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자들이 정보 생산해 공유하는 개방 인터넷… 블로그·UCC 진화

최근 삼성경제연구소에서 충격적인 보고서가 나왔다. 인터넷 강국인 우리나라가 웹2.0 시대에 인터넷 후진국으로 뒤쳐질 수도 있다는 전망이다.

이유는 인터넷의 평준화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웹2.0이 주도하는 사회와 기업의 변화’라는 보고서에서 “과거 인터넷과 초고속인터넷의 대표 사례로 한국 기업들이 언급됐으나 웹2.0에서는 미국 사례들이 주로 등장한다”며 “인터넷 보급과 서비스 개발이 전 세계적으로 평준화하면서 한국이 잊혀진 인터넷 강국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인터넷 평준화가 가능한 것은 웹2.0 덕분이다. 2005년 10월 미국의 IT전문가인 팀 오라일리가 명명한 웹2.0이란 서비스 제공업체 위주가 아닌 이용자들이 스스로 정보를 만들어 배포하고 함께 나누는 개방된 인터넷을 말한다. 한마디로 개방과 공유다. 1인 미디어 시대를 가속화시키는 강력한 신형 엔진인 셈이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웹2.0은 일시적 유행이 아니라 옛날부터 이상으로 여겼던 소비자 참여와 협업이 인터넷을 통해 구현된 것”이라고 정의했다. 따라서 누가 주도하지 않아도 네티즌들의 집단 지성으로 자연스럽게 확장될 수 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블로그2.0 시대

굳이 보고서를 들추지 않아도 요즘 인터넷은 웹2.0을 피부로 느낄 수 있을 만큼 빠르게 변하고 있다. 이를 여실히 감지할 수 있는 분야가 바로 포털이다.

요즘 포털 사이트들은 블로그를 중심으로 웹2.0 시대를 열어가고 있다. 여기 맞춰 이용자들이 메뉴를 자유자재로 꾸밀 수 있고, 동영상 같은 이용자제작콘텐츠(UCC)들도 손쉽게 가미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이름하여 ‘블로그 2.0’이다. 웹2.0 기술로 만든 블로그라는 뜻이다. NHN 관계자는 “블로그2.0은 날로 증가하는 UCC를 끌어들일 수 있는 가장 유력한 공간”이라며 “이용자가 늘어나면 포털들도 덩달아 자체 콘텐츠가 증가하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가장 먼저 포문을 연 곳은 750만 개의 블로그를 확보해 1위를 달리는 NHN. NHN은 1월초 ‘블로그 시즌2’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블로그 서비스를 선보였다. NHN 관계자는 “이번에 자유로운 디자인이 가능한 에피소드1을 공개했다”며 “올해 안에 에피소드4까지 차례로 공개하겠다”고 설명했다.

SK커뮤니케이션즈도 싸이월드를 웹2.0에 맞춰 대대적으로 개편한다. 1월 말이나 2월 초 공개 예정인 ‘싸이월드2’(C2)는 블로그와 미니 홈피의 장점을 결합한 1인 미디어 서비스다. SK커뮤니케이션즈 관계자는 “미니 홈피 이용자가 C2로 자연스럽게 넘어오도록 서비스를 확대할 계획”이라며 “아이템 판매 등의 수익 모델도 개발 중”이라고 강조했다.

다음과 야후도 발빠르게 변신 중이다. 다음커뮤니케이션은 블로그 전문업체인 태터앤컴퍼니와 손잡고 지난해 말 웹2.0 기술로 만든 ‘티스토리닷컴’ 블로그를 시범 공개했다. 야후코리아도 마찬가지. 디자인을 자유롭게 바꿀 수 있는 웹2.0 기반의 차세대 블로그를 1분기에 선보일 예정이다.

웹2.0 경영과 UCC 정치

포털뿐만 아니라 기업경영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인터넷을 활용해 제품 아이디어를 얻는 크라우드 소싱(crowds sourcing)이 속속 도입되고 있다. 크라우드 소싱이란 기업이 인터넷을 활용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고 제품의 문제점을 해결하는 것을 뜻한다. 미국 내 여행정보 사이트 윙버스는 여행자 블로그로 각종 정보를 소개하고 있으며 미국의 부동산 사이트 하우징맵스는 구글이 제공하는 지도서비스를 이용해 인기를 끌고 있다.

또 영화제작사 20세기폭스는 ‘엑스맨3’의 홍보를 미국 블로그사이트인 마이스페이스를 통해 시도했으며, 음반업계는 UCC를 통해 스타를 발굴하는 등 가전, 자동차, 보험, 완구 등 다양한 분야에서 크라우드 소싱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웹2.0이 정치에 미치는 영향도 상당하다. 대표적인 예가 지난해 8월 열린 미국 버지니아주 중간 선거. 공화당의 조지 앨런 상원의원은 유력한 당선 후보였다. 그러나 그는 경쟁자인 민주당의 짐 웹 후보진영에서 일하는 인도계 자원봉사자를 ‘원숭이’로 부른 동영상이 ‘유튜브’에 퍼지면서 인종차별자로 낙인찍혀 패배했다. 당시 미국 CNN은 “유튜브가 미국 정치에 혁명을 일으켰다”고 보도했다.

그런 점에서 12월 19일 치르는 우리나라의 대통령선거도 자유로울 수 없다. 정치권은 벌써부터 UCC 등 웹2.0이 불러올 사이버 선거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유권자들이 직접 만든 UCC가 여론의 방향을 좌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디지털 민주주의 시대를 예고하고 있다.

이를 의식한 듯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최근 UCC의 선거운동을 어떻게 볼 것인지에 대해 대략적인 입장을 밝혀 눈길을 끌었다. 중앙선관위 송봉섭 선거연수원 교수팀장은 “선거운동을 할 수 없는 10대 미성년자는 특정 후보를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동영상 UCC를 제작하거나 게시할 수 없다”고 밝혔다. 19세 이상의 네티즌도 법정 선거운동 기간인 23일 동안만 관련 동영상을 올릴 수 있다. 이 경우 동영상이 특정 후보에 대한 허위 사실이나 비방을 담고 있으면 안 된다. 네티즌이 자신의 블로그나 홈페이지에 특정 후보 사이트로 갈 수 있는 링크, 배너 등을 달아놓는 것도 선거운동 기간에만 허용된다.

그러나 동영상 UCC에 들어간 효과음이나 자막을 어느 수준까지 인정할지, 허위 사실이나 비방 내용을 담은 동영상 UCC를 삭제하지 않은 포털에 어떤 책임을 물을지는 아직 정하지 못했다. 네티즌 추천에 따라 해당 동영상이 자동으로 메인 화면에 노출될 경우 선거운동으로 봐야할지에 대해서도 입장을 정리하지 못한 상황이다.

웹2.0의 그림자

웹2.0 시대를 대표하는 UCC가 반드시 각광받는 존재만은 아니다. 무엇보다 잘못된 정보의 확산을 막을 제도적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 사생활 노출과 인신공격 등이 마구 퍼져나가면서 개인의 사생활과 명예를 훼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연예인들 관련 기사에 따라붙는 악의적인 댓글 등은 오히려 웹2.0 시대를 가로막는 암초 역할을 한다.

또 저작권 문제도 걸려있다. 소통의 경로가 자유화되고 넓어지다보니 엄연히 저작권을 지닌 콘텐츠인 데도 불구하고 무분별한 불법 복제가 판치고 있다. 미국의 대표적인 동영상 사이트인 유튜브는 엔터테인먼트 기업들에게 소송을 당하는 쓰라린 경험을 하고 나서 해당 업체들과 저작권 협약을 체결했다.

국내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판도라TV, 아우라 등 동영상 UCC 전문사이트에는 네티즌들이 TV 방송 프로그램을 마구잡이로 캡처한 동영상을 수시로 올리고 있다. 사이트 운영업체측에서 모니터링을 통해 수시로 걸러내고 있으나 이를 100% 해결하기란 불가능하다.

그런 점에서 불법 복제물을 유포할 경우 이를 차단할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와 처벌 내용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이에 앞서 스스로 불법 복제를 근절하는 네티즌들의 성숙한 시민 의식이 요구된다.


최연진 한국일보 산업부 기자 wolfpac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