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배
100% 수제품인 독일제 트럼펫인 프뢰벨은 밸브가 가장 부럽기로 정평이 나 있다. 국내 최초의 프리 재즈 트럼페터 (70)씨를 만나 그 부드러움은 장르의 경계를 뛰어 넘는 도약대로 변한다.

프리 재즈는 그에게 전부는 아니다. 그러나 자존심의 근거이며 존재 이유, 아니 그에 앞서 본능이다. 1970년대 후반부터 22세기까지 그는 부름을 거역하지 않고 있다. 그 경로는 한국에서 강태환으로 상징되는 아방가르드가 걸어온, 혹은 감내해야 했던 시간을 보존하고 있다.

1978년. 인기 음악인이기에 앞서 재즈맨이었던 길옥윤씨가 대한민국재즈동호회를 결성했다. 재즈가 하나의 사회적 세력으로서 막 태동한 것이다. 그 때 그는 강태환, 타악 연주가 김대환 씨 등 6명와 함께 공간사랑에서 전에는 없던 음악을 연주하고 있었다. 그는 모던 재즈를 추구하던 야누스와의 활동을 병행하고 있었다. 앞서 1970년대 들어 명동 로얄호텔 나이트클럽에서 강태환, 김대환 등과 섹스텟으로 유행 음악, 라틴 등을 연주하고 있던 시기의 바로 뒤다.

강씨가 맨 먼저 제안했다. "처음에는 뭐 저런 음악도 다 있나 싶어 시큰둥했으나, 회수를 거듭 하면서 고정팬이 생겨 났다. 특히 현대 무용쪽의 관심은 지대했다." 그러나 프리 재즈가 뭔지 전혀 몰랐지만 기존의 틀에 매이지 않고 뭐든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그로서는 좋았다. 10년의 공간사랑 시기가 그렇게 이어졌던 것이다. "재즈만 갖고는 도저히 살 수 없던 때,, 하나둘 떨어져 나갔지만 프리 재즈에 대한 열망으로 우리는 남았다."

그 정체 모를 열망의 실체를 명확히 알게 된 것은 1985년 처음으로 간 일본 땅에서 였다. 특히 프리 재즈 분야에서는 세계적으로 명성이 높던 일본의 재즈 평론가 소에지마 데루토 씨가 자신의 음악에 대해 핵심을 짚어 주는 것이었다. "당신의 솔로 라인은, 최상일 경우 프레이징과 톤 칼라가 빌 딕슨과 흡사하다"는 평이었다. 누군지 전혀 모른다 했더니 소에지마씨는 매우 놀랐다. 그의 무지에 대한 놀람이라기보다는 세계적 흐름과는 전혀 무관하게 독립적으로 일궈내고 있는 한국적 프리 재즈에 대한 놀람이었다.

당장 오카야마시 고라쿠엔 공원의 재즈 레코드점에 가서 너댓장 있던 그의 판을 다 구입했다. 그런데 그의 거동을 유심히 보던 주인이 사정을 듣고 나서는 "한 장 값만 받고 선물하겠다"며 전부 공짜로 주는 것이었다. 최 씨는 그 일을 아직도 감사한다.

그런데 더욱 놀랄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들어보니 정말 흡사해 그 자신이 놀랄 정도였다. 당시 프리 재즈 뮤지션이라면 오네트 콜먼, 돈 체리, 레오스미스 밖에 모른던 때 그는 도 다른 나와 그렇게 해후한 것이다. 그러나 음악적 주도권 등에 대해 내면적으로는 길항하고 있었던 트리오는 결국 해체됐다.

그러나 일본 최고의 귀를 감동시킨 인연은 강인했다. 1997년 그의 트럼펫에 매료된 일본의 음반사 칩찹레이블의 수에토메 다키오 사장이 프로듀서를 자처해 나온 앨범이 'Freedom'이다. 솔로 프리 재즈 곡 12작품이 수록된 그 앨범에는 일본측의 간청으로 프리재즈 버전으로 연주한 '아리랑'까지 수록돼 있었다. 거기에는 일본 사람들의 간청으로 '아리랑'까지 수록돼 있었다. 물론 프리 재즈 스타일로.

최씨는 지금 한국 프리 재즈는 후퇴로 본다. 한국 재즈의 미래와 관계된 전망이어서 허투루 들을 수 없다. "진정한 가능성 갖고 있는 무궁무진한 장르인 프리 재즈가 상대적으로 약세라면 한국에서 진짜 재즈는 발전하기란 힘들다." 그러나 마치 반면교사 같은 경험이 말하고 있는 것은 그렇다면 또 무엇인가?

2004년 일본 요코하마 Black Art Hall서 펼쳐진 '김대환 추모' 공연 때였다. 최씨를 비롯해 강태환, 강은일(해금), 허윤정(거문고) 등의 협연을 지켜 보던 일본의 한 평론가가 뛰어 오다시피 하는 것이었다. "오늘 연주 최고였다"며. 특히 그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최 선생은 양보를 많이 한다. 어떻게 해서든 상대의 음악을 뒷받침해 준다. 다시 봐야겠다."

확신컨대 그는 한국의 프리 재즈 맨 중 가장 부드러운 사람이다. "상대의 실수가 있어도 참을 줄 알아야 한다. 상대가 기분 나쁘지 않게, 좋게 이야기로 풀어야 한다." 그의 지론을, 그의 재즈는 실천하고 있다. 그것도 무한 자유의 영역에서. 그런 견지에서 스탠더드를 재해석한 2011년의 솔로 음반 ' When I Fall In Love'은 인간에 대한 두터운 믿음의 결과라고 밖에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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