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대선 경선주자들이 9일 김천실내체육관에서 있은 대구^경북 합동 연설회에서 다함께 무대에 올라 인사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문수, 김태호, 박근혜, 임태희, 안상수 후보. 연합뉴스
"우리는 2위 차지에 사활을 걸었다."

새누리당 현영희 의원과 관련한 공천헌금 파문이 정치권을 강타한 가운데에서도 새누리당 대선 후보 경선은 20일 최종 결선을 향해 다가가고 있다.

공천헌금 파문 속에서도 박근혜 전 비상대책위원장의 후보 선출은 확실시 되는 상황이다. 하지만 박 전 위원장의 후보 선출과는 별개로 세인들의 관심은 1위 보다 2위 자리에 누가 오를 것인가에 더 쏠려있다.

2위에 오르는 후보는 차차기 여권 주자에 가장 근접할 것이란 점에서 박근혜 전 비대위원장을 제외한 4명의 후보들은 한결같이 '은메달 따기'에 모든 역량을 총동원하고 있다.

현재 선두를 질주하는 박 전 위원장에 이어 김문수 경기지사가 2위권에서는 한발 앞서고 있고 임태희 전 대통령실장과 김태호 의원이 엎치락뒤치락하며 김 지사를 쫓고 있다. 안상수 전인천시장도 임 전 실장과 김 의원과 큰 격차 없이 바짝 뒤에 붙어서 추격 중이다.

여론조사 전문 기관인 한길리서치가 지난달 말 새누리당 대선 후보 경선에 나선 5명의 주자에 대한 지지율 조사 결과 박근혜 후보가 51.7%로 1위를 굳건히 한 가운데 김문수(8.1%)-임태희(2.7%)-김태호(2.5%)-안상수(2.3%) 후보 순인 것으로 나타났다.

전 분야에서 박 전 위원장이 타 후보들을 압도했으며 특히 충청지역에서 80%대의 높은 지지율을 보였다. 또 출신지인 대구·경북과 강원, 부산·경남 등지에서도 60%가 넘는 지지율을 나타냈다. 다만 서울과 인천·경기 등 수도권에서는 40%대의 지지율에 그쳐 박 전 위원장이 향후 대선 본선을 감안하면 이 지역에 대한 공략이 시급한 것으로 분석됐다.

나머지 4명의 후보들은 출신지 별로 순위가 바뀌었으나 이들 주자의 지지율 차이는 모두오차범위 내에 속한 것이라 사실상 큰 의미를 부여하기는 어렵다.

박근혜 공격하며 2위 노려

이들 비박 주자들은 박근혜 전 위원장을 공격하는 선명성 경쟁을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부각하고 있다. 특히 이들은 박 전 위원장에 대해 이번 공천헌금 파문의 책임을 언급하며 집중 공세를 펴고 있고 5·16 쿠데타 관련 언급과 최근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지지율 급상승으로 '박근혜 대세론'이 흔들리고 있다는 점을 단골 메뉴로 삼고 있다. 박 전 위원장의 약점을 집중 공략하면서 국민과의 소통을 바탕으로 '안풍(安風·안철수 바람)'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적임자는 자신이라고 저마다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먼저 김문수 경기지사는 최근 당내 토론회에서 공천헌금 파문과 관련해 비례대표 전체에 대한 조사 필요성을 제기했다. 당시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이 실질적으로 당을 주도했기 때문에 현영희 의원과 현기환 전 의원의 커넥션 이외에 다른 비리가 드러날 경우 이를 고리로 박 전 위원장을 몰아붙이겠다는 심산이다.

물론 박 전 위원장이 "야당도 아니고 여당에 몸담은 분이 마치 당 공천 전체가 잘못됐다는 식으로 이야기한다"고 반박하고 나섰지만 현 의원 공천헌금 진상조사위원회에서 이 문제는 계속 논란이 되고 있다. 다분히 '박근혜 흔들기' 차원이다.

김 지사는 이어 이명박 대통령과 이상득 전 의원과의 관계를 빗댄 '만사형통(萬事亨通·모든 일이 형으로 통한다)'을 인용해 '만사올통'(모든 일이 올케로 통한다)이란 신조어를 앞세워 박 전 위원장을 공격했다.

박지만씨 부인이자 박 전 위원장 올케인 서향희 변호사에게 상당한 힘의 비중이 쏠려 있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박 전 위원장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일축했지만 조어 자체가 세인들이 시선을 끌만한 것이어서 화제가 되고 있다. 향후 본선 과정에서도 야권에 의해 공격 포인트가 될 것으로 보인다.

5ㆍ16 쿠데타를 불가피한 최선의 선택이라고 언급해 논란이 됐던 박 전 위원장의 역사관도 빠지지 않는 공격 소재다.

김 지사가 "5ㆍ16이 헌법을 짓밟은 것은 사실 아니냐. 5ㆍ16이 쿠데타가 아니란 말이냐"라고 몰아붙였고 김태호 의원과 임태희 전 대통령실장도 5ㆍ16 쿠데타에 대한 입장을 재차 캐묻고 나서자 박 전 위원장은"모두 과거에 살고 있다"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기도 했다.

박 전 위원장의 소통 부족 문제도 비박 진영이 빼놓지 않고 지적하는 부분이다. 김 의원은 토론회에서 인기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패러디해 박 전 위원장을 '불통스타일'이라고 지적하며 공격했다. 우스꽝스런 몸짓과 함께 재미있는 리듬을 붙여 공격해 청중들의 웃음을 자아내긴 했지만 박 전 후보의 아픈 곳을 건드린 것은 분명했다. 이어 김 지사가 "박 후보와는 전화 통화도 안 된다"고 공세의 고삐를 조였다.

거듭된 공세에 박 후보는 "주변에서 전화가 안 된다고 말하는 게 하도 이상해서 (통화한 분들께) '제가 매번 전화를 받는데 어떻게 그런 얘기가 나오나'라고 물었더니 보도가 잘못 나간 것이라고 하더라"고 답한 뒤 김 지사를 쳐다보며 "전화가 안 된다는데 저한테 전화 하셨어요?"라고 역공세를 취했다.

다만 비박 주자 중에는 안상수 전 인천시장 만이 '박근혜 때리기'에 수위 조절을 하고 있는 편이다. 안 전 시장은 5·16 쿠데타와 관련한 논란에 대해 "박 전 위원장 입장에선 곤혹스럽겠지만 정답은 있다. 5·16은 쿠데타고 헌정을 중단시킨 건 명확하다"며 "일단 쿠데타임을 인정하고 부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이 잘한 게 많다는 걸 국민에게 설득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른 후보들이 박 전 위원장에 대해 날 선 공격을 하는 대신 안 전 시장은 조언을 하는 형태로 우회적인 압박에 나서고 있는 점을 알 수 있다.

김문수 현재는 2위지만...

이들 비박주자 중에서 현재까지는 김문수 지사가 2위에 가장 근접해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8월20일 최종 결선 결과가 발표되는 그날도 다른 3명의 후보와 김 지사의 격차가 지금처럼 유지될지는 미지수다. 대의원(20%) 당원(30%) 국민선거인단 현장투표(30%) 여론조사(20%)로 나눠 실시되는 대선 후보 투표 방식 상 선거 당일 후보가 얼마나 많은 지지층을 동원하느냐, 대의원과 당원 등 이른바 당심(黨心)이 어느 후보에게 근접해 있느냐, 박근혜 전 위원장을 지지하지 않는 층에서는 누구를 찍을 것인가 하는 등의 적잖은 변수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김 지사는 정몽준 이재오 의원이 중도 사퇴한 상황이기에 당내 비박 표(票)들이 자신에게 집중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김 지사는 '박근혜 때리기'에 공들여 왔지만 김태호 임태희 후보 등도 박 전 위원장 공격에 주력하고 있어 효과를 점치기 어려운 상황이다.

막상 투표에 들어갈 경우 지역별로 전망해보면 수도권은 아무래도 경기 도정을 맡고 있는 김 지사가 유리할 것으로 전망된다. 또 경기 성남 분당이 옛 지역구인 임 전 실장과 인천시장을 지낸 안 전 시장도 선전이 예상된다. 상대적으로 김태호 의원이 고전할 수 있다.

충청권과 호남은 이들 4명의 주자가 딱히 연(緣)이 닿아있지 않는 곳이라 혼전이 예상되지만 영남만큼은 경남지사를 지낸 김 의원의 우세가 예상된다.

또 김 지사도 경북 영천 출신에다 대구에서 고교를 나왔기 때문에 대구·경북(TK)지역에서는 약진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박 전 위원장이 이 지역 표를 휩쓸 것으로 보이기에 과연 얼마만큼 김 지사가 잠식할지 여부도 또 다른 관심사다.

이밖에 전체 투표의 20%를 차지하는 여론조사는 인지도가 크게 영향을 미치게 마련이다. 이 부분에서도 김 지사가 다소 앞서 있다. 결국 김태호·임태희 안상수 후보가 김 지사를 제치려면 사실상 동원 가능한 일반 국민(30%) 투표 부분에서 득표수를 올려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5년 후 내다보며 밑그림

이들이 2위에 목매는 이유는 '포스트 박근혜'의 자리에 가장 가깝게 위치할 수 있다는 점에서다. 현재 박 전 위원장 다음에 기회를 잡을 수 있는 인사로는 이번에 출마한 후보들 외에 정몽준 전 대표가 있고 소장파 그룹 중에 원희룡 전 의원과 오세훈 전 서울시장 정도가 도전 의사를 갖추고 있다. 이번에 출마 의사를 밝혔던 이재오 의원은 70대에 접어들어 현실적으로 재도전은 어렵다는 평이다.

따라서 이번에 2위에 오르는 후보는 무조건 다음 대선에서는 여권의 가장 유력한 후보군의 한 자리를 차지하는 셈이 된다.

여기에다 이들 차기 후보군은 황우여 대표 다음 번 대표 자리도 노려볼 수 있다. 현재 황 대표가 2년 임기를 다 채운다면 2014년 여름에 전당대회가 열린다. 김 지사도 남은 임기를 채우면 이 시기에 경기도청을 나오게 되기에 이 때 출마 자격이 생기게 된다. 물론 정몽준 전 대표가 재도전에 나설 수 있고 김태호 의원과 임 전 실장도 의욕을 가질 수 있다. 또 장외 소장파 인사들과 당내 중진들도 뛰어들 가능성이 있다.

이 같은 정치적 일정을 감안한다면 5년 뒤 경선을 위한 전초전이 지금 이들 비박주자 사이에서는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 셈이다.

5년 후를 감안한다면 이번 대선 본선에 박근혜 전 위원장이 나가 이기든 지든 관계없이 다음 주자는 거의 당연하게 반박(反朴ㆍ반박근혜) 노선을 걸어야 한다. 이는 지금 박 전 위원장이 철저히 반 MB 노선을 걷는 것과 맥을 같이한다.

지금 항간에서는 비박 주자들의 '박근혜 때리기'가 도를 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당이 합심해도 모자란 판에 유력 주자를 흔들고 있다는 비판에서다. 하지만 이들 마음 속엔 벌써 5년 후가 그려져 있다. 이 같은 미래 정치구도 아래 각자 첫 행보를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박근혜 전 위원장과 4명의 비박 주자들은 같은 공간에서 전혀 다른 목표를 놓고 싸우고 있다. 금메달이 확정적인 상황에서 누가 은메달리스트가 되느냐 여부는 5년 후의 새누리당 미래와도 상당 부분 연결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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