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영의 명당 아쉬워…양택 활용 중요

1995년 가을이었다. 평택 유선방송 허○○ 전무가 수원 오목교 근교에 산이 있다며, 양택이나 음택의 길지가 있는지 풍수 감명을 의뢰하기에 가게 되었다.

위치는 수원시 봉산면 현 장안대학교 앞의 산. 의뢰 받았던 산의 감평이 끝난 후 허 전무는 바로 옆산에 묘지가 있으니 가보자고 했다. 필자에게 일종의 시험을 해본 것이다.

6기의 묘지가 있는데 비석이나 어떠한 표석이 없다. 묘지를 중심으로 형상을 보니 풍수적으로 명당이 되는 묘지가 있었다.

허 전무에게 “이 묘로 인하여 자손이 큰 부를 이루었네요. 그런데 장손보다 차손이 더 큰 발전을 하게 되었습니다. 장손이 더 잘되는 주작이 아니고 조상묘지 좌향이 차손 쪽의 주작으로 좌향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자손이 부(富)는 형성하지만 그 자리에서 귀성(貴星)이 보이지 않아 정치나 학자 쪽으로 명예를 이룰 자손이 나오기는 어렵다라고 하자, 허 전무는 정확하다며 그 때서야 선경그룹(SK그룹) 최종현 회장 조상묘지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그러면서 차손이 더 잘되는 것도 알 수 있느냐며 최종현 회장이 차손이라고 하였다.

당시 확인이 된 것은 조상묘지 15m 가량 밑으로 정혈(正穴)의 명당(明堂)이 형성돼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후 1997년 6월 27일 최종현 회장은 미국 병원에서 수술을 했으며, 간병하던 부인 박계희 여사가 먼저 사망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때 필자는 1995년도에 감평했던 수원시 봉산면 선영에 묘지를 쓸 경우 먼저 확인한 명당이 있었기에, 잘 볼 줄 아는 지사라면 그 묘자리를 감택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장사 3일 후 박여사 묘지를 봐 두었던 명당에 썼는지가 궁금해 찾아가 확인 해보니 정혈의 명당이 아니었다. 정혈은 박여사 묘지 5~6m 밑에 그대로 있었으며 다른 곳에다 묘지를 쓴 것이었다. 당시 지사가 누구냐고 물으니 전 서울대 지리학과 교수였던 최○○씨라고 하였다.

필자가 알고 있는 혈에 모셨다면 묘지 뒤 좌측에 귀성도 있어 자손 중에 귀한 인물도 배출하게 된다. 그리고 자손들은 더 큰 발전은 물론 지금의 몇 배 명당의 효력을 볼 수 있다.

그렇게 귀한 자리를 활용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움으로 남는 동시에, 모친을매장 후 화장을 해 2~3년이 지나면 자손들에게 서서히 흉한 일이 발생하게 될 것으로 우려됐다. 본 내용은 1998년에 발간한 필자 저서 <천년만에 한국이 세계를 지배한다>의 일부이다.

1년 후 최종현 회장 사망과 함께 화장유언으로 장례를 화장장으로 한다는 보도가 있었다. 필자는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손인 최태원 회장이 이끄는 SK그룹의 발전은 국가에 그만큼의 영향이 지대하기에 화장을 철회시켜 필자가 확인한 명당에 어머니(박계희 여사)와 아버지(최종현 회장)를 합장으로 모신다면, 두 분의 명당기(氣)로 인해 자손(SK)이 지금보다 몇 배 더 발전할 수 있을 것으로 봤다.

고민 끝에 유족 등에게 풍수 위력과 원리를 설득하기로 마음 먹고, 당시 평택에 있던 필자는 장례위원장 김○○(SK구조조정 본부장)에게 전화를 해 풍수원리와 명당이 있음을 알리고 이해를 시켰다.

기회는 이번 뿐이니 유족들에게 설득할 것을 요청했다. 2시간 후 전화가 왔다. 아버님 유언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필자는 다시 설득하였다. 풍수 위력은 인간능력을 초월하는 것이며, 최 회장께서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처럼 그 산에 명당이 있다는 것을 몰랐으므로, 화장할 것을 유언한 것 같으니 조언대로 명당에 모실 것을 다시 권했다.

이에 이해가 된 김 위원장은 다시 가족회의를 해보겠다며 기다리라고 했다. 3시간 후 전화가 왔는데, 언론보도로 화장한다고 이미 전국민에게 알려졌는데 어떻게 매장으로 변경할 수 있느냐라는 결론이 났다며, 특별한 자문은 감사하나 먼저 돌아가신 어머님도 이번에 파묘하여 같이 화장을 한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들은 필자는 더더욱 긴장했다. 사망 후 바로 하는 화장은 무해하지만 매장했던 직계조상 묘를 파서 화장하는 것은 자손에게 큰 화를 주기 때문이다. 풍수연구가로서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5일장 중 3일 되던 날 필자는 워커힐 호텔 뒤 최회장 자택 상가를 찾아갔다. 그곳에서 김○○ 장례위원장을 만났다.

이번 설득으로 자손의 장래와 그에 따른 국가발전, 사회에 미칠 영향, 명당묘지로 인한 수많은 혜택이 결정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두 분의 화장으로 인한 미래의 엄청난 피해는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또다시 이해를 시켰다.

또한 1994년 SBS ‘그것이 알고 싶다’의 ‘풍수지리 허와 실’ 편에서 동기감응 실험으로 풍수가 과학임을 증명한 사실과, 예로부터 ‘조상의 묘가 좋으면 자손이 잘 된다라는 말은 과학이다’라고 설파하였다.

필자가 “무엇 때문에 여기까지 찾아와서 명당에 모실 것을 권하겠습니까? 기회는 이번뿐입니다”라며 다시 유족을 설득해 화장을 매장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깊은 생각을 하던 김 위원장은 필자의 생각을 전해 또다시 자손들을 설득했으나 결국 실패하고 돌아왔다.

필자는 “생각 이상의 후회를 할 것입니다. 애써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말을 흘리며 돌아왔다. 그때 허탈한 심정은 무엇으로도 채울 수가 없었다.

SK 본사 양택 풍수 감평

개인 운명은 직계조상의 영향으로 80%가 결정되므로, 직계조상의 음택(음기)은 태어나기 전의 풍수학적 요인이고, 공동체운명을 결정하는 양택(양기)은 태어난 후에 영향을 미치기에 태어난 후의 풍수학적 요인이다.

결국 음기와 양기가 인간 길ㆍ흉ㆍ화ㆍ복의 운명을 결정한다. 단, 음기(조상 음덕)는 전반적으로 개인 운명을 결정하지만, 양기(양택)은 부, 명예, 화목, 건강 중에서 부(富)에 80%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재물운이 좋은 사람은 양택도 길지(명당)를 활용하게 되므로 큰 부를 형성하는 것이다.

SK 본사 정문은 남향이고 후문은 북향이며 정문과 후문의 형상과 크기가 똑같다. 방향으로 보면 득보다 실이 많다. 정문 앞 예금보험공사와 한국씨티 건물이 앞을 막고 있다.

이러한 형상도 천옥이 되니 길보다 흉이 더 많고, 정문 사용보다 후문 사용량이 더 많은 것도 득보다 실이 많다. 다만, 본사를 중심으로 좌우에 4개씩의 건물이 본사를 감싸고 있어 좌청룡, 우백호가 형성되었으므로 화목한 기(氣)가 있다.

SK 최태원 회장 미래를 위한 결론은

살고 있는 양택과 SK그룹 사옥을 최대한 길지(부자터)로 비보해야 하며 비보가 안 되면 양택과 본사를 명당터로 이전해야 한다.

전체적으로 고도의 운명 컨설팅을 적용시키는 것도 중요하다. 그것이 자연 위력(이치)을 활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언론이나 방송에 의하면 엉터리 역학자에게 당했다는 사실이 보도되기도 했는데, 필자로서는 참 어이가 없다.

자연 이치에 의한 흥ㆍ망 운명은 분명한 사실인 바, 엉터리 풍수가들에 의하여 풍수학문이 왜곡되어져 안타깝기만 하다. 풍수지리란 길ㆍ흉ㆍ화ㆍ복 운명을 결정하는 분명한 학문이라는 사실을 생각할 때, 국가, 기업, 개인의 흥ㆍ망ㆍ성ㆍ쇠는 풍수학자들의 책임이라는 것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박민찬 도선풍수과학원장 프로필

박민찬 도선풍수과학원장은 도선대사(신라말 고승)로부터 비전돼 온 풍수 ‘신안계물형설(神眼系物形說)’의 전수자(34대 후계자)로 풍수지리 신안계 물형학 연구소 및 한국발전연구소를 열고 풍수학을 가르쳤으며, 동방대학교 대학원 평생교육원 풍수학 교수를 역임했다. 2009년 한국 현대인물33인에 선정됐으며, 현재 도선풍수과학원 원장으로 있다.

1997년 대선(이회창 후보 불가), 2002년 대선(노무현 당선)을 정확하게 예측했으며, 삼성ㆍ현대 등 재벌(기업과 총수)의 운명을 사전에 중앙 일간지 및 시사주간지 등을 통해 적중시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저서로 <천년만에 한국이 세계를 지배한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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