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형적인 백인 농촌 마을인 머스커틴은 경제 대국 중국의 차기 지도자 시진핑(59) 국가부주석과 인연을 맺었고, 세계은행 차기 총재로 내정된 김용(53) 다트머스대 총장을 배출했다. 소설가 마크 트웨인이 살았고, 노예제 반대 분위기가 강했던 머스커틴은 세계 경제를 주무를 인물을 낳은 명당인 셈이다.
달력을 27년 전인 1985년으로 돌려보자. 머스커틴이 낳은 천재 김용이 하버드 의대에서 한창 공부할 때, 허베이성(河北省) 공무원 시진핑은 머스커틴에서 농업기술과 가축사육을 배웠다. 의대생 김용은 가난한 사람을 위한 의료 구호 활동을 구상했고, 시진핑은 한 민가에서 신세를 지며 미국을 경험했다. 중국 차기 지도자가 된 시진핑은 2월 17일 머스커틴을 방문해 자신에게 호의를 베풀었던 주민과 만났다.
머스커틴 주민이 깜짝 놀랄 일은 3월에도 생겼다. 미국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 23일 세계은행 차기 총재로 머스커틴이 낳은 천재 김용 다트머스대 총장을 내정했다고 발표했다. 머스커틴 주민이 기억하는 한국계 꼬마 김용(미국명 Jim Yong Kim)은 어려서부터 남달랐다. 머스커틴 고교를 수석으로 졸업할 정도로 공부를 잘했던 총학생회장이었고, 미식축구 쿼터백과 농구 포인트가드로 활약할 정도로 운동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퇴계와 킹 목사 동경
아이비리그 명문 브라운대에 입학한 김용이 "철학과 정치학을 공부하고 싶다"고 말하자 치과의사였던 아버지 김낙희 박사는 "아시안계 미국인으로 성공하려면 자신을 먹여 살릴 기술이 필요하다"면서 "우선 의사가 된 다음에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조언했다. 아버지 권유대로 의사가 되기로 한 김용은 브라운대 생물학과를 우등 졸업한 뒤 하버드 의대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가난한 사람을 위해 어떤 일을 할 수 있나?" 이 질문을 항상 가슴에 품었던 의사 김용은 1987년 의료구호 사업에 뛰어들었다. 파트너스 인 헬스(Partners in Health)란 자선 의료단체를 운영하면서 페루와 르완다를 누볐고, 병마에 사경을 헤매는 환자가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 시베리아 감옥까지 달려갔다. 가난과 질병의 악순환을 끊고자 고군분투했고, 빈민촌에 갈 땐 꼭 아들을 데리고 다녔다. 가난한 사람이 어떻게 사는지 보여주기 위해서다.
김용은 남미와 아프리카 곳곳을 다니며 결핵, 에이즈와 싸웠다. 특히 약품 내성이 강한 결핵 퇴치에 특히 공을 들였고, 결핵 치료약 가격 내리기 운동을 통해 약품 가격을 90% 이상 낮췄다. 이런 방법으로 아이티 결핵환자 약 10만명이 목숨을 건졌다. 1991년 의학박사가 된 그는 1993년 하버드대 인류학 박사가 됐다. 아버지 말처럼 의사가 된 다음에 하고 싶은 봉사와 공부를 모두 해냈다.
세계를 바꿀 지도자
사회 정의를 위해 헌신하자는 결심을 실천할 때마다 그에겐 '동양인 최초'란 수식어가 생겼다. 그는 2003년 동양인으로선 최초로 천재상으로 불리는 맥아더 펠로상(2003년)을 받았다. 2004년엔 세계보건기구(WHO) 에이즈 국장이 됐다. 킹 목사가 흑인 해방을 위해 싸웠듯 그는 가난한 사람을 위해 에이즈와 싸웠다. 당시 30만명 수준이었던 개발도상국 에이즈 치료자 수를 130만명으로 늘린 덕분에 '에이즈 퇴치 전도사'란 별명까지 얻었다.
그 공로로 김 국장은 US뉴스&월드리포트가 선정한 미국 주요 지도자 25인(2004년)과 시사주간지 타임이 뽑은 세계를 변화시킨 100인(2005년)에 선정됐다. 당시 타임은 "세계를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한 사람이다"고 설명했다. 하버드대 교수를 거쳐 2009년엔 경쟁률 400대1을 뚫고 아이비리그 명문 다트머스대 제17대 총장이 됐다. 다트머스대 204년 역사상 첫 동양계 총장이었다.
1769년 설립된 다트머스대 에드 핼드먼 재단 이사장은 "김용 총장이 배움과 혁신, 봉사 등의 이념을 스스로 실천한 이상적인 인물이다"고 설명했다. 당시 미국 언론은 "미국 사회에서 인종 장벽이 하나 허물어졌다"는 표현을 사용했다. 아시아계 미국인 최초라는 명예는 다트머스대 총장에 이어 세계은행 총재로 이어졌다.
동양계 총재 선임 왜?
세계은행 총재는 백인 주류 인사가 독점해왔다. 백악관은 차기 총재 후보로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과 로렌스 서머스 전 국가경제위원회 위원장, 존 케리 상원의원 등을 검토했다. 그러나 중국, 브라질, 러시아 등이 총재를 개발도상국에서 뽑자고 주장하자 오바마 대통령은 이들의 불만을 잠재울 대안으로 한국계 미국인 김용 총장을 선택했다.
백인이 아닌 한국계가 세계은행 총재가 된다는 사실만으로도 미국 언론은 김 총장 지명을 파격이라고 해석했다. 티머시 가이트너 재무장관은 "전 세계에서 광범위한 지지를 받을 수 있는 후보를 찾았다. 오바마 대통령은 빈곤국 발전에 평생을 헌신했고 복잡한 문제를 창의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인물을 찾았다"고 설명했다. 김 총장이 아이티와 르완다에서 진흙을 발에 묻혀가며 일했던 경험을 이야기하자 오바마 대통령과 참모들이 감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동양계 첫 세계은행 총재 내정은 중국 등의 불만을 잠재웠다. 중국 관영 통신사 신화통신은 김 총장 지명을 '고무적'이라고 논평했다. 그러나 국제 사회는 김 총장을 반대하진 않지만 반기지도 않는 분위기다. 세계은행이 국제통화기금(IMF)과 함께 개발도상국 빈곤과 기아 문제를 모른 체하면서 선진국과 금융자본 이익에만 이바지한다는 비난 여론이 거세다.
빈곤국에서 저비용 치료모델을 만들어낸 의료 행정가 김 총장이 세계은행 총재로서 어떤 행보를 보여줄까? 김 총장은 27일 에티오피아를 시작으로 중국, 일본, 한국, 인도, 브라질, 멕시코를 차례로 방문해 각국 재무장관과 세계은행 운영에 대해 논의할 계획이다. 김 총장은 29일 영국 신문 파이낸셜타임스 기고문을 통해 자신이 전쟁으로 고통을 받았던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인 나라가 됐는지 설명했다.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6월에 취임할 세계은행 총재로 한국계 미국인 김용 다트머스대 총장을 내정했다. 김용 총장은 반기문 UN 사무총장에 이어 두 번째 한국계 국제기구 수장이 될 전망이다. 국제부흥개발은행(현 세계은행) 자금으로 산업화를 꿈꾸던 가난한 나라에서 태어난 김용 총재는 6월부터 가난한 나라 발전을 위해 기금을 운용하는 세계은행 수장으로 일하게 된다. 미국은 세계은행 설립을 주도했기 때문에 영향력이 절대적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미국 등 연합국 44개국은 1947년 7월 미국 뉴햄프셔 휴양도시 브레턴우즈에 모여 통화금융회의를 열고, 미국 달러를 기축통화로 삼고 전후 재건 사업을 위한 비용을 조달하기 위해 세계은행과 IMF 설립하자고 결의했다. 역대 세계은행 총재는 모두 미국인이 맡았고, IMF 총재는 예외 없이 유럽인이 맡았다. 최근 경제가 급성장한 중국, 브라질, 러시아 등은 이젠 미국과 유럽이 아닌 개발도상국에서도 세계은행과 IMF 총재를 뽑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미국은 세계은행 운영에 있어 거부권을 가진 유일한 국가이기 때문에 김용 총장이 세계은행 차기 총재가 되는 건 기정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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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준기자 ju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