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DJ) 전 대통령은 12월 4일 노벨평화상 수상 7주년 기념 행사에서 단일화에 나서려는 범 여권 두 후보를 만났다.

DJ는 맞은편에 나란히 앉은 민주신당의 정동영 후보, 창조한국당 문국현 후보를 보며 “둘이 앉아 있으니 보기가 좋다”고 덕담을 했다.

문 후보는 자리에 앉기 전 DJ에게 인사했다. “유한에서 34년 일하며 20개 이상의 시민단체 대표를 맡았고 멀리서는 자주 뵈었다.… 홍업(DJ의 차남)씨와는 ROTC 동기동창으로 얼마 전에도 만났다.” 문 후보는 지난달 22일 ‘2007 창작인 포럼’에서 DJ가 제안한 ‘선 연합 단일화, 후 통합’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정동영 후보는 이를 숙지하는 인사를 했다. “대통령님 덕분에 이런 자리가 만들어졌다. 걱정 안 끼쳐 들이도록 잘 협력해서 노력하겠다.”

이를 지켜 보며 그 전날(12월 3일) 정 후보에 대한 지지를 공식 선언하고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은 강금실 전 법무장관의 선언문 한 대목이 떠 올랐다. “정동영 후보는 정직합니다.

범개혁세력의 정신을 이어가고자 하는 ‘열정’을 지니고 있습니다. 저는 정동영 후보와 국무회의 석상에 나란히 앉아서 국정에 동참했던 사람으로서 정 후보가 짊어져야 할 짐이 있다면 그 짐을 나눠지겠습니다.

정 후보가 지닌 깨끗한 마음과 진지한 ‘열정’과 정직함을, 정 후보가 지닌 한반도 평화를 향한 열망과 평범한 사람들의 따뜻한 행복을 이루고자 하는 소망을 국민들 마음속까지 찾아가서 전달하도록 최대한 노력 하겠습니다.”

이 선언문 중 정치판에서 잘 쓰지 않는 ‘열정’(불타오르는 듯한 세찬 감정)을 두 번 쓴 것이 마음을 끌었다.

열정, 어디서 많이 본 단어였다. 그건 11월 23일 서울 평창동 대화문화아카데미(전 크리스천 아카데미)에서 열린 ‘2007년 대선과 정당정치의 위기’를 주제로 한 토론회에서 최장집 고려대 정치학과 교수<1943년생. 시카고대 정치학과 박사. 2007년 10월 29일 ‘어떤 민주주의 인간’ 냄.

‘한국 민주주의의 이론’(1993년),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2002년), ‘민주주의의 민주화’(2006년)의 저자>가 낸 발제문과 토론에 많이 들어가 있던 단어였다.

최 교수는 2007년 대선이 최악의 대선이 된 것은 “정당의 공고화 없는, 정당 없는 민주주의 속에 치러지기 때문”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정당 없는 민주주의’는 민주주의 중심제도의 정상적 작동을 위협한다.

정당의 공고화 없는 민주주의 공고화의 한계를 보여준다. 정당이 바로 서는 것의 중요성을 이번 선거는 일깨워 준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회의 다양한 이익과 ‘열정’, 갈등을 조직ㆍ 대표할 수 있는 정당체제의 건설이 최우선적으로 요구된다.

대안적 이념과 프로그램은 이를 뒷받침하는 정당조직 없이는 사회적 효과를 가질 수 없다. 여기에 강조될 것은 민주주의의 본질은 산출측면이 아니고 참여적 인풋(input)이라는 것이다. 새로운 정당건설에는 리더십이 역할이 중요하다.>>

최 교수는 10월에 펴낸 ‘어떤 민주주의 인가?’라는 2007년 대선의 현상분석과 민주화 20년을 고찰한 책에서도 ‘열정’이란 말을 자주 썼다. <<2007년 12월 대통령선거 막바지에 이를 때까지도 정당간 경쟁구도가 확정되지 않았던 사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대통합 민주신당, 구여권, 범여권 등 그 명칭이 어떠하든, 그것은 단지 특정 시점에서 대통령 후보 선출 규칙 하나에 매달려 있는, 그 외에는 아무런 이념이나 가치, 목표와 ‘열정’을 공유하지 않은 이질적이고 무정형적 정치인들의 인적집단을 일컫는 말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한다.… 현대 대의제 민주주의의 핵심가치는 달라지지 않았다. 그것은 사회의 다수를 이루는 보통사람들이 스스로의 ‘열정’, 요구,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체제 혹은 그런 체제를 만들기 위한 정치적 실천이나 요약이라 할 수 있다.”

강금실 전 장관은 “정당은 보통사람들의 ‘열정’을 정치로 이끄는 통로며 사회균열과 갈등을 대표하는 조직”이라는 최 교수의 생각에 동조했기에 정동영 후보 공식 지지에 나선 게 아닐까?

강 전 장관은 11월 23일 토론회에서 신당, 앞으로의 정당이 어떠해야 할까에 대해 말했다. “열린우리당은 기간당원제가 실패했고, 당의 노선을 정할 때 잘못 되었다고 본다. 기간당원제로 하고, 나머지는 유권자들이 언제든지 참여할 수 있는 열린 조직을 만들어냈어야 한다. 그런 모임을 만들어 문화적으로 변화된 진보를 담아 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실감하고 실천해야 할 것은 보통사람들이 가진 ‘열정’을 조직하는 것일 것이다.

대선주자들은 지거나 이기거나 최장집 교수의 ‘어떤 민주주의인가’를 꼭 읽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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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배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