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사람은 따라가지 말 것, 길을 가르쳐 달라거나 부모 또는 교사가 데려오라 했다고 접근할 경우 단호히 거부할 것.

인천 초등생 유괴 살해 사건으로 어린이 유괴 공포가 확산되자 경찰청이 펴낸 예방 안내 책자 내용 중의 일부다. 경찰청은 지난 3월 19일 아동이 유괴당하거나 실종되지 않도록 미리 막는 지침서를 전국 초등학교, 유치원, 은행, 자치단체 등에 비치하기로 했다.

한편 이날 오전에는 인천 박 모 군 유괴 살해 용의자 이 모(29) 씨에 대한 현장 검증을 박 군 피랍 장소인 인천 연수구 송도국제도시 아파트 단지와 산 채로 던져진 유수지 등 범행 장소에서 하였다.

이 씨는, 자신의 견인차량을 도로에 세워 놓고 지나가던 박 군에게 길을 묻는 척하며 박 군을 태워 납치하는 장면을 보였다. 이어 이 씨는 납치 장소에서 5㎞ 가량 떨어진 남동공단 유수지로 이동하여 테이프로 박 군의 입을 막고 손발을 묶은 후 포대에 싸서 산 채로 3m 아래 유수지에 던지는 당시 상황을 재연했다.

인천 초등생 유괴 살해 사건에서 가장 가슴 아픈 사람은 누구였을까. 말할 것도 없이 그의 부모일 것이다. 그 부모는 먼저 간 자식을 가슴에 묻고 평생을 비통 속에서 살아갈 것이다.

3년 전 이라크 무장단체의 손에 죽은 김선일 씨 가족 역시 그 상처는 여전히 아물지 않았을 것이다. 이들은 아늑함이나 평안함과는 거리가 먼 ‘와중’에서 살아가야 한다. 가족을 앞세운 예 말고도 고통 속에서 살아야 하는 사람은 또 있다.

적잖은 부양가족을 두고 실직한 가장, 어린 자식을 두고 멀리 떠나야 하는 부모, 투자 실패나 자연 재해로 전 재산을 한순간에 날린 사람, 오랜 세월 공들여 세운 탑이 짓밟힌 사람, 배신당한 사람…. 이들도 와중에 처해 있다.

‘와중’이 무엇인가. 와중은 ‘흐르는 물이 소용돌이치는 가운데’로서,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놓일 때를 가리킨다. 또한 ‘일이나 사건 따위가 시끄럽고 복잡하게 벌어지는 가운데’의 의미로도 쓰인다. “많은 사람이 전란의 와중에 가족을 잃었다”, “밀고 밀리는 아우성으로 가득 찬 와중에 새치기하려는 사람도 있다” 등이 그 예다.

그런데도 ‘와중’이 때로 엉뚱하게 쓰인다. 3월 20일 자 언론 보도를 보자.

①지난 2월 초순에는 주가가 2만 원을 넘기도 했다. 이 와중에서 팬택 계열의 워크아웃 추진 등의 여파로 급락하기도 했지만 주가는 강세 기조를 이어가고 있다.

②최근 에어버스는 2025년까지 중국의 대형 여객기 수요가 미국에 이어 세계 2위를 차지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이런 와중에 중국은 첫 국내 제작 여객기인 ARJ21을 2009년 선보일 예정이다.

③너도나도 코스닥이 최고라고 소리치고 있다. 이 와중에 코스닥시장의 강세가 지속되기 힘들다는 분석이 나와 관심을 끌고 있다.

④바쁜 와중에도 드라마를 꼬박꼬박 보고

위 ①~④ 용례에서 ‘와중’은 어울리지 않는다. ①은 ‘한때’로, ②는 ‘상황에서’, ③은 ‘한편으로는’ 또는 ‘반면에’, ④는 ‘중에도’ 또는 ‘가운데에도’로 고쳐 써야 말뜻을 잘 살린 예가 된다. ‘와중’이란 대체로 보람이나 안정과는 거리가 먼 곳에 자리 잡는다.


김희진 국립국어원 국어진흥부장 hijin@mct.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