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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자와 신데렐라’ 신드롬] 드라마 끝나면 꿈 깨세요!
브라운관 속 설정은 픽션일 뿐, '인생역전' 미망은 위험



MBC드라마 '황태자의 첫사랑'



로또 복권, 신데렐라, SBS 주말 드라마 ‘파리의 연인’, MBC 수목 미니시리즈 ‘황태자의 첫사랑’. 이 네 가지를 관통하는 것은 무엇일까. 하나의 계기나 사람에 의해 신분이 급상승하는 것이다.

요즘 브라운관 안팎을 휘젓고 있는 것이 바로 신데렐라 열풍이다. 이 열풍의 진원지는 물론 대중에게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브라운관이다. 더운 날씨와 휴가철로 인해 시청률이 좀처럼 나오기 힘든 여름철인데도 불구하고 20~40%대에 육박하는 엄청난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는 드라마가 바로 ‘파리의 연인’과 ‘황태자의 첫사랑’이다. 이들 드라마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결코 좋지 않은 조건을 갖춘 한 여성이 돈과 외모, 그리고 따뜻한 사랑을 가진 완벽한 조건의 남성과 사랑을 하면서 신분이 상승하는 신데렐라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파리의 연인’의 태영(김정은)과 ‘황태자의 첫사랑’의 유빈(성유리)이 기존의 신데렐라와 차이가 있다면 전적으로 왕자(조건 좋은 남자)의 낙점에 의한 신분 상승이 아니라는 사실. 열악한 현실 여건에 굴하지 않고 나름대로 자신의 삶을 개척해나가는 ‘캔디’적 성격이 조금 가미됐다는 점뿐이다.

부모 없이 맨몸으로 영화를 공부하러 파리로 건너가 거기에서 재벌 2세인 남자(박신양)의 가정부를 하고, 불가피한 사정으로 한국에 돌아와 산동네 옥탑방에서 살면서 생활하다 다시 재벌 2세를 만나 사랑을 나누는 태영, 전문대 레크리에이션과를 나와 백수로 있다가 우연히 해외 여행을 하면서 성격 못된 재벌 2세(차태현)를 만나고, 한국으로 들어와 사랑을 하게 되는 유빈은 신데렐라의 전형성을 보여주는 인물들이다. 그러나 문제는 인생역전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수많은 사람들의 발길을 잡는 로또 복권이 인생역전을 담보할 수 있는 1등 당첨률이 벼락 맞을 확률보다 적은 840만분의 1의 확률이듯 현실 속에서 신데렐라가 돼 신분이 급상승할 수 있는 가능성도 이처럼 매우 희박하다는 점. 가정부 출신의 영화학도와 재벌 2세의 사랑, 그리고 변변한 직장도 아니고 뛰어난 능력과 학력도 없는 여성의 재벌 2세와의 만남과 사랑은 현실 속에서는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다.


- 로또와 신데렐라는 매한가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 파리의 연인’과 ‘ 황태자의 첫사랑’은 현실 속에서 좀처럼 만날 수 없는 신데렐라를 내세우고 있다. 또한 수많은 시청자들이 이 드라마의 태영과 유빈에 환호를 보내고 있다. 왜 그럴까.

취업을 못 하는 것이 보편적 현상이 돼 버린 상황인 데다 경제는 어렵고 현실은 더욱 더 힘들어지는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뚜렷하게 나타나는 삶의 양태가 그 이유를 설명해 준다. 될 대로 되라는 식의 막가파식의 행태와 한방이면 인생 역전된다는 허황된 꿈에 포로가 되는 로또 복권식의 행태이다. 생계형 신용 불량자를 말하는 게 아니다. 자신의 분수는 모르고 실체도 없는 ‘웰빙의 가식’에 사로잡혀 명품으로 치장하다 결국 신용 불량자가 되는 이들이 막가파 전형이라면 좋은 조건 가진 남자 한 사람 물어 인생역전을 꿈꾸는 여자들이 바로 로또 복권식 행태의 본보기다.

신데렐라를 꿈꾸는 것은 차가운 현실을 버텨 내는 한 방식이다. 그래서 브라운관을 휘젓는 신데렐라를 자신과 동일시하거나 때로는 신데렐라에게서 대리만족을 얻으며 현재의 어려움을 잊거나 현실 속에서 실제 자신도 신데렐라가 될 수 있다는 꿈의 포로가 되기도 한다.

SBS드라마 '파리의 연인'

우리와 정서가 비슷하고 경제 상황이 유사했던 일본에선 더 이상 신데렐라를 내세운 로맨틱 멜로의 드라마나 만화는 시청자나 독자의 눈을 끌지 못한다. 따라서 ‘파리의 연인’류의 드라마는 좀처럼 만날 수 없다. 일본 역시 2차 세계대전 직후 어려운 현실과 이후 경제가 성장하면서 가난하지만 명랑構?상냥한 소녀와 잘 생기고 돈 많은 청년의 사랑을 그린 ‘ 유리의 성’같은 순정 만??드라마가 높은 사랑을 받았다. 그리고 유사한 대중문화 작품들이 붐을 이루기도 했다. 하지만 1980년대 말부터 일본 경제의 거품이 빠지고 컴퓨터가 사람들의 일자리를 대신하는 경제 불황이 찾아오면서 차가운 현실을 몸으로 체감한 일본인들은 더 이상 왕자는 없다는 냉정한 인식에 도달했다. 이로 인해 신데렐라를 내세우는 로맨틱 멜로는 설 자리를 잃었고 이러한 류의 드라마나 만화를 찾지 않았다.

대신 “ 더욱 더 격렬한 밤에 안기고 싶어. 더 이상 꿈꾸는 소녀로 머물러 있을 수는 없어”라고 외치는 아무로 나미에에 환호를 보냈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비현실적인 꿈(신데렐라)을 버리고 쾌락을 찾아 오늘밤만을 즐기는 거리의 배회자로 나선 것이다. 어쩌면 브라운관 속 신데렐라를 바라보며 현실의 어려움을 잠시 잊거나 그 꿈을 갖는 것이 오히려 나은지 모른다. 하지만 ‘파리의 연인’과 ‘황태자의 첫사랑’류의 드라마의 범람과 그 드라마에 환호하는 현상은 분명 적지 않은 문제가 있다.


- 순기능보다 역기능 우려

특수한 상황이나 인물이 드라마든 교양, 오락 프로그램 등을 통해 텔레비전 속으로 들어가게 되면 시청자들은 그것을 일반화하는 속성이 강하다. 그래서 드라마가 픽션인 점을 감안하더라도 내용이나 상황설정, 캐릭터들이 황당무계하거나 개연성이 없으면 드라마적 완성도 측면에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는 것이다. 삶의 진정성이 전혀 담보되지 않는 ‘ 파리의 연인’이나 ‘ 황태자의 첫사랑’ 같은 드라마의 영향은 순기능보다 역기능이 더 많다.

차가운 현실에 내동댕이 쳐진 사람들에게 잠시나마 아름다운 꿈을 꾸게 할 계기를 부여하는 것은 좋지만 허황된 꿈을 꾸게 하고 그것이 삶의 준거로 자리잡게 하는 것은 위험하다. 2004년 오늘을 사는 여성들 중 적지 않은 사람들이 완벽한 조건을 갖춘 왕자를 찾아 나서고 있는 현상은 결코 브라운관속 신데렐라와 무관하지 않다.

‘ 파리의 연인’의 태영과 ‘ 황태자의 첫사랑’의 유빈은 드라마 속 인물일 뿐이다. 현실에서 그녀들을 만날 수 있는 가능성은 840만분의 1이라는 로또 복권 당첨률과 비슷하다. 드라마의 제작진이나 시청자들은 840만분의 1의 휘황찬란한 정점을 볼 필요도 있지만 당첨되지 않을 확률인 840만분의 839만9,999의 차가운 현실도 바라보는 눈이 있어야 한다. 이것이 각자 자신의 삶을 최선을 다해 꾸려나갈 의지를 부여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배국남 대중문화평론가 knbae24@hanmail.net


입력시간 : 2004-07-07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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