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 변호사업계에 법률시장 개방·로스쿨 시행은 엎친 데 덮치는 격

[변호사 덤핑시대] 법조 시장 '위기의 계절'
불황 변호사업계에 법률시장 개방·로스쿨 시행은 엎친 데 덮치는 격

사법 시험 합격자 1,000명 시대에 변호사 업계의 불황이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새 ‘기상 이변’이 예고되고 있다. 법률 시장 개방과 로스쿨(법학 전문 대학원) 시행이라는 ‘태풍의 눈’이 그것이다.

세계무역기구(WTO) 뉴라운드에 따른 국내 법률 서비스 시장 개방의 협상 시한은 올 12월로, 내년 5월까지는 우리 측 최종안을 결정해야 한다. 정부는 2003년 3월 △외국 변호사의 국제법 법률 자문 허용 △외국 로펌의 국내 분소 설립 허용 △외국 로펌의 국내 변호사와의 동업ㆍ고용 금지 등을 담은 1차 법률 시장 개방안을 WTO에 제출한 바 있다.

하지만 미국, 유럽 연합, 호주 등은 외국 로펌의 국내 변호사와의 동업과 고용을 허용해 줄 것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어 협상 결과가 주목된다. 법률 시장이 개방될 경우, 직접적인 타격은 국내 로펌이 입게 될 전망이다.

로스쿨은 법률 시장 개방에 대비하고 법률 서비스의 향상을 위해 대법원 산하 사법개혁위원회(위원장 한승헌)에서 작년 10월 도입하기로 결정, 2008년에 첫 신입생을 받고 2011년쯤 첫 변호사를 배출하게 된다. 현행 사법 시험은 로스쿨 시행 후 2012년까지 5년간 병행 실시되다 2013년에 폐지된다. 그러나 로스쿨 설립 최대 쟁점인 정원을 놓고 변호사 단체와 법학계가 팽팽하게 맞서 의견차를 좁히지 못해 현 사법 시험 합격자를 기준으로 1,200명 정도가 예상되고 있다.

변호사 사회 위기의식, 돌파구 마련에 부심
머지 않아 불어 닥칠 법조 시장의 지각 변동에 대형 로펌은 물론, 중소 로펌과 개인 변호사들은 위기 의식을 공유하면서 자구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대한변호사협회 국제이사인 황보영(41) 변호사는 “법률 시장 개방화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미국ㆍ영국 로펌과 경쟁할 수 있는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며 “고객 중심의 ‘영미법’적 사고로의 전환과 함께 전문 지식을 넓혀 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로펌의 경우 외국 로펌이 진출하게 되면 그에 흡수되거나 파이가 줄어들 것을 경계해 대형 로펌은 몸집을 키우면서 전문성을 강화하고 있다. 또 중소 로펌은 인수 합병에 나서거나 대형 로펌에 국한됐던 외국 연수를 추진하는 등 적극적인 활로를 모색하고 있는 상황이다.

국내 대형 로펌 빅5 중 하나인 세종은 올해 연수원 수료생 중 가장 많은 12명을 뽑아 전문성과 함께 몸집을 키웠다. 세종의 강신섭(48) 변호사는 “선발에 연수원 성적도 중요하지만 전문성에 비중을 두었다”며 “영어 구사력이 출중하거나 미국 회계사 자격증을 갖추는 등 성장 잠재력을 높이 평가했다”고 말했다. 강 변호사는 “법률 시장 개방은 세계적인 추세로 수용할 수밖에 없다”며 “로스쿨은 다양한 법률가들이 배출돼 법률 서비스가 넓어지고 대중화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한다”고 말했다.

법무법인 우방과 화백은 2002년 12월 전격 합병해 이듬해 화우로 출범하면서 빅5 대열에 올라 섰고, 작년 말 사법연수생 34기중 언론학 박사 출신을 포함해 7명을 뽑아 전문성을 강화했다. 대형 로펌인 태평양은 국내 법률시장에 집중하면서도 일찌감치 해외로 눈을 돌려 지난해 국내 최초로 중국 베이징에 정식 ‘율사무소’분소를 개설했다. 같은해 7월에는 베트남 정보통신입법 작업 사업자로 최종 선정되기도 했다.

중소 로펌은 점차 상황이 열악해지면서 △ 외국 로펌과의 제휴 △ 국내 다른 로펌과 합병 △ 독자 생존 등 활로 찾기에 전력하고 있다. 작년 7월 법무법인 우일과 아이비씨가 중소 로펌 간 최초로 합병한데 이어 오는 3월 초에는 법무법인바른법률과 김ㆍ장ㆍ리가 합병할 예정이다. 또 법무법인 지평은 러시아 정치학 박사 출신을 채용해 전문성을 강화하는 등 생존을 위한 변신을 시도한 바 있다.

법률시장 개방과 로스쿨 도입으로 ÷?불안해 하는 집단은 단독 또는 공동으로 개업한 변호사들이다. 가뜩이나 사시 1,000명 시대로 변호사 업계가 불황인데 법률 시장 개방으로 외국 로펌이나 외국 변호사 자격 소지자들이 쏟아져 들어 오는 상황에서 로스쿨이 시행되면 변호사가 늘 수밖에 없어 파이는 줄어 들게 마련이다. 게다가 외국 로펌에 밀린 국내 로펌들이 일반 송무 사건까지 영역을 넓히게 되면 개?변호사들은 설 자리마저 잃을 가능성이 있다.

틈새 공략으로 위기 돌파
서울 남부지원 앞에서 변호사 개업을 한 지 5년차 되는 김모(37) 변호사는 “점차 수임 사건이 줄어 들어 간신히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다”며 “법률 시장이 개방되면 더 어려워질 것 같아 대안을 모색하고 있지만 아직 해법을 찾지 못했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의료 사건 전문 변호사로 변신하기 위해 특수 대학원 진학을 고려 중에 있다고 한다.

지난해 법무 법인에서 독립해 서울 서초동에서 개업한 3년차의 권모(34) 변호사는 “법률 시장이 개방되더라도 ‘틈새’는 있을 것”이라며 “올해부터 증권 관련 집단 소송제가 시행되는데 이 방면으로 특화해 볼 생각”이라고 밝혔다. 중ㆍ대형 로펌이 기업측 방어를 위한 변호를 할 것이기 때문에 투자자인 원고측 변호를 담당하게 되면 어느 정도 수입선을 확보하게 될 것이라는 계산이다.

천기흥 대한변협회장은 로스쿨과 사시 증원을 강도높게 비판했다.

권 변호사는 이를 위해 지난해 서울지방변호사회가 개설한 증권금융 연수과정을 마쳤고 요즘은 증권사에 다니는 대학 동기들에게서 증권 메커니즘을 공부하고 있다. 대한변협의 신현호 교육이사는 “매년 서울과 지방에서 변호사를 대상으로 조세ㆍ특허ㆍ의료ㆍ금융거래법 등 전문 특별 연수 과정을 진행하고 있는데 참여율이 매우 높다”고 해 법률시장 개방에 따른 법조 시장 변화에 변호사들이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음을 엿보게 했다.

법조기자 출신의 법률 전문 인터넷 신문 리걸타임즈(www.legaltimes.co.kr) 김진원(45) 대표는 “법률 시장 개방이 필연적인 상황에서 이제 변호사들도 경영적인 관점에서 ‘리걸 비즈니스(Legal Business)’와 ‘리걸 마케팅(Legal Marketing)’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며 “사회의 법률 요구가 다양해지는 만큼 변호사들도 전문적인 분야 개척에 신경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로스쿨을 둘러싼 변호사단체와 법학계의 갈등에 대해서도 ‘밥그릇 싸움’보다는 대의적인 관점에서 바람직한 방안을 도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사법 시험 합격이 인생을 보장하는 시대는 지났다”면서 “법조 시장 변화에 맞춰 변호사들도 과학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2007년 법률 시장 개방과 2008년 로스쿨 시행이 바짝 다가오면서 수 년 동안 무풍 지대에 머물렀던 변호사 업계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국내를 넘어선 ‘생존 게임’이 어떤 결과로 나타날 지 태풍의 항로가 주목된다.

박종진 기자


입력시간 : 2005-03-03 13:42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