다. 탈당파끼리도 노선이 통일되지 않고 그들의 색깔도 두루뭉실하다. 이해득실에 따라 또다시 이합집산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대선 직전에 대통합하려는 ‘위장위혼’이 아니냐고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한나라당도 “기획탈당”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어쨌든 탈당파는 교섭단체 구성, 중도개혁세력 연대 등 세력 확산, 대선주자 영입, 정체성 확립, 정책과 비전 제시 등 수많은 숙제를 안고 있다.

노 대통령은 탈당파에 대해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 이후 당을 깨고 새로 만들어서 성공한 사례가 없다”고 비판했다. 2003년 민주당을 탈당한 노 대통령의 자기모순적 상황인식이다. 탈당의원들이 계속 나올 수밖에 없는, 열린우리당 내 구조적 문제가 있음을 말해준다.

노 대통령조차 당이 원한다면 탈당하겠다고 말했다. 열린우리당의 탈당의 끝은 어디일까. 한국의 정당들은 왜 이리도 잘 깨지고 잘 만들어지는 걸까.


박종진 차장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