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안 단일화 협상 파행… 문 우세 판세 흔들기 카드 오히려 자충수 가능성'아름다운 경선' 가치 훼손 양쪽 모두 치명상 될 수도새누리 "어부지리" 희색

안철수 무소속 대선후보가 16일 서울 종로구 공평동 선거캠프에서' 문재인 후보와 국민께 드리는글' 을 발표한 뒤 기자실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안철수 무소속 후보가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와의 단일화 경선 룰 협상에 앞서 작심하고 칼을 빼 들었다. 문 후보가 불공정 경선에 가까운 반칙 행위를 지속하고 있어서 이대로는 후보 단일화 협상을 계속할 수 없다고 잠정 중단 선언을 한 것이 그것이다.

안 후보 측은 14일 전격 협상 중단을 선언한 데 이어 15일에는 단일화 협상보다는 과정이 중요하며 그래야 정권교체가 가능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안 후보는 단일화 협상 중단 사태에 대해 "이대로 가면 대선에서 승리할 수 없다"면서 "(문 후보에) 깊은 실망을 했다. 단일화는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안 후보는 이어 "그 과정을 통해 양 지지자를 설득해야 한다"며 "(그래야) 선택된 후보가 정권 교체와 정치 혁신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안 후보 측은 민주당 발(發) `안철수 양보론' 등 마타도어(흑색선전)와 조직적 세몰이, 여론조사 영향력 행사 등을 `구태 정치'라고 규정한 뒤 문 후보 측의 제대로 된 사과와 책임자 퇴진 등의 시정 조치는 물론, 재발 가능성을 차단할 수 있는 단단한 단속을 주문했다.

그런데 안 후보가 칼을 빼든 모양새에 대해서는 각계 의견이 분분하다. 문 후보 측에서 경선을 겨냥한 조직적 움직임을 보인 것은 분명해 보이지만 그게 과연 안 후보 측에서 협상을 중단할 만큼 심대한 불공정 행위였느냐 하는 부분이다.

사실 문 후보 측의 물밑 움직임은 광의(廣意)로 해석할 경우 경선을 겨냥한 전략적 차원의 행위에 불과한 것으로도 볼 수도 있는 문제다. 특별히 강도 높은 네거티브 공세를 취한 것도 아니고 선거법에 위반하는 행위를 한 것도 아니다. 더구나 양보론 언급이나 조직적 세몰이 등은 지지율을 끌어올리기 위한 한 정파의 다양한 정치 수단 중 하나로 취급되기도 한다. 여기에 여론조사기관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부분은 아예 입증되지도 않은 것이다.

그런데도 안 후보 측은 이를 기정사실화 하면서 불공정 구태 행위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 때문에 새 정치를 외치며 출발한 안 후보가 오히려 구 정치인의 행위를 답습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安, 지지율 하락 반전 카드

사실 안 후보에 대한 양보론은 이전에도 불거졌던 사안이었다. 또 민주당 측의 안 후보 측 인사 비난과 자의적 발언 등은 안 후보 측이 협상 과정에서 민주당에 요구하면 충분히 시정될 수도 있는 사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 후보가 극약 처방을 내린 것은 분명 다른 메시지와 효과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해석이다.

일단 안 후보가 협상 잠정 중단을 선언함으로써 단일화 협상에서 정면 승부를 겨루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게 됐다. 문 후보 쪽으로 기운이 쏠리는 듯한 분위기를 자신 쪽으로 돌려 세우기 위해 협상 중단 카드를 꺼냈다는 이야기다.

단일화 국면에 들어서면서부터 문 후보의 상승세 조짐은 조금씩 나타났다. 한겨레신문과 리서치플러스가 지난 11∼12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문 후보는 박근혜 안철수 후보와의 다자 대결 구도는 물론 안 후보와 맞붙는 단일 후보 선호도 조사에서도 상승세를 그렸다. 두 조사 결과 모두에서 안 후보를 앞지르는 결과였다.

갤럽의 14일 조사에서도 다자대결 시 박 후보(39.0%)-문 후보(23.0%)-안 후보(21.0%) 순으로 나타났고 박 후보와의 양자 대결은 두 후보 모두 오차범위 내 접전 양상으로 분석됐다. 안 후보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문 후보와의 맞대결 조사에서는 문 후보가 46.0%, 안 후보가 34.0%로 나타났다.

이 내용만 보면 안 후보가 주창하고 있는 단일화 원칙으로 '본선에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를 이길 수 있는 단일화' 조건에도 오히려 문 후보가 적합할 수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따라서 이 같은 상황을 방치할 경우 야권 지지층으로부터 문 후보가 낙점을 받는 쪽으로 분위기가 흐를 수 있었다.

또 안 후보는 민주당 측의 여론조사 공작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지만 의혹을 받았던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리얼미터 측 관계자는 "거의 모든 여론조사 기관에서 문 후보가 안 후보를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그렇다면 문 후보 측이 전 조사 기관을 모두 매수했다는 것이냐"고 안 후보 측을 몰아세웠다.

어쨌든 안 후보의 이 같은 벼랑 끝 승부수가 일정 부분 유권자들의 마음을 흔들게 한 것에는 주효한 측면이 있다. 15일 일부 여론조사에서는 안 후보가 다시 지지율을 끌어올려 문 후보를 제친 것으로 나타났다. 야권 후보의 단일화 싸움이 다시 혼조세로 돌아선 것이다.

'아름다운 경선'에 치명타

문 후보는 안 후보 측의 강경한 입장에 즉각 사과의 뜻을 표명하면서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13일과 14일 잇따라 문 후보가 안 후보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

캠프 내부를 단단히 단속할 테니 후보 단일화 협상만큼은 깨지 말고 테이블 안으로 들어오란 애원을 한 것이다. 야권 원로 인사 등 재야 세력에서도 안 후보 측에게 협상 절차를 재개하라는 압박을 넣고 있다.

일단 중단된 단일화 협상이 문 후보 측의 책임 있는 조치 등으로 극적 재개하더라도 남는 문제는 한 두 가지가 아니다. 먼저 양측의 감정싸움이 노골화한 상황에서 얼마만큼 화학적 융합을 해낼 수 있겠느냐 하는 점이다. 앙금이 남은 만큼 양측이 봉합을 하더라도 대선을 위한 미봉에 그치지 않겠느냐 하는 지적이다.

더 큰 문제는 안 후보 개인의 이미지다. 안 후보는 새로운 정치와 기존 정치판의 개혁 등을 앞세운 신선한 이미지로 국민에게 다가섰고 그 부분이 높게 인정돼 지금까지 지지율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 협상 중단으로 이런 안 후보의 새정치 이미지에는 적잖은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분석이다.

이번 협상 중단 사태가 결국 어떻게 귀결되더라도 변하지 않는 중요한 사실은 담판이던, 여론조사던, 공동정부론이던 간에 두 후보 사이에서 '아름다운 경선'을 치러 국민적 감동을 이끌어내겠다는 복안은 일정 부분 상처를 입게 됐다.

깨끗한 승부와 패자의 깨끗한 승복을 통해 정권교체의 신선한 바람을 일으켜보자는 야권 핵심의 기대감이 훼손됐다는 것이다.

대선 승부의 중요한 무게 추인 중도층에서 "이런 행태가 무슨 아름다운 경선이냐"는 지적이 나오는 것은 두 후보에게 모두 치명적인 결과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그나마 야권 지지층 입장에서는 안 후보가 16일 문 후보 측에 민주당 혁신에 대한 실천 의지를 보여주는 것을 전제로 양자회동을 해 단일화 협의를 결론내자고 제안한 것에 기대를 걸고 있다. 안 후보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문 후보가 확고한 당 혁신에 대한 실천 의지를 보여 주면 바로 만나서 새로운 정치의 실현과, 얼마 시간이 남지 않은 단일화 과정을 어떻게 마무리할지 의논했으면 한다"고 밝혔다.

안 후보는 그러면서 "문 후보가 직접 단일화 과정의 문제점을 확인하고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며 "지금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실질적인 재발 방지책을 마련해 달라"고 강하게 요구했다.

이에 문 후보 측 우상호 공보단장은 "안 후보의 만남 제안에 환영한다"고 밝혔다. 따라서 금명간 이뤄질 두 후보 간 담판 협상에서 봉합의 그림이 그려질지 주목된다.

호재 맞은 새누리당

상황이 어떻게 되던간에 안 후보의 협상 중단 선언으로 가장 큰 혜택을 보는 쪽은 당연히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다. 박 후보 입장에서는 만일 문-안 두 후보가 간극을 좁히지 못해 협상이 결렬될 경우 대선이 3자구도로 치러지게 되면 더없이 고마울 따름이고 설령 곡절 끝에 단일 후보가 나서더라도 새로운 정치에 대한 희망을 갖는 기대감은 크게 한 풀 꺾인 형국이 됐기 때문에 반사 이익을 볼 것이란 계산을 하고 있다. 새누리당 내부에서는 "안 후보가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큰 선물을 준 격"이라면서 희색이 가득하다. 그러면서 단일화가 되더라도 파괴력은 생각만큼 크지 않을 것이라고 조심스레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새누리당은 문, 안 후보 측이 불협화음을 빚고 있지만 결국은 단일화를 성사시킬 것으로 판단, 단일화 자체의 문제점을 부각시키는 데 주력하고 있다.

안형환 선대위 대변인은 "정치쇄신이니 하는 말은 포장용이었고 결국 야권 단일화는 한 사람을 탈락시키기 위한 치열한 생존 경쟁일 뿐인 만큼 양측의 대립과 충돌은 불가피했다"면서 "설령 앞으로 협상이 재개돼도 이런 과정이 끊임없이 계속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 후보 캠프 관계자도 "야권 단일화는 본질적으로 친노(親盧) 부활을 위한 속임수"라며 "친노 후계세력이 혼자 정권을 쟁취할 수 없으니까 안 후보를 보완재, 불쏘시개로 이용하는 프레임이 바로 단일화"라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의 말에서 알 수 있듯 새누리당 내부에서는 박 후보의 본선 맞상대가 문 후보 쪽으로 조정되지 않겠느냐 하는 분석이 나온다.

새누리당의 공격 조준점에도 이 같은 분위기가 묻어난다. 그 동안 문ㆍ안 후보를 동시에 타격하거나 다소 안 후보 쪽에 무게를 둔 공격에서 벗어나 본격적으로 문 후보 쪽에 초점을 맞추는 모양새다.

김무성 총괄선대본부장은 13일 문 후보가 재직했던 법무법인 부산의 부당수임 관련 의혹을 제기하며 포문을 열었다. 김 본부장은 "문 후보가 재직한 법무법인 부산은 신용불량자 5만명의 채권을 연장해주기 위해 한 명당 14만원을 받고 간단한 서류를 써주는 등 부산저축은행으로부터 70억원을 챙겼다"며 "이는 문 후보와 친노(親盧) 변호사 친구들이 신불자들의 등골을 빼내 자신들의 잇속을 챙긴 신불자 게이트"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도 안 후보로 단일화가 이뤄질 가능성에 대해서도 적잖은 대비를 하는 눈치다.

결과적으로 새누리당은 설령 두 후보가 극적 봉합을 통해 단일화를 이뤄내도 이미 신선한 추동력은 상실했다고 판단하고 있다. 또 접점을 찾지 못해 끝내 협상이 결렬되면 박 후보에 유리한 3자구도로 치러지게 된다. 안 후보의 협상 중단 선언이 더없이 반갑기 그지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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