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패배 정동영 · 김근태 상처… 고건 등과 연대론 부상할 듯

“지방선거 이후가 어떻게 될지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다.”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은 지난 연말 당으로 복귀하면서 측근들에게 5ㆍ31선거 이후에 대해 미리 고민을 토로한 적이 있었다.

선거를 코앞에 둔 지금. 그의 ‘고민’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스스로“백약이 무효”라고 할 정도로 이번 지방선거에서 우리당의 패배는 기정사실로 보인다.

급기야 정동영 의장은 25일 유세를 중단하고 가진 의원·주요당직자 비상 총회에서 “이대로 가면 서울에서 제주까지 한나라당이 싹쓸이하게 될 텐데 이는 지방자치 11년의 위기이자 민주주의의 위기”라며 ‘한나라당의 싹쓸이를 막아달라’고 국민에게 읍소했지만 그 효과는 미지수다.

일각에서는 정 의장이 선거 패배에 따른 탈출구를 모색한 것이라는 분석마저 나오고 있다. 그래서 다른 계파에서는 “패배주의”, “책임론을 감안한 내부 단속용”이라고 쓴소리를 내기도 했다.

"당 운명 어떻게"… 정국 추이 주시

이처럼 우리당이 어수선한 가운데 내부적으로는 선거 패배를 전제로 계파별로 활로를 찾기에 분주한 모습이 감지된다.

5ㆍ31 이후를 대비해 자파의 결속을 다지면서 정국지형의 변화에 대비해 발 빠른 행보를 모색하고 있는 것. 의원들 역시‘어느 정파에 몸을 실어야 할지, 당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를 고민하면서 정국 추이를 주시하는 중이다.

친노(親盧)계로 분류되는 수도권의 한 초선 의원은 “사실상 선거운동에서 발을 뗀 상태”라면서 “이대로 가다가는 당도 죽고 대선도 어려운데 앞이 안보인다”며 고민의 속내를 털어놨다.

우리당의 각 계파는 5ㆍ31 판세가 한나라당의 우세로 굳어지면서 일단 독자 생존법을 찾으면서 세력 간 연대를 모색하고 있다. 선거 패배로 정국주도권을 상실하면 범여권 재편 등 정계개편이 진행될 경우 헤게모니가 고건 전 총리쪽으로 옮겨갈 가능성이 다분하기 때문이다.

특히 당내 양대 세력을 구축하며 이번 선거를 이끈 정동영(DY)계와 김근태(GT)계는 선거패배에 따른 책임론에 직면하게 될 것이 확실시 돼 해법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당 지도부 및 최대세력을 형성하고 있는 DY계는‘바른정치모임’소속 의원을 중심으로 세 확산에 나서는 한편, 지방선거 이후 ‘연대론’을 매개로 한 대선행보로 난국을 정면돌파할 것으로 알려졌다.

정 의장은 24일 민주당과의 당 대 당 통합을 거론하면서“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반(反)한나라당 전선을 구축해야 한다. 민주평화개혁세력을 묶는데 열린우리당이 단단한 구심점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고건 전 총리와의 소연합에도 적극 나서 ‘연대론’을 구체화했다.

나아가 DY계는 7월로 예정된 국회의원 재ㆍ보궐선거에서 신계륜 전 의원 지역구인 ‘성북을’에 정 의장이 직접 출마하는 방안을 신중히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한 측근은 “정 의장이 계급장을 떼고 야인으로 남는 것은 1년 반이나 남은 대선레이스에서 매우 불리하다”면서 “현재로선 성북을 출마가 유일한 돌파구”라고 강조했다.

지방선거 패배의 후폭풍을 피할 수 없는 GT계 역시 이호웅 이사장을 비롯 장영달, 문학진, 최규성 의원 등 재야파 출신 40여 명이 주축을 이룬 ‘민주평화국민연대’(‘국민정치연구회’후신)가 중심이 돼 GT계 세력화를 도모하면서‘민주세력 대연합론’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신기남 전 의장이 이끌고 있는 ‘신진보연대’와 GT를 지지하는 당 밖의 ‘국민정치연대’(공동대표 정봉주ㆍ권혁철) 등도 GT계와 행보를 같이할 것으로 알려졌다. GT계는 민주ㆍ민노당 등 민생민주개혁세력 외에 시민사회 등까지 포함한 대연합을 구상, 지방선거 이후 연대론 주도권을 놓고 DY계와 경쟁할 것으로 보인다.

GT계의 386세대 초선은 “어떻게 해서든 더 이상의 민주개혁세력 분열이나 동요는 막아야 한다”며 “GT는 5ㆍ31 직후 리더십을 발휘해 위상을 확고히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대선 겨냥한 '대안 찾기' 움직임

당내 또 다른 축인 친노그룹의 행보도 주목된다. 이광철ㆍ유기홍 의원 등이 속한 ‘참여정치연구회’(참정연)와 이광재ㆍ이화영 의원 등이 속한 ‘의정연구센터’(의정연)는 DYㆍGT계에 비해 상대적으로 여유를 갖고 지방선거 이후를 준비하고 있다.

참정연은 지난 4월부터 내부에‘준비위원회’를 꾸려 지방선거 패배 후 아젠다 설정문제, 차기 주자 진영의 행보, 하반기 정국에서의 진로 설정 등을 주요 의제로 삼아 논의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참정연은 5ㆍ31 직후 호남 의원들의 동요와 이탈 등 소란스런 국면이 전개되겠지만 DYㆍGT계 등 대선 주자그룹의 분당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고건 전 총리, 민주당 등과의 연대가 구체적으로 추진될 경우 노무현 대통령과의 관계를 어떻게 정리할지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의정연은 노 대통령의 최측근인 이광재 의원이 상당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한다. 의정연 내부에서는 차기 대선에서 CEO 후보도 구상하고 있다는 소문도 떠돈다. 의정연의 한 의원은 한때“진대제 전 장관이 경기지사가 되면 유력한 대선후보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한 적도 있었다.

지난 1월 당의 균형추 역할을 자임하고 발족한 ‘소통과 화합의 광장’(광장모임)의 행보도 주목된다. 문희상ㆍ유인태ㆍ원혜영 의원 등 중진이 중심을 이룬 광장모임은 지방선거 국면에서 한 발을 뺀 채 5ㆍ31 이후 당의 중심을 잡을 세력을 형성하는데 주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광장모임은 또‘DYㆍGT로는 대선 승리가 어렵다’는 인식을 공유, 대안을 모색하고 있으며 내각제 개헌을 염두에 둔 정계개편까지 대비 중이라는 후문이다.

우리당의 세력 판도는 크게 대권을 겨냥한 DYㆍGT계와 ‘제3 후보’를 모색하는 친노그룹, 광장모임 등으로 구분된다. 이들은 대선을 겨냥한 민주세력 연대론을 둘러싸고 치열한 주도권 다툼과 생존게임을 벌일 것으로 전망된다.

만약 노무현 대통령이 조기에 탈당하거나 정계개편이 진행되면 우리당은 아예 뿌리부터 흔들릴 가능성이 높다. 이는 정국 지형 과 대권 구도의 판짜기가 새롭게 전개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5ㆍ31 선거는 여권의 내부를 뒤흔드는 새로운 정치지형의 기폭제가 될 것은 명약관화하다.


박종진 차장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