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레 2㎞ 이르는 삼한시대 수리시설 제방엔 수백년 노송과 수양버들사시사철 빼어난 경관 자랑 1월이면 민속대제전 열려빙판 위에서 빙어낚시 하노라면 겨울 추위가 저 멀리 달아난다

의림지 안에 작은 섬이 떠있다.
옛날 옛적 제천 북쪽의 어느 부잣집으로 스님이 찾아와 시주할 것을 청했다. 그러나 탐욕스럽고 심술 사나운 이 집 주인은 거름을 한 삽 퍼주었다. 스님은 그것을 바랑에 넣고 조용히 발길을 돌렸다. 이때 이를 보고 있던 며느리가 쌀 한 바가지를 스님에게 주며 시아버지의 잘못을 빌었다. 스님은 며느리에게 "조금 후면 천둥과 비바람이 칠 테니 빨리 산속으로 피하되 절대로 뒤돌아보지 말라"고 일렀다.

잠시 후 천둥이 울리고 세찬 비바람이 몰아치자 며느리는 스님의 말대로 산골짜기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집에 남아 있는 아이들이 생각나 집이 있는 쪽을 뒤돌아보았더니 천지가 무너지는 듯한 굉음과 함께 며느리의 몸은 돌로 변했으며 집이 있던 자리는 땅속으로 꺼져내려 물이 괴었다. 이때 물이 고인 집터가 의림지이며, 며느리가 변해서 돌이 된 바위는 우륵이 가야금을 타던 제비바위(연자암)라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물론 이는 후세 사람들이 지어낸 전설에 불과하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수리시설의 하나인 의림지의 조성 연대는 확실하게 알려져 있지 않지만, 벼농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삼한시대부터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김제 벽골제, 밀양 수산제, 상주 공검지 등과 거의 같은 시기에 만들어진 저수지로 보인다.

그 후 신라 진흥왕 때 악성 우륵이 개울물을 막아 둑을 쌓았으며, 그로부터 700년 뒤 현감 박의림이 보다 견고하게 새로 쌓았다는 말도 전한다. 1457년(조선 세조 3년) 정인지가 체찰사로 이곳에 왔다가 호서ㆍ영남ㆍ관동지방의 병사 1,500명을 동원하여 대대적으로 보수했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명승 20호로 지정된 유서 깊은 경승지

보물 459호로 지정된 장락동 칠층모전석탑
의림지의 규모는 만수면적 15만여㎡, 저수량 660여만㎥, 수심 8~13미터이며 호반 둘레는 약 2㎞에 이른다. 의림지는 1976년 충청북도기념물 제11호로 지정되었다가 2006년 명승 제20호로 승격되었다. 충청도지방의 별칭인 호서(湖西)라는 말도 바로 이 호수의 서쪽 지역이라는 뜻에서 유래한 것이다.

의림지는 유서 깊은 경승지로도 이름나 있다. 제방과 저수지 주변에는 수백 년 묵은 노송들을 비롯해 수양버들, 전나무, 은행나무, 벚나무 등이 숲을 이루어 아름다운 경관을 자아낸다. 또한 영호정, 경호루, 우륵정 등의 누정이 호반에 세워져 있어 운치를 더한다.

의림지 남쪽 제방 위에 있는 영호정은 1807년(순조 7년) 이집경이 세웠다가 한국전쟁으로 파괴되자 그의 후손인 이범우가 1954년 중건했다. 화강암 주춧돌 위에 건축된 정면 2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정자로 향토문화자료 12호로 지정되었다.

의림지 서쪽의 경호루는 1948년 세워진 정면 3칸, 측면 2칸의 2층 누각으로 목조 기와집 형태를 하고 있다. 아름드리 노송 숲에 파묻힌 자태가 아름다우며 향토문화자료 23호로 지정되었다. 의림지 동쪽의 우륵정은 우륵의 예술혼을 기리기 위해 그가 가야금을 연주하던 곳에 2007년 새로 세운 정자다.

사시사철 경관이 빼어난 의림지는 겨울철에도 찾는 사람이 많다. 바로 공어라고도 불리는 빙어낚시터로 유명한 까닭이다. 꽁꽁 얼어붙은 빙판에 구멍을 뚫고 빙어를 낚노라면 한겨울 추위쯤은 저 멀리 달아난다. 또한 해마다 1월이면 동계민속대제전이 열려 겨울 나그네들을 불러들인다.

수백 년 묵은 의림지의 노송 숲
장락사 옛터에 고고하게 서있는 칠층모전석탑

의림지를 오가는 길에 제천의 주요 문화재인 장락동 칠층모전석탑도 들러보자. 모전석탑이란 돌을 벽돌 모양으로 깎아 쌓아 올린 석탑을 말한다. 은 높이 9.1미터에 7층에 이르는 거대한 규모로 주위를 압도하듯 버티고 서 있다. 조성 형식과 수법으로 미루어 통일신라 후기 작품으로 추정되는 이 탑은 한국전쟁으로 인한 피해로 무너지기 직전에 있던 것을 1967년 해체 복원했다.

이 석탑 앞으로는 넓은 공터가 펼쳐져 있다. 삼국시대의 고찰이었던 장락사의 옛터로 밝혀진 장락사지의 일부분이다. 2003년부터 2008년까지 여러 차례 발굴조사를 벌인 결과 34개 동의 건물터와 담장터 및 우물터가 확인되었으며 기와류, 토기류, 자기류, 흙거푸집, 글씨 없는 비석(백비), 쇠솥, 쇠못, 자물쇠, 청동 숟가락 등 많은 유물이 출토되었다.

삼국시대에 창건된 이후 다섯 차례의 중창불사를 거쳐 조선 중기까지 존속했던 장락사는 17세기 무렵 폐사된 것으로 보인다. 가장 번성했던 고려시대에는 사방 오리에 걸쳐 회랑이 이어져 승려들이 눈비를 맞지 않고 수도했다는 말이 전해진다.

석탑 옆에 있는 현재의 장락사는 법해스님이 1964년부터 초막을 짓고 상주하다가 1971년 법당을 신축하면서 새 역사가 시작되었다. 그 후 관음전을 신축하고 대웅전을 보수했으며 2004년 옛 요사를 허물고 무애정사를 지어 오늘에 이른다.

# 찾아가는 길

제천 나들목에서 중앙고속도로를 벗어난 뒤에 단양 및 영월 방면 자동차전용도로-제천 교차로-세명대 및 법흥사 방면 왼쪽 길-제천북로-의림대로를 거쳐 의림지에 이른다.

대중교통은 전국 각지에서 열차, 고속버스, 시외버스 등을 이용해 제천으로 온 뒤에 의림지로 가는 시내버스로 갈아탄다.

# 맛있는 집

제천시 수정타운1차아파트 옆에 있는 아리랑토면(043-647-8658)은 메밀로 만든 충청도식 막국수의 일종인 토면으로 이름났다. 손님이 주문하는 즉시 면을 빼서 삶으므로 쫄깃쫄깃하고 담백한 맛이 일품이다. 시원한 동치미 국물도 입맛을 돋우며 추가 사리는 서비스로 제공된다. 토면에 볶은 쇠고기, 도토리묵, 야채, 지단, 김치무침 등을 더 얹은 토리면은 더욱 별미다. 맷돌에 갈아 솥뚜껑에 부친 녹두빈대떡과 꼬치갈비구이는 술안주로 제격이다.

의림지 빙어는 기생충이 없다.

호반을 따라 산책로가 드리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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