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공직자 자제 대거 연루 의혹… 검찰도 수사 확대 의지

한명관 서울동부지검 차장검사가 10일 오후 동부지검 브리핑실에서 병역특례업체 비리 의혹 수사 중간 결과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세청 고위공직자 A씨의 아들(22)은 대학 재학 중이던 2004년 현역 판정을 받았지만 입대하지 않고 병역특례업체인 경기도의 화학회사 T사에 근무하고 있다. 그는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했지만 용접기능사 자격을 가진 산업기능요원으로 군 복무를 산업체에서 대신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초기 T사 생활은 군대 근무처럼 일정하거나 엄격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결근하는 날이 적지 않았고 출ㆍ퇴근도 일정하지 않았다는 게 T사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최근 병역특례 비리 문제가 불거지면서 A씨의 아들이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그가 부친 A씨의 힘을 배경으로 군에 가지않고 T사에서도 제대로 근무를 하지 않았다는 의혹이다.

병역비리를 수사하는 서울동부지검 형사6부(김회재 부장검사)는 고위 공직자의 자제 중 상당수가 산업기능요원으로 복무 중이거나 복무한 사실을 확인, 병역특례 비리 연루 여부를 조사 중이다.

검찰은 계좌 추적을 통해 금품을 제공한 증거를 확보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고위 공직자 자제들이 산업기능요원으로 근무하면서 제대로 근무를 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보다 효율적이라는 판단에서 이 부분에 수사 초점을 두고 있다.

서울동부지검은 병무청으로부터 지정업체의 근무 실태 등에 대한 광범위한 자료를 제출받아 병역법 위반 및 금품 수수 혐의를 수사 중이다. 검찰 관계자에 따르면 A씨의 아들과 T사의 비리 연루 여부도 수사 대상에 포함됐다는 전언이다.

병역법상 현역 입영 대상자가 산업기능요원으로 일하려면 관련 업종 자격증이 필요하고 복무기관은 34개월이다. 보충역은 자격증이 필요 없고 복무기간도 26개월로 짧다.

병역특례에 대한 선호가 높아가면서 그와 관련된 비리도 확산됐다. 특히 2005년 이후 현역대상자인 산업기능요원 수가 3분의 1 수준으로 줄고 심사도 엄격해지면서 사회 고위층을 중심으로 병역특례 비리가 기승을 부렸다.

최근 병무청이 권영세 한나라당 의원에게 제출한 ‘병역사항 공개자 직계비속 중 산업기능요원 복무자 명단’ 자료에 따르면 병역특례 업체에 근무 중인 4급 이상 고위 공직자의 아들 56명 가운데 15명 가량이 현재 다니는 회사의 업무 성격과 전혀 무관한 전공에다 관련 자격증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병역비리 실태도 다양하다. 권력, 금품 수수를 통해 병역특례업체에 근무하는 고전적인 수법 외에 주금(주식대금) 가장 납입을 통해 회사를 차린 뒤 특례업체로 지정받고 나서 돈을 뺀 뒤에 정원을 배정하는 이른바 ‘TO’ 거래, 지정업체 대표가 자신의 아들을 편입시키기 위해 다른 사람을 대표로 내세우는 ‘명의변경’ 방식 등이다.

검찰은 최근 정보통신업체를 운영한 P씨가 자신의 회사 대표이사를 다른 사람으로 바꾼 뒤 아들을 산업기능요원으로 편입시킨 단서를 잡고 수사 중이다. 검찰은 P씨가 병역특례업체는 본인이나 4촌 이내 혈족이 대표이사일 경우 채용을 제한하고 있는 병역법을 피하기 위해 ‘가짜 사장’을 내세운 것으로 보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의 측근으로 알려진 K씨는 아들을 자신의 회사에 병역특례자(보충역)로 근무하게 해 구설수에 오르면서 수사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다.

청와대 비서실 K씨의 아들은 현역 대상이었으나 산업기능요원으로 2004년 IT 업체인 H사(경기)에 근무하다 서울의 N사로 옮겨와 복무 기간을 마쳐 특혜 의혹을 받고 있다. 금융감독원 고위직 L씨의 아들 역시 산업기능요원으로 경기도의 S사에서 서울의 J사로 옮겨 근무하였다.

범여권 중진 J의원의 아들은 현역 대상이었으나 통신 관련업체 A사의 산업기능요원으로 근무했고 국정원 고위직 L씨의 아들은 전공(국제학)과 무관한 지방의 B 가전사에서 근무한 것으로 나타나 검찰의 사정권에 들어 있다는 후문이다.

그밖에 문화관광부 산하기관의 고위인사 Y씨는 장남과 차남 모두 병역특례자로 근무했으며 검찰ㆍ국정원ㆍ법원 등 권력기관의 전ㆍ현직 고위 인사, 그리고 청와대, 각 행정부처의 1급 이상 인사 중 상당수가 병역특혜 비리와 연루된 의혹을 받고 있다.

검찰은 그동안 압수수색했던 병역특례 업체 65곳 가운데 일부에서 금품수수 비리 등을 확인한 것으로 전해진다. 검찰 관계자는 14일 “3~4개 정보통신 업체에서 병역특례요원이 제대로 근무하지 않은 사실과 금품이 오고간 증거가 드러났다”며 “조만간 처벌 수위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 수사는 그 이후에도 범위를 확대하면서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끝없이 이어지는 사회지도층 아들의 병역비리가 이번엔 어디까지 진실이 드러날지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

고위직 아들 상당수, 전공과 무관한 업체 근무

병무청이 한나라당 권영세 의원에게 제출한 ‘병역사항 공개자 직계비속 중 산업기능요원 복무자 명단’에 따르면 5월 1일을 기준으로 부모가 4급 이상 고위 공직자인 복무자는 모두 56명이었다.

부모의 근무처별로 분석해보면 광역ㆍ기초단체 인사가 23명으로 가장 많고 법원ㆍ검찰ㆍ법무부 등 법조계 인사가 5명, 외교통상부가 4명, 정보통신부ㆍ행정자치부ㆍ경찰ㆍ국세청이 각각 2명씩이었다.

이 중 20여 명은 법학ㆍ상경계열ㆍ어문계열 등을 전공해 전공 분야와 관련 없는 업체에서 근무 중이었으며 전공과 자격증 및 업체가 모두 같은 분야인 경우는 10여 명에 불과했다.

병무청에 따르면 차관급 이상 고위공직자(134명)의 직계비속 125명 중 보충역 편입자는 30명으로 조사됐다. 이들 중에는 국정원, 과학기술부, 감사원, 국무조정실, 국세청, 중앙노동위원회, 국가보훈처, 청와대 비서실, 국가청렴위원회 등의 전ㆍ현직 고위 간부 자제들이 포함돼 있다.

검찰은 병역특례 비리와 관련 고위공직자들에 수사 초점을 맞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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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진 차장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