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희대 대학원 외국인 유학생

[커버스토리] 한국 찾은 두뇌 "우리는 글로벌 스튜던트"
경희대 대학원 외국인 유학생

전형적인 가을 정취가 물씬 풍기는 5일 오전, 서울 동대문구 회기동 경희대학교 캠퍼스 본관 4층의 한 세미나실에 젊은 이방인 6명이 모였다.

빠올라(24ㆍ여ㆍ멕시코), 무흐그졸(23ㆍ여ㆍ몽골), 하정문(23ㆍ여ㆍ중국), 타지마 아키라(25ㆍ일본), 킨가(28ㆍ여ㆍ폴란드), 스튜어트 민(23ㆍ영국). 이름만큼이나 국적도 다양한 이들은 경희대 대학원에서 유학 중인 외국인 학생들이다.

요즘 국내 대학 교정에서 외국인을 만나는 것은 아주 흔한 일이 됐다. 수 년 전부터 대학가에 거세게 불어 닥친 ‘글로벌화’의 영향으로 외국인 학생과 교수가 크게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한 강의실에서 외국인 교수가 강의를 하고 외국인 학생이 수업을 듣는 광경도 더 이상 낯선 것이 아니다.

대학원도 물론 예외는 아니다. 한국어나 한국사를 전공하는 학생들뿐 아니라 여타 인문사회계열, 이공계열 전공자들도 국내 대학원에 유학하는 사례가 점차 증가하는 추세다. 진학자들이 줄어 고민하는 대학원 입장에서는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닌 셈이다.

그렇다면 외국인 유학생들은 어떤 계기로 한국을 찾았고, 한국의 대학원 생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할까. 또 그들이 갖는 한국 사회에 대한 인상은 어떤 것일까.

매력적인 한국문화, 직접 부딪치며 공부

한류(韓流) 열풍이 강타한 아시아 국가에서 온 학생들은 한결같이 한국 대중문화에 대한 개인적인 기억을 먼저 꺼냈다. 그들에게 한류는 한국에서 공부하도록 이끈 안내자 중의 하나였던 것이다.

타지마씨는 “대학교 1학년 때 한국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를 보고 난 후 한국에 대한 강한 호기심이 생겼다.

잘 모르고 지냈던 한국에 대해 아주 가깝고도 묘한 차이가 있구나 하는 느낌을 새삼 받은 것”이라고 말했다.

무흐그졸씨 역시 “몽골에서도 한국 대중문화가 아주 인기를 끌고 있는데, 내 경우에는 배용준이 출연한 ‘첫사랑’을 본 뒤로 한국 드라마를 좋아하게 됐다”고 밝혔다.

도쿄 출신인 타지마씨는 대학교에서 유럽문화를 전공했지만 한국어 연수를 왔다가 아예 전공을 바꿔 대학원까지 진학했다.
















“기회가 된다면 일본으로 돌아가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을 하고 싶다”는 게 그의 바람이다. 몽골에서 한국어 통역을 공부했던 무흐그졸씨는 “기왕에 한국어를 전공하기로 마음 먹었기 때문에 문법을 더욱 전문적으로 배우고 싶었다”며 한국 유학의 계기를 설명했다.

2년 전 경희대에 어학 연수를 왔었던 하정문씨는 그 때의 깊은 인상을 잊지 못해 지난 9월 이 곳을 다시 찾은 경우다.

중국 상해의 명문 복단대에서 한국어를 전공한 그는 “한국 고전문학에 관심이 많은데 특히 판소리 같은 전통문화를 너무 좋아한다. 중국에 돌아가면 한국어와 한국문학을 가르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유럽과 중남미 출신의 학생들은 아시아권 학생들과는 달리 한국에 오기 전에는 한류를 알지 못했던 듯하다. 하지만 학문적 열정이나 한국에 대한 호기심은 대단하다.

멕시코에서 스페인어와 라틴문화를 전공한 빠올라씨는 한국인 유학생들에게 스페인어 교습을 하던 중에 자연스레 한국에 대한 호기심을 갖게 됐다. 4년 전 한국에 처음 온 그는 현재 국어국문학을 전공하고 있지만 목표는 더 높은 곳에 있다.

“한국과 일본 등 아시아의 경제 강국을 배우고 돌아가서 고국인 멕시코뿐만 아니라 중남미 국가 전체의 발전에 도움이 되고 싶은 소망을 갖고 있다.

또한 한국인들이 라틴아메리카에 대해 좀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싶다. 문학을 전공으로 선택한 것은 한 문화권의 정치ㆍ경제ㆍ사회 등을 총체적으로 파악하는 데는 문학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폴란드에서 온 킨가씨는 귀국하면 대학 교수가 된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바르샤바대학교에서 국제관계와 한국어ㆍ문학을 복수 전공한 그는 모교와 자매결연을 맺은 경희대에 와서 박사 과정까지 모두 마쳤다.

특히 개인적 관심이 높은 북한 문학은 물론 사이버 문학 등에 대한 연구에 경희대 대학원이 많은 도움을 줬다고 한다.

현재 한국의 이공계 대학원은 큰 위기에 봉착해 있다. 진학을 원하는 학생들이 크게 줄면서 정원을 채우기는커녕 연구 인력 확보도 어렵다는 한숨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그나마 괜찮은 인재들은 너도나도 해외 유학을 떠나기 때문에 빚어지는 현실이다.

그런데 경희대 대학원에는 옥스포드와 함께 영국 최고 명문으로 꼽히는 케임브리지대학교 박사 과정을 밟다 온 유학생이 있어 눈길을 끈다. 나노 기술을 전공하고 있는 스튜어트씨가 주인공이다.

“나노 기술을 연구하는 클린룸 자체는 케임브리지도 잘 갖추고 있다. 그러나 각종 실험을 할 때 쓰이는 장비와 기기의 경우에는 몇 백만 달러씩 하는 고가이기 때문에 모두 갖춰 놓지 못한 상황이다.

경희대 대학원에 온 이유는 현재 진행 중인 실험을 보다 나은 여건에서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주 뜻밖이다 싶었다. 하지만 경희대 측의 설명에 따르면 국내 굴지의 기업들이 기증한 각종 실험 장비들의 수준은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다고 한다.

스튜어트 씨도 자신의 모교와 교류 중인 경희대의 시설이 훌륭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한국에 왔다. 그는 6주 동안 자신의 실험 과제를 수행한 뒤 연말쯤 영국으로 돌아갈 예정이다.













100%만족 아니지만 '보람'

외국인 유학생들에게 한국의 대학원이 모두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다. 다소 아쉽거나 불편한 점도 없지 않다.

“모교의 기숙사에서는 영상ㆍ음향 시설을 모두 갖춘 널따란 방을 나 혼자 썼다.”(스튜어트) “대학원의 연구 환경은 다소 부족한 면이 있다.

학생 숫자가 많아서 그런지 지도 교수로부터 개별 지도를 받을 만한 여건이 안 된다. 일본에서는 진짜 학자나 교수가 되려고 하는 학생들만 대학원에 진학하지만, 한국에서는 취업이 안돼 진학하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다.”(타지마)

이들의 솔직한 지적은 한국의 대학ㆍ대학원이 세계적인 ‘학생 유치 전쟁’ 시대에 살아 남으려면 더욱 많은 투자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대목이다.

그러나 몇 가지 아쉬운 점에도 불구하고 외국인 유학생들은 한국 생활에 대체로 만족감을 나타냈다. 동료 학생과 길거리의 사람들은 매우 친절했고, 처음 접한 한국 음식들은 갈수록 구미를 당겼다.

경희대에서 외국인 유학생들을 위해 실시 중인 각종 제도들도 그들의 원만한 적응을 돕고 있다. 일대일 학생 도우미와 한국 문화 체험 프로그램, 인터내셔널 페스티벌 등이 그런 사례다.

보다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장학금 제도도 다양하게 운영되고 있다. 국제교류처 김준현 과장은 “외국인 학생들에 대한 ‘오리엔테이션’은 그들이 입학을 결심한 시점부터 공부를 마치고 학교를 떠날 때까지 이어진다”고 자부했다.

킨가씨는 “문화적 차이점이 있지만 불편하기보다는 오히려 재미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하고 싶은 공부를 맘껏 할 수 있어서인지 만원 마을버스를 타고 다녀도 하나도 불편하지 않다”고 미소 지었다.

무흐그졸씨도 “교수님의 흥미로운 수업을 듣고 있으면 공부를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세 명의 한국인 룸메이트와도 처음에는 서먹서먹했지만 지금은 너무 친하게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

김준현 과장은 “단순히 외국인 유학생을 많이 유치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한국인 학생들과 어울리게 함으로써 ‘진정한 글로벌화’를 달성할 수 있다고 믿는다”고 밝혔다.


김윤현 기자


입력시간 : 2005-10-12 10:37


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