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1 이후 정계개편 중심축… 준 신당조직 '국민연대' 내달 발족

고건 전 총리가 정치권 ‘태풍의 눈’으로 부상하고 있다. 5ㆍ31 지방선거의 후폭풍이 정가를 강타하면서다.

그 이전까지 고 전 총리는 인기 높은 유력한 대권주자의 한 사람으로만 여겨왔다. 일부에선 ‘거품론’을 제기하며 고 전 총리의 고공행진을 깎아내리기까지 했다.

그러나 5ㆍ31 선거에서 열린우리당이 참패하고 차기 대선이 내년으로 바짝 다가오면서 고 전 총리에 대한 시각이 달라지고 있다. 정가의 화두로 등장한 정계개편의 중심축으로 평가받으면서 몸값도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우리·민주당 영입경쟁

각 당의 러브콜도 경쟁적이다. 우리당은 정동영 전 의장이 선거 과정에서 고 전 총리를 염두에 둔 ‘민주개혁세력 연대론’으로 정계개편의 불씨를 댕긴 데다 호남 의원들을 중심으로“고 전 총리를 영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민주당은 한화갑 대표가 “2007년 대선에서 반드시 정권을 재창출하겠다”면서 ‘고건 대통령’에 무게를 두었다.

한나라당도 겉으로는 고 전 총리가 당에 부합하는 인물이라며 화해의 제스처를 취하련서 그가 여권에 합류하는 것을 차단하고 있다.

5ㆍ31 선거의 최대 수혜자가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라면 또 다른 장외 수혜자는 고 전 총리인 셈이다.

고 전 총리가 주가를 높이고 있는 것은 5ㆍ31 선거가 전하는 정치적 메시지와 맥이 닿아 있다. 이번 지방선거는 내년 대선으로 가는 길목에서 치러진 참여정부의 중간평가적 성격을 띤 데다 민심의 내면을 들여다 볼 수 있는 바로미터였다.

민심은 철저하게 여권에 등을 돌렸고 각종 여론조사에 나타났듯 노무현 대통령의 국정운영 방식과 여당의 무기력한 행태에 낙제점을 매겼다.“이대로는 안 된다”는 위기감이 우리당을 압박하면서 정계개편론도 당내에서 탄력을 받았다.

여당의 무기력이 노출되면서 차기 주자인 정동영(DY) 전 의장과 김근태(GT) 최고위원의 한계론까지 제기됐다.

노 대통령에 대한 저조한 지지율과 엄청난 반감이 선거 패배의 결정적인 원인이 됐지만 여당의 선거를 진두지휘한 DYㆍGT의 지도력과 전략 부재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우리당의 수도권 중진 의원은 “DYㆍGT 대망론은 사실상 물건너 갔다”고까지 말했다. 대신‘고건 대안론’이 여권 내에서 급속하게 힘을 얻고 있다.

정계개편론의 궁극적인 지향점이 내년 대선에 맞춰져 있는 것도 고 전 총리의 주가를 올리는 배경이다. 고 전 총리는 5ㆍ31 선거를 전후한 여론조사에서 20%대의 지지율로 선두권을 유지하고 있다. 반면 여권의 어느 후보도 10%를 넘지 못했다.

그래서 여야는 앞다퉈 고 전 총리를 중심으로 한 정계개편을 그리고 있다. 우리당은 선거 전만 해도 고 전 총리의 ‘무임승차론’에 비판적인 목소리가 높았으나 이제는 고 전 총리를 중심으로 여권을 묶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중도파인 수도권의 한 의원은 “정치는 생물이고 현실이다. 대선 승리를 위해서라도 고 전 총리를 영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현 구도대로 대선을 치르면 필패”라면서“대선구도를 바꾸기 위해서는 정계개편이 불가피하고 고 전 총리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DY계로 분류되는 서울의 초선 의원도 “DY가 말한 ‘민주개혁세력 연합론’이 정치발전이나 재집권을 위해서도 현실적인 방안”이라면서 고 전 총리의 영입과 민주당과의 합당에 적극성을 나타냈다.

충청·호남 대연합으로 한나라에 대항

정치권에서도 5ㆍ31 선거에 나타난 민심과 정치지형에 근거할 때 정계개편 없이는 여당의 재집권이 불가능하다는 게 중론이다.

즉 지지기반인 호남과 충청을 묶는 반(反)한나라당 연합전선을 회복하지 않고는 내년 대선에서 승리하기 어려울 뿐더러 설령 연대가 이뤄지더라도 지금의 민심대로라면 승리가 지극히 불투명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손호철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1998년 정권교체와 2002년 대선에서 여당이 승리하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호남과 충청이 연대한 반영남연합이었다”면서 사면초가에 빠진 여당이 국면을 타개할 수 있는 방법과 관련, “충청과 호남이 대연합을 구성해 한나라당 고립구도로 가는 방법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손 교수는 그러한 구도로 가는데 고 전 총리가 중심축이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민주당은 정계개편을 추동하는 데 고 전 총리가 중심이 되는 것은 물론 정권을 재창출하는 데 고 전 총리가 유일한 대안이라는 입장이다. 즉 ‘민주당+고건+우리당’의 3자 연대를 기반으로 국민중심당까지 아울러 정국과 대선 국면을 선도해 나가겠다는 복안이다.

민주당이 5ㆍ31 선거에서 전남지사와 광주시장을 비롯해 5개 구청장을 싹쓸이하고 전북에서도 선전, 호남의 맹주 자리를 탈환한 것도 그 같은 기대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나아가 호남에서 우리당과 같은 호남출신 대권 주자인 정동영 전 의장의 영향력이 떨어진 것은 고 전 총리의 행동 반경을 넓혀주고 있다.

이처럼 고 전 총리가 정계개편의 한 축으로, 가능성 있는 대권 후보로 상종가를 치고 있지만 장밋빛 미래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정계개편의 향배에 따라 역풍을 맞을 수도 있고 장외 관전자로 머물러 있는 한 대선레이스에서 뒤처질 수 있다.

게다가 현실적으로 진입 장벽이 높은 것도 고 전 총리가 넘어야 할 과제다.

우선 친노진영을 중심으로 여권에 안티 고건세력이 상당하고 고 전 총리의 영입이나 민주당과의 합당에 반대하는 세력도 만만치 않아 내심 바라고 있는 집권당으로의 화려한 입성이 좌절될 수 있다.

더욱이 여권은 고 전 총리를 포함해 민주당, 소수 정당, 시민세력까지 모두 아우르는 반한나라당 연대에 중점을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래서 고 전 총리가 여권에 입성하더라도 경선을 거쳐 대권 후보가 된다는 보장은 아직은 없다.

또 여권 내부에서 추진중인 개헌이나 남북정상회담 등의 변수가 정계개편과 맞물릴 경우 고 전 총리의 정치적 위상은 흔들릴 수 있다.

민주당은 고 전 총리를 품으려는 입장이나 고 전 총리측은 민주당을 비롯해 소수정당을 흡수하고 여당과 담판지으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한나라당에는 박근혜ㆍ이명박ㆍ손학규 ‘빅3’의 입지가 탄탄해 고 전 총리가 들어설 틈이 없다.

그래서 고 전 총리는 당장 특정 정당과 손을 잡거나 정계개편에 발을 들여놓기보다는 외곽에서 세력을 모으는 방향으로 궤도를 잡았다. 실용적 중도개혁세력을 결집과 새 정치의 기치를 내세우며 내달‘국민연대’ 형태의 준(準) 신당조직을 발족시키는 것은 그 첫발인 셈이다.

정치 전문가들은 고 전 총리가 정계개편이든 대권 후보든 주인공이 되려면 먼저 국민의 선택을 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정치공학적으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보다는 국민에게 비전을 제시해 지지를 이끌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5ㆍ31 선거는 고 전 총리를 대권 도전 기회와 위기의 시험대에 올려놓고 있다.


박종진 차장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