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야권 단일후보 안철수냐, 문재인이냐

지난달 29일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서울대학교 융합과학기술대학원에서 열린 후기 학위수여식에 참석한 안철수 원장.
안철수의 속셈
추석 5일 연휴중 민심 공략 노릴듯
민주당 입당도 저울질… 손해 없는 '꽃놀이패'

문재인의 뒤집기 전략
경선 압도적 1위로 지지율 상승 노려
"安 국정운영 경험 전무" 끌어내리기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 경선이 중반전에 들어서면서 당선자의 윤곽이 보다 선명해지고 있다. 당초 경선이 시작되기 전만해도 문재인 후보의 우세가 점쳐지는 상황이긴 했지만 손학규ㆍ김두관 후보의 추격세도 간단치 않을 것으로 여겨졌었다.

여기에다 손 후보와 김 후보가 2위권 경쟁을 벌이다가 전체 경선 결과 과반 득표자가 없을 때 치러지는 1, 2위 결선투표가 실시된다면 두 후보가 힘을 합해 문 후보를 제칠 수도 있을 것이란 전망도 조심스레 나왔었다.

하지만 8월18일 첫 경선지인 제주에서 문 후보가 2위권에 비해 더블스코어 차이로 압도적 1위를 차지함으로써 사실상 경선 판도가 첫판에 결정 났다는 분석이 나왔다.

지난달 30일 충북 청주체육관에서 열린 민주통합당 제18대 대통령 후보자 선출대회에 참석한 문재인 후보.
손 후보 등 이른바 '비문'(非文ㆍ비문재인) 후보들이 단합해 경선 룰의 불공정성을 제기했지만 이마저도 '근거 없음'으로 판명 나면서 오히려 문 후보의 독주 체제가 더욱 굳어지는 결과가 됐다.

실제 울산과 강원, 충북 등 당초 문 후보가 강세지역으로 꼽지 않던 곳에서도 1위에 오르면서 사실상 다른 지역 순회 경선을 무의미하게까지 만들었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경선이 절반도 채 안 지난 시점이지만 결국 문 후보가 50% 이상의 득표율을 올려 최종 결선 없이 후보 자리에 오르거나 설령 1, 2위 결선이 이뤄지더라도 무난하게 당 대선 후보에 오르지 않겠냐는 전망을 내놓는다.

물론 민주당의 최대 주주인 호남지역 경선이 남아있고 손 후보가 상대적 강세로 평가되는 수도권도 남아 있어 2위 후보의 대역전극 가능성이 완전히 가신 것은 아니다. 하지만 현 상황을 놓고 볼 때 문 후보에게는 점점 유리한 국면으로 전개되고 있는 반면 상대적으로 손 후보와 김 후보는 계속 코너로 몰리는 형국이다.

손 후보와 김 후보가 한 가닥 희망을 걸고 분투하고 있지만 이미 문 후보 캠프 측은 대선 경선 이후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과의 야권 후보 단일화 방안을 놓고 각종 아이디어를 짜 내고 있다고 한다. 전반적인 상황이 여권의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에 맞서 야권 후보로는 무소속 안철수 원장이냐 민주당 문재인 후보냐의 분위기로 흐르고 있다는 이야기다.

대세 탄 문재인, "역전 가능"

문 후보 캠프에서도 고민은 있다. 내부적으로는 안 원장과의 1대1 승부 구도를 놓고 궁리를 하고 있지만 대놓고 안 후보와의 단일화 이야기를 꺼내면 "경선도 끝나기 전인데 너무 오만하다"는 여론이 조성되면서 자칫 다잡은 당 대선 후보 자리가 위태로워질 수 있다. 그렇다고 손 놓고 당내 경선에만 주력하고 있으면 자칫 때를 놓칠 수도 있어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속도와 완급 조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문 후보 캠프 관계자는 "당초 경선 반환점을 돌고 후반부로 가면서 단일화 고민을 본격화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사실상 그 시기가 앞당겨졌다"면서 "경선 관리는 그대로 진행하되 기획팀 등 별도의 인원을 추려 안 원장과의 맞대결 준비에 착수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 후보는 경선 이전부터 안 원장과의 공동 정부론을 꺼내 들고 당내 후보 군중 가장 적극적으로 야권 후보단일화를 주장했다. 그러다 안 원장이 국정 비전은 물론 출마 의사조차 밝히지 않은 상태인데 단일화 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비판론이 일자 수위 조절에 들어간 상태였었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안 원장을 연대의 대상이나 함께 가는 파트너로 마냥 띄우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야권 후보 단일화 경선이 끝난 뒤 손을 잡을 때 잡더라도 일단 링 위에서 치열한 승부를 벌여야 할 상대라는 점에서 지금부터는 공세로 방향을 전환해야 할 판이다.

실제 당내에서는 안 원장의 아킬레스 건에 대해서도 집중 연구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당 조직이 없는 상태에서의 국정운영의 한계라던가 국정운영 경험이 전무한 안 원장에게 대한민국을 통째로 맡겨도 되는지에 대한 불안감, 새누리당의 공세에 방어하면서 역공을 펼쳐야 할 손발이 없기 때문에 본선에서 무기력하게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에게 질 수 있다는 점 등을 파고들면서 포화를 퍼 부을 준비를 하고 있다.

이들은 어차피 새누리당 박 후보를 겨냥해서는 힘을 합해야 하지만 그 때까지는 사력을 다해 승부를 벌여야 야권의 기세가 더욱 거세질 수 있다는 논리를 편다. 최근 논란이 됐던 안 원장의 룸살롱 발언과 관련한 행태와 안 원장 부인의 서울대 교수 임용 건 등에 대해서도 다각적으로 준비를 하고 있다.

하지만 캠프에서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일단 당내 경선을 통해 문 후보의 지지율을 대폭 끌어올리는 것이 급선무라고 보고 있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의 8월말 주간 여론조사에 따르면 '박근혜-안철수' 가상 양자 대결 결과 48.7%대 45.3%로 오차범위 내 박 후보가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박 후보와 문 후보의 양자 대결은 53.1% 대 37.8%로 여전히 작지 않은 차이로 박 후보가 우위를 점했다. 또 야권 단일 후보를 묻는 질문에도 문 후보는 안 원장에게 42.5%대 33.8%로 뒤졌다.

문 후보 입장에서는 이 정도 지지율로는 야권 단일 후보라는 마지막 티켓을 거머쥐기 어렵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때문에 이번 당내 경선에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하며 여론의 주목을 받으면 '컨벤션 효과'가 나타날 것이고, 이 경우 9월30일 이후 조성될 추석 민심에서 문 후보가 야권의 제1주자로 거론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을 갖고 있다.

안철수, 추석 앞두고 선언?

하지만 문 후보의 정치적 일정은 판에 박힌 듯 눈에 읽히고 있다는 점이 문제다. 반면 안 원장은 상대적으로 보폭이 자유로울 수 밖에 없다. 컨벤션 효과를 극대화 할 수 있도록 본인이 얼마든지 출마 선언 시기나 북 콘서트, 대학 순회 강연 시기 등을 조절할 수 있다.

안 원장 측 금태섭 변호사는 8월29일 언론 인터뷰에서 "함께 할 사람을 만들어 가고 있다"고 밝혔다. 안 원장은 입을 굳게 다물고 있지만 주위에서는 여전히 안 원장의 출마를 기정사실화 한 상태에서 보폭을 조금씩 크게 가져가고 있다.

여기에 일부 전직 의원들이 안 원장 캠프에 합류 의사를 밝히면서 도우미를 자처하고 있고 선진통일당은 대놓고 "함께 할 수 있으면 하자"는 러브콜을 보내고 있는 상태다.

현재 사회 유명 인사로는 최상용 전 주일대사와 법륜 스님, 박영숙 안철수재단 이사장, 이재웅 다음창업자, 박원순 서울시장과 민주당 김기식 송호창 의원, 김윤재 변호사,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등이 안 원장과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안 원장 주변의 말들을 종합해보면 출마 선언 시기가 9월말이란 게 대체적 의견이다. 이 때는 민주당 경선이 완전히 끝난 시기다. 결선 투표가 이뤄지더라도 9월23일에 끝나고 아니면 그 이전에 후보가 확정된다.

민주당 후보가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면서 전국을 도는 광폭행보에 한창 나서려는 때이므로 안 원장이 이 시기에 출마 선언을 하고 정치 행보를 본격화 한다면 그야말로 여론을 단숨에 자신 쪽으로 끌어올 수 있다. 더구나 9월29일부터는 본격적인 추석 연휴에 들어간다. 징검다리 연휴인 10월3일 개천절까지 감안하면 5일간의 황금연휴가 펼쳐지는 시기다.

안 원장이 9월27일이나 28일께 선언한다면 사실상 언론의 움직임이 뜸한 5일간 고향을 가거나 가족들과 얼굴을 맞대는 세인들의 화제는 단연 안 원장으로 초점이 맞춰질 게 분명하다.

당연히 민주당 입장에서는 최악이다. 국민적 관심이 일거에 안 원장에게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만일 안 원장이 야권 후보 단일화에 대한 언급 없이 제3의 길을 가겠다고 선언했다 치자. 민주당으로서는 대권을 통째로 새누리당 박 후보에게 넘겨주는 셈이 된다.

때문에 민주당은 불리한 조건이라도 모두 수용하면서 안 원장과 후보 단일화를 위해 힘을 기울일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안 원장은 민주당을 향해 야권 후보 단일화를 위한 각종 유리한 조건을 제시하는 등 한발 앞선 상황에서 협상을 벌일 수 있다. 안 원장 입장에는 꽃놀이 패를 쥔 셈이다. 물론 추석 이전 출마 선언 때까지 안 원장이 지금의 지지율을 유지해야 한다는 전제는 있다. 하지만 그 때까지 별반 정치적 변곡점이 있기 어려워 보이기에 이 같은 정치적 시나리오의 현실화 가능성은 높아 보인다.

승부는 아직도 예측불허

정치 환경은 안 원장에게 유리한 편이지만 그렇다고 승부의 무게 추까지 기울어져 있는 것은 아니다. 10년 전 노무현 후보도 여론조사에서 약간 우위를 보이는 것으로 평가 받던 정몽준 후보에게 역전승을 일궈낸 바 있다. 당시에는 두 곳의 여론조사 결과를 놓고 우열을 가리도록 했다. 여기서 친노 세력들은 여론조사 응답에 대비해 단단히 준비를 한 반면 정 후보 측은 상대적으로 느슨하게 임했다가 일격을 당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이번에도 어떤 방식으로 후보 단일화를 이루느냐에 성패가 달려 있다고 봐야 한다. 10년 전처럼 단순 여론조사로 하느냐, 지난해 박원순 서울시장의 경우처럼 통합진보당 후보도 포함시킨 뒤 선거인단을 꾸려 체육관 선거로 하느냐 등 여러 방법이 있을 수 있다.

지금은 안 원장이 여론조사 지지율 우위를 바탕으로 어떤 방식의 승부라도 승리 가능성이 큰 것으로 여겨지지만 통상 1대1 구도의 승부 결과는 예단하기 어렵다. 상당수 부동층과 무응답층이 약자에게 설 수도 있고, 사람을 보고 찍기보다 정당 조직 전체를 보고 지지할 수도 있다. 더구나 여론조사 방식으로 할 경우 친노 세력의 조직적 대응을 감안하면 오히려 민주당 후보 쪽에 승산이 있을 수도 있다. 지금의 지지율 격차가 큰 의미가 없다는 얘기다.

안 원장의 승부수는 결국 문 후보던 손 후보던 간에 야권 후보들을 더욱 멀찌감치 따돌려 놓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본선 상대인 박근혜 후보와 지금처럼 엎치락뒤치락 하는 정도의 지지율을 나타내야 야권 지지층의 안정적인 선택을 받을 수 있다. 박 후보에게 큰 차이로 뒤지는 것으로 나타나면 야권 지지층은 당연히 조직이 받쳐주는 민주당 후보에게 고개를 돌릴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염영남 한국일보 정치부 차장 libert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