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 넘어 '교감'으로 대중과 소통하다

윤심덕 김광희 유재하.
어디에선가 흘러나오는 잘 모르지만 왠지 익숙한 노래를 들으면 자신도 모르게 흥얼거리게 된다. 우리가 친숙하게 느끼는 대중가요 속에는 익숙한 클래식 선율이 숨어 있는 사실을 아시는지. 클래식을 그대로 차용한 크로스오버 형식의 대중음악도 있지만, 최근에는 클래식을 샘플링하는 자연스런 방식으로 녹여낸 대중가요가 많아졌다. '클래식 샘플링=대박'이란 흥행공식이 생겨날 정도다. 이런 음악적 흐름은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

과거에는 고급예술로 여긴 클래식과 천박한 '딴따라 음악'으로 생각했던 대중음악의 경계는 선명했다. 그땐 클래식 음악가가 대중음악인과 함께 무대에 오른다는 것은 자신의 음악 경력을 포기하는 자살행위나 다름없었다. 그만큼 클래식은 상위 장르이고 대중음악은 하위 장르라는 편견이 강력했다. 상황은 역전되었다. 요즘 클래식 공연장에 가보라. 대중음악과의 콜라보레이션 무대가 대세다. 이는 대중음악을 천시했던 과거와는 달리 대중과의 적극적인 교감을 통해 클래식의 대중화를 위한 클래식 음악가들의 눈물겨운 자기 변신이다.

견고했던 장르 간 경계는 음악을 넘어 문학에까지 파급되고 있다. 과거 시인들은 자신의 시가 대중가요 가사로 이용되는 자체를 불쾌하게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다. 실제로 권위 있는 대중가요 시상식의 작사부문 수상자로 지명되어도 수상을 거부했던 시인들이 있었다. 지금도 그럴까? 시가 읽히지 않는 디지털세상이 되면서 시인들이 자신의 시가 대중가요의 가사로 사용되어주길 갈망하고 있다. 이런 것을 두고 상전벽해라 했던가!

주로 클래식 명곡에 현대식 리듬과 비트를 가미한 대중가요들은 크로스오버, 퓨전, 혹은 하이브리드 음악이라 불리고 있다. 사실 한국 대중음악은 태동기부터 지금까지 꾸준하게 인연을 맺어오고 있다. 그 장구하고도 찬란한 역사를 4회에 걸쳐 시리즈로 소개하려 한다. 대중음악과 클래식의 만남을 이야기하자면 일제강점기 한국 사회를 발칵 뒤집어 놓았던 '사의 찬미'로 시작해야 한다. 루마니아의 작곡가 이바노비치의 관현악 왈츠 '다뉴브 강의 잔물결'의 선율에 한국어 가사를 붙인 이 노래는 새로운 양식의 노래였고 무엇보다 대중적 파급력이 엄청났다. 또한 윤심덕은 경성 사범학교와 동경의 우에노 음악학원에서 유학한 엘리트 여성으로 가곡을 불렀던 성악가였다.

일제강점기엔 민요가 서민들이 즐겨 듣는 진정한 대중가요였다. 신민요라 불리었던 대중가요는 고급음악 장르로 여겨졌고 실제로 한국 최초의 직업가수인 채규엽 등 상당수의 대중가수들은 성악을 전공한 엘리트층이 많았다. 해방 후 등장해 '신라의 달밤'을 발표하며 최고의 인기가수로 떠오른 현인도 실은 일본 동경에서 성악을 전공한 클래식 음악도였다. 일본에서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그는 경성제국대 음대교수를 꿈꿨던 인물이다. 당대 사회에서 성악가가 유행가수로의 변신한 것은 하나의 사건이었다. 이전의 가요와는 전혀 새로운 스타일의 멜로디와 독특한 창법은 하루아침에 현인을 빅 스타로 등극시켰다.

조영남 최양숙 유희열 현인 음반모음.
1966년 '황혼의 엘리지'를 빅히트시키며 MBC 10대 가수에 선정되었고 1971년 포크가수로 변신해 국민가요 '가을편지'를 불렀던 한국 최초의 여성 샹송가수 최양숙도 서울음대 성악과 출신이다. 그녀가 데뷔한 60년대에 성악에 기초한 클래식한 그녀의 창법은 '대중가요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이끌어냈다. 대중음악계의 영원한 아웃사이더 조영남도 서울음대 성악과 출신임은 널리 알려져 있다. 70년대 포크 명곡 '세노야',

'나 돌아가리라'를 작곡하고 노래했던 김광희 역시 서울음대 작곡과 출신이다.

80년대에 한양대 음대에서 작곡을 전공했던 유재하도 클래식과 대중음악을 융합하는 팝 발라드를 시도했다. 그의 곡이 기존 가요와 차별된 것은 바이올린, 첼로 등의 현악기와 클라리넷, 플루트, 오보에 관악기까지 클래식 악기들을 대중음악에 적극적으로 도입했기 때문이다. 데뷔앨범 발표 후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그를 추모하고 기리기 위해 이듬해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역사를 이어오고 있는 '유재하 음악경연대회'출신인 유희열(예명 토이) 역시 서울음대 작곡과 출신이다.(2편으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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