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초현실주의와 아방 가르드(The Surrealism & Avant-garde)

1918년 종료된 1차 세계 대전은 지구촌 영화 시장의 판도 변화를 주도한다.

1차 대전이 발발된 1914년 이전, 프랑스는 유럽 및 주요 각국에 영화를 배급하는 영화 강국의 위세를 누렸다.

하지만 유럽 전역을 세계 전쟁으로 전화(戰禍)의 수렁으로 빠져 든다.

전쟁의 방관자 역할을 했던 대서양 건너 할리우드는 이 공백 기간에 달콤한 멜로극 등으로 새로운 영화 강국으로 급부상하게 된다.

종전 후 어수선한 파리 전역에서는 결말이 뻔히 보이는 할리우드 영화 체재에 반기를 든다.

루이 델릭은 ‘프랑스 영화는 프랑스 스타일을 고수해야 한다’는 선언을 한다.

이어 상업적 추구에서 탈피, 심리적 탐색, 개인의 자유 의지 구현 등의 구호를 주창하면서 사진만이 갖고 있는 순수성을 찾아야 한다는 ‘포토제니 photogenie’ 이론을 내세운다.

초현실주의와 아방 가르드는 이런 분위기 속에서 태동한다.

‘아방 가르드 The avant-garde’는 불어 ‘앞서 나가다 advance guard’ 혹은 ‘선발대 vanguard’에서 유래됐다.

‘예술, 문화, 정치적 관점에서 실험적이고 창의적인 작업 혹은 인물 people or works that are experimental or innovative, particularly with respect to art, culture, and politics’을 뜻하고 있는 용어이다.

‘아방 가르드’는 ‘문화 영역 the cultural realm’에서 ‘규범 the norm’ 혹은 ‘현상 유지 the status quo’에 머물지 않고 변방 끝까지 밀어 붙이는 것이 특징이다.

연극, 영화계 등에서는 ‘관습적으로 내려오는 전통의 틀을 깨고 실험적이고 혁명적 메시지를 담은 작품’에 대해 이같은 용어를 붙여주고 있다.

아벨 강스 감독의 <바퀴 La roue>(1923).

무성 영화 시절이지만 상영 시간이 무려 4시간 33분.

딸을 홀로 키우고 있는 미혼모 노르마.

철도원 시시프는 열차 사고에서 그녀를 구출해 준 인연으로 교제를 시작한다.

그런데 시시프 아들 엘리가 노르마에게 연정을 품으면서 부자(夫子)에게 비극적 굴레가 다가오게 된다.

강스 감독은 애초 9시간 분량의 작품을 빠른 편집(particularly rapid cutting)술을 이용해 50% 이상 분량을 들어낸다.

아벨 강스(Abel Gance)는 여세를 몰아 <나폴레옹 Napoléon vu par Abel Gance>(1927)을 발표한다.

무려 6시간에 걸쳐 혁명 영웅 나폴레옹의 일대기를 담고 있는 작품이다.

감독은 ‘20여분 동안 3장 연속된 장면 twenty-minute triptych sequence’ ‘한 화면에 3가지 영상을 동시에 비추는 와이드스크린 widescreen panoramas with complex multiple- image montages projected simultaneously on three screens’, 핸드헬드 촬영, 원시적이지만 와이드스크린 기법 도입 등 선두자적 영상 테크닉을 시도한다.

1910-20년대 프랑스 영화인들은 ‘카메라 이동 촬영, 배경 셋트(미장센)를 적극 사용해 주인공들의 생각이나 이야기 흐름, 시간 경과 등을 묘사해 전위적인 사조(思潮)로 인정 받는다.

쟝 엡스타인(Jean Epstein) 감독의 <신뢰하는 마음 Coeur fidèle>(1923)은 무직자이자 알콜중독자인 폴의 간섭에서 벗어나 부두 노동자 장과 도피 행각을 벌이는 마리라는 여성의 처지를 묘사한 로맨스극.

이 영화는 1930-40년대 프랑스의 제 2의 부흥을 주도했던 ‘시적 리얼리즘 poetic realism’의 태동을 알린 작품이 된다.

‘시적 리얼리즘’은 * 곤경에 처해 있는 비련의 히로인 * 고난에 굴복하지 않는 억척스러움 * 소시민과 연약한 여성 등의 인생 애환극을 통해 프랑스 사회 제도의 불합리를 꼬집어 관객들의 공감을 얻어낸다.

엡스타인의 시도는 엄격한 기숙 학교에 재학중인 4명의 악동이 교내 기념일을 기회로 잡아 반항적 행동을 시도한다는 장 비고(Jean Vigo) 감독의 <품행 제로 Zéro de conduite: Jeunes diables au collège>(1933)를 비롯해 상류층인 후작 부인 크리스틴이 젊은 비행사 앙드레, 앙드레의 친구 옥타브와 3각 관계에 빠지고 하녀 리제르는 주인 슈마허와 하인 마르소와 삼각 관계에 빠지면서 결국 파국을 맞게 된다는 장 르노와르 감독의 <게임의 규칙 La Regle Du Jeu>(1939)이 제작되는 발판을 제공한다.

‘시절 리얼리즘’을 추구한 영화들은 화려함과 오락, 환상적 모험담에 치중했던 할리우드산 영화와는 차별되는 특징을 제공하면서 예술성을 갈망하는 전세계 각국 영화 애호가들의 열렬한 호응을 받아낸다.

이경기(영화칼럼니스트) www.dailyos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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