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3차 핵실험 강행 사실상 '핵보유국' 지위확보韓 '비핵화'-美 '비확산' 대북 정책 미묘한 시각차朴, 강·온 투트랙 전략 병행할 듯

북한이 3차 핵실험을 실시한 가운데 12일 서울 동작구 기상청에서 유용규사무관이 핵실험 관련 지진발생에 대한 브리핑을 하고있다. 홍인기기자
"북한은 '핵보유국'을 넘어 '핵무기 보유국'이 됐다. 이런 상황에서 '비핵화' 운운하는 것은 어불성설이고 불가능한 일이 됐다."

북한의 3차 핵실험 직후 국내외 상당수 북한 및 핵 전문가들은 그 같은 견해를 밝혔다. 이번 3차 핵실험으로 북한은 핵보유국의 역량을 보여줬고, 때문에 종래의 '비핵화' 정책도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정부 관계자와 일부 학자들은 북한의 핵실험 결과를 낮춰 평가하고 '비핵화' 가 여전히 유효하고 최선의 정책임을 강조한다.

이렇듯 북한의 3차 핵실험을 두고 극과 극의 견해를 보이는 것은 그만큼 이번 핵실험이 미치는 파장이 엄청나기 때문이다.

실제 북한의 3차 핵실험은 국내외적으로 큰 충격과 함께 많은 함의를 시사한다. 국제적으로는 이번 핵실험으로 인해 미국을 비롯한 관계국의 대북 정책이 완전히 달라지게 됐다. 즉,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할 것인가에 따라 '비핵화'전략을 고수할 것인지, 아니면 '비확산'이라는 전혀 다른 대북 정책을 수립해야 하는 상황이다.

김관진(오른쪽) 국방부장관이 12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에서 성 김 주한미대사와 제임스 서먼 한미연합사령관을 만나 북한의 3차 핵실험과 관련해 한미공조대응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신상순기자
국내적으로도 북한이 핵보유국의 입지를 확보함에 따라 20년간 일관되게 추진돼온 '비핵화' 정책이 기로에 서게 됐다.

진도 4.9냐 5.0 이상이냐

북한의 3차 핵실험 결과를 놓고 국가마다 묘한 입장차를 보였다. 우리 정부(국방부)는 북한이 핵실험을 한 12일 오전 "함북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에서 리히터 규모 5.0으로 추정되는 지진이 감지됐다. 폭발력은 10킬로톤을 넘는다"고 밝혔다. 하지만 곧바로 "다시 판단해 보니 진도가 4.9 정도며 핵폭탄 6~7킬로톤에 불과해 공격적인 핵폭발 수준에 못 미친다"고 말을 바꿨다

반면 미국을 비롯한 대다수 국가들은 3차 핵실험의 폭발력을 진도 5.0 이상으로 분석했다. 미국 지질조사국은 진도 5.1, 일본 기상청은 진도 5.2로 측정해 모두 우리 정부의 발표 수치를 상회했다. 심지어 독일 정부 산하 연방지질자원연구소는 북한의 3차 핵실험 폭발력이 진도 5.0을 뛰어넘는 40킬로톤(ktㆍTNT 1만톤 폭발력)에 달한다고 발표했다.

핵실험 당일 포괄적핵실험금지기구(CTBTO)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북한 핵실험 지진 규모는 5.0으로, 폭발력으로 환산하면 대부분 10킬로톤이 넘는 것으로 평가 받는다.

폭발력 10킬로톤은 국제사회에서 핵보유국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최소 기준으로 통한다. 서균렬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핵보유국을 일컫는 핵클럽에 명함을 내밀기 위해서는 최소 10킬로톤 이상의 폭발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의 북핵 전문가는 "6~7킬로톤의 폭발력만으로도 북한은 이미 절반의 성공을 거둔 셈"이라며 "만약 10킬로톤을 넘긴 것이라면 완전한 성공이나 다름 없다"고 말했다.

비핵화 정책 딜레마

북한의 3차 핵실험이 국내외적으로 주목을 받는 것은 북한이 사실상 '핵보유국'지위를 확보했기 때문이다. 한국을 비롯 세계 각국은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고 있지 않지만 이와 무관하게 북한은 핵보유국을 넘어 핵무기 보유국가로까지 위상을 높이고 있다.

이는 1993년 1차 북핵 위기 이후 20년간 진행돼 온 비핵화를 전제로 한 북핵 문제 해법의 틀 자체를 바꿔야 하는 상황이고, 2003년부터 가동해온 북핵 6자회담의 '한반도 비핵화' 목표가 무의미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더욱이 북한핵에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미국과 중국이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려는 듯한 행보는 한국의 대북 정책에 암운을 드리우고 있다.

실제 미국과 중국은 북한이 3차 핵실험을 할 것이라는 사실을 북한으로부터 최소 12시간 전에 통보를 받고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만일 북한 풍계리 핵실험장 입구의 한쪽이라도 선제 타격을 했다면 3차 핵실험은 불가능했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미국과 중국이 북한의 비핵화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향후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기 위해 일부러 방관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한다.

실제 미국은 버락 오바마 정부가 들어서면서 북한핵에 대해 전향적인 입장을 취했다. 주간한국 은 제2455호(2012년 12월17일자) '北, '핵보유국 인정' 위해 핵실험 강행' 제하의 기사에서 북한은 '핵보유국'을 인정받기 위해 3차 핵실험을 강행할 것이고, 미국은 북핵 포기 전략 대신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미국은 부시 정부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북한핵 포기 전략에 올인했지만 만족할만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고, 오바마 정부가 들어서면서 북한의 핵보유를 인정하되 안정적인 관리하에 두는 '핵보유국 인정' 전략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는 지난 12일 밤(현지시간) 오바마 대통령이 국정연설에서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무기들의 확산을 막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주도할 것"임을 천명하고, 존 케리 구무장관도 13일 기자회견에서 "미국의 메시지는 북한이 3개 유엔 결의안을 저버린 것이 아니라 이것(3차 핵실험)은 핵확산과 관련된 문제라는 것"이라고 말한 데서 묵시적으로 드러났다. 즉, 앞으로 미국의 대북 정책의 중심이 비핵화에서 '확산방지'로 중심이동할 개연성을 강력하게 시사한 것이다.

중국 역시 북한의 3차 핵실험을 앞두고 석유ㆍ식량 원조 중단과 북ㆍ중 관계 파탄까지 거론하며 북한을 압박했지만 핵실험 후에는 유엔의 강력한 제재에 반대하는 등 모호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선 한반도 비핵화를 정책적 목표로 상정하고 있는 한국과 '정책 목표 불일치'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특히 한국과 미국은 북한 정책을 놓고 정교하게 조율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홍현익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이미 북한을 비핵화시키는 것은 어려운 문제가 됐으며 미국의 정책도 비확산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 같다"면서 "비핵화 정책을 추진하는 한국과 비확산으로 이동하는 미국간에 북핵 문제에 인식 차가 생길 수 있는 만큼 일정 부분 정책적 조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北 장성택계 파트너 되나

북한이 사실상 핵보유국의 지위를 확보함에 따라 박근혜정부의 대북 정책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13일 "도발에는 반드시 대가가 따를 것"이라며 북한에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 박 당선인은 대통령직인수위 외교통일분과 국정과제 토론회에서 "북한이 3차 핵실험이 아니라 4차, 5차 핵실험을 하더라도 북한의 협상력이 높아지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북한이 핵보유국임을 주장하며 군축 협상을 하겠다고 할지 모르지만 오판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 당선인은 또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는 기본적으로 강력한 억제에 기초한 것이지 유화정책이 아니다"라며 "도발은 반드시 그만한 대가를 치르게 되고, 국제사회에 책임 있는 일원이 되고자 한다면 확실한 기회와 지원이 따를 것"이라고 해 북한에 대한 경고와 함께 남북 간 '신뢰'를 강조했다.

박 당선인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에 기반한 대북 정책과 북한핵에 강력한 입장을 취하는데 대해 대다수 전문가들은 긍정적인 평가를 한다. 다만 일각에서는 북한핵과 관련해선 전략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한다. 즉, 북한핵을 앞세우는 군부 등 집권그룹과 일반 북한주민을 구분해 상대하는 투트랙 전략이 요구되고, 사실상 불가능한'비핵화'에 얽매여 대북정책의 근간이 흔들려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북한 사정에 정통한 베이징의 대북 소식통은 "이번 3차 핵실험은 철저하게 군부의 작품으로 현재 북한의 변화를 실질적으로 주도하고 있는 장성택(국방위 부위원장)은 빠져 있다"면서 "박근혜 당선인은 향후 남북관계에서 대화 상대를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은 2012년 강성대국 진입과 관련, 사상ㆍ군사ㆍ경제 3분야 중 사상의 강성대국은 주체사상으로 이뤘고, 군사 강성대국은 3차 핵실험으로 핵보유국의 목표를 달성했고, 남은 것은 경제 강성대국인데 앞으로 이 부분에 집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북한은 어떤 일이 있어도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비핵화'를 시도하는 것은 무모한 일"이라면서 "다른 방법으로 비핵화 효과를 이끌어내는 게 현명한 정책"이라고 조언했다.

미국의 한 외교 소식통은 "북한은 이미 핵보유국인데 이를 부인하는 것은 억지"라면서 "오바마 정부가 북한핵 비확산 쪽으로 전략을 바꾼 것도 그(북한 핵보유국) 때문으로 한국이 '비핵화'정책을 고수하는 것은 명분에 부합할지 모르지만 현실적이지 않다"고 지적했다.

베이징의 북한 소식통은 "북한이 핵보유국 위상을 확보한 만큼 앞으로 경제 강성대국에 전력할 것"이라며 "이를 장성택계가 주도하고 있는데 장성택은 남한을 최고의 파트너로 생각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들 당 중심의 경제파와 경제남북경협이 활성화되고 북한에 대한 한국의 영향력이 커질수록 '비핵화'의 효과도 거둘 수 있다는 게 소식통의 전언이다.

2월25일 출범하는 박근혜정부가 핵보유국으로 무장한 북한을 과연 어떻게 상대할지 국내외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박종진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