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근혜 '국정 동력 떨어질라' 달래기… 원내 김무성, 원외 서청원 '투톱' 전망방통위 이경재 임명 신호탄중진·소장파들에게도 적절한 당근 가능성 높아MB때 임명된 공기업 사장… 퇴진 압박 자리 만들기 나서

김무성. 사진=연합뉴스
친박계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을 만든 1등 공신이면서도 정권 출범 과정에서 주요 공직자 인선이나 핵심 정책 입안 등에 소외돼 있던 새누리당 친박계가 다시 정국 운영의 중심에 서서 제목소리를 낼 태세다.

그간 친박계의 불만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새 정부 장ㆍ차관이나 청와대 보좌진 등 핵심 보직에 대부분의 친박계가 등용되지 못한데 이어 주요 기관장 초반 인선에서도 배제되자 친박계 내부에서는 "이렇게 천대받을 것이라면 무엇 때문에 대선 과정에서 그렇게 열심히 뛰어다녔나"라는 자조가 나오던 상황이었다.

실제 청와대 행정관에 임명된 한 친박 관계자는 청와대 보좌진이 대학 교수나 관료 출신의 전문가 위주로 구성되면서 이들을 중심으로 한 정국 운영 체제가 세워지자 사표를 내고 떠났다. "유학 준비 중"이란 이유를 댔지만 전문가 그룹 중심의 청와대 내에서 한계를 느껴 자리를 박차고 나온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이뿐만이 아니다. 아예 아무런 자리도 차지하지 못한 다른 친박 관계자들은 말도 못 꺼내고 속앓이만 하고 있던 터였다.

그러다 청와대가 주도한 조각(組閣) 등 주요 공직자 인선 과정에서 무려 7명의 후보자가 낙마하자 친박 내부에서 불만이 일제히 쏟아졌다. 인사 문제의 총책임자인 허태열 청와대 비서실장을 겨냥했지만 사실상 박 대통령에 대한 그간의 설움이 담긴 불평 섞인 질책이었다.

이 과정에서 친박계 중진인 새누리당 한선교 의원은 새로 임명된 장관이나 대학 교수 출신 청와대 수석비서관을 향해 "10년 이상 박 대통령을 모신 사람 앞에서 불과 석 달 모신 사람들이…"라고 질타했다. 김재원 의원도 "비서들이 책임 회피나 하고 있다"고 청와대 보좌진을 겨냥했다.

시청원
이 같은 움직임은 당 지도부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당청 간 소통을 강조하며 인사 실패에 따른 비난을 쏟아 냈다. 당을 찾은 허태열 비서실장은 연신 고개를 숙여야 했다.

친박계의 동요가 커지자 여권 내부에서 박 대통령에 대해 경고음을 울리기 시작했다. 여권의 한 인사는 "정권 출범 초 가장 확실히 대통령의 우군이 돼야 할 사람들이 쓴소리를 쏟아내면 청와대의 국정 운영 동력은 급속히 떨어진다"며 "여권 인사, 특히 친박계들을 다독이고 가야 한다"고 청와대 측에 의견을 전달했다고 한다.

친박들의 불평 불만이 팽배할 즈음해서 박 대통령이 나섰다. 먼저 당 지도부를 부르고 상임위원장단을 만난 데 이어 평 의원들과도 회동을 가졌다. 그리고는 야당 지도부도 청와대로 불러 현안에 대해 숙의하는 등 정치권과의 접촉면 늘리기에 열중했다.

여기엔 최근 잇달아 계속되고 있는 북한의 도발 위협과 관련해 '안보에는 당청이 따로 없고 여야가 나뉠 수 없다'는 명분도 있었다. 안보 상황에 대한 의견을 듣고 협조를 요청하는 모양새를 취한 것이지만 실제로는 여의도와의 간극 좁히기에 무게가 실려 있다.

전체적으로는 정치권과의 소통 강화로 볼 수 있지만, 그 속에는 소외감을 느끼던 친박계 달래기란 정치학이 들어 있는 것이다.

이경재. 사진=연합뉴스
그렇다고 밥 한번 같이 먹고 청와대 보좌진이 새누리당을 방문해서 이 사람 저 사람 만난 것으로 전체 친박들의 감정이 누그러질 것 같지는 않다. 이 같은 점을 박 대통령도 모를 리 없다.

때문에 향후 진행되는 공기업 기관장 및 임원진을 비롯한 인사나 주요 정책의 세부적인 방향성을 놓고는 상당 부분 당과 의논해서 결정하는 모양새를 취할 가능성이 높다. 박 대통령이 다시 친박들을 국정에 중심 부분으로 불러 주요 결정 과정에 참여케 한다는 것이다.

친박 주요 포스트 포진할 듯

친박들이 국정 운영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려면 역시 어떤 자리에 위치하느냐가 가장 중요하다. 때문에 장ㆍ차관 등 조각과 1기 청와대 보좌진에는 이름을 많이 올리지 못했지만 이어 교체되는 정부 여당 및 공기업 인선에서는 상당수 친박들의 진출이 예상된다.

박근혜정부의 핵심 축이라고 할 수 있는 미래창조과학부와 긴밀히 호흡을 맞춰야 하는 방송통신위원회 수장에 친박 4선 출신인 이경재 전 의원이 임명된 게 신호탄이다.

이완구. 사진=연합뉴스
또 4ㆍ26 재보선에서 당선이 유력한 부산 영도와 충남 부여ㆍ청양에 옛 친박계 좌장이면서 이번 대선에서 선대위 총괄본부장으로 활약한 김무성 전 원내대표와 범 친박계로 통하는 이완구 전 충남지사를 공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김 전 원내대표가 당선돼 여의도에 복귀할 경우 5선 의원이 되는 그는 단번에 차기 당 대표 0순위에 오른다. 과거 친박계 좌장이 다시 친박 천하에서 여당 대표가 된다는 것은 지금 황우여 대표의 수평적 리더십과는 현격한 차이가 난다.

적어도 내년 지방선거나 그 이후 상황까지 박 대통령과 호흡을 맞추며 당에서 다른 목소리가 나오는 것을 완전 차단한다는 의미다.

2007년 대선 후보 경선에서부터 박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도왔던 서청원 전 의원이 새누리당에 복당해 상임고문단에 포함된 것도 눈여겨 볼 일이다.

서 전 의원은 친박연대 대표 시절 특별 당비와 관련해 이명박정부에서 구속되는 비운을 맛보기도 했다. 박 대통령 입장에서는 서 전 의원에게 인간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빚을 진 셈이다. 때문에 서 전 의원의 새누리당 상임고문 임명은 향후 당의 권력지형도를 바꿀 수 있는 파괴력을 갖고 있다.

최경환
즉 원내에는 김무성, 원외는 서청원 전 의원이 무게중심을 잡고 박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철저히 보좌하는 역할을 맡을 것이란 전망이다.

이와 함께 다른 친박 중진 및 소장파들에게도 적절한 당근책이 주어질 가능성이 크다. 그 단초가 이명박정부에서 임명됐던 공기업 기관장들에 대한 퇴진 압박이다.

박 대통령은 이미 새 정부 국정철학과 맞는 인사들을 임명하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남은 임기와 상관 없이 주요 공기업 임원진은 자리를 비워달라는 이야기다.

강만수 산은금융지주 회장 겸 산업은행장이 사의를 전달했고 이지송 한국토지주택공사도 사표를 냈다. 이들을 필두로 소위 MB맨들의 사퇴가 줄줄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그 자리에는 친박계 원외 인사나 대선 과정에서 당 안팎에서 노역을 마다하지 않았던 박 대통령의 오랜 동지들이 상당수 임용될 수 있다는 게 정치권의 대체적인 관측이다.

벌써부터 특정 기관장에 친박 인사들의 이름이 하나 둘 나오고 있다. 친박들의 불만도 잠재우면서 동지적 관계로서의 끈을 유지해 정권의 안정적인 기반을 구축한다는 여권 핵심의 정치적 셈법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이주영
원내대표도 친박 품으로?

당장 5월 초 실시되는 원내대표 경선도 청와대 입장에서는 매우 중요하다. 친박계 의원이 나서고 비박 진영에서는 남경필 의원이 출사표를 던졌다. 김기현 의원도 도전장을 던져 4자 구도로 물밑 선거전이 한창 진행 중이다.

친박계에서는 최 의원과 이 의원의 단일화를 주문하고 있다. 같은 친박 내부에서 표 대결을 벌이는 모양새가 영 좋지 않은데다 두고두고 후유증이 남을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

아직은 양측이 끝까지 완주한다는 입장이지만 비박 진영의 지지를 한 몸에 받고 있는 남 의원의 기세가 간단찮다. 때문에 일정 시점에 최 의원과 이 의원의 단일화 이야기가 수면 위로 떠오를 수 있다는 관측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청와대의 입김이 작용할 수도 있다.

단일화만 이룬다면 최 의원이든 이 의원이든 간에 당선은 무난해 보인다. 현재 새누리당의 세력 분포상 친박계가 절대 다수이기 때문이다. 이 경우 러닝메이트로 참여하는 정책위의장도 당연히 친박 몫으로 떨어지는 셈이다.

당 지도부와 원내 지도부, 정책위까지 친박 핵심들이 거머쥔다고 보면 당 전체가 청와대와 '일체형 콤비'를 이루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박 대통령의 정국 운영 과정에서 적어도 여당 내부에서는 딴 소리가 나오기 어렵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남은 문제가 있다. 아직은 이른 이야기지만 박 대통령도 단임제 대통령으로서 어쩔 수 없이 임기 이후를 걱정해야 한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집권 당시 가급적 박 대통령을 제외한 친이계 후보군에게 정권이 돌아갔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을 테지만 결국 차선을 택해야 했다. 박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이왕이면 친박 후계자가 나서는 게 훗날의 안전을 보장받는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리 없다. 그러나 현 단계에서는 딱히 내세울 만한 잠룡도 뚜렷하지 않다. 상대적으로 친박 바깥에는 대선 후보 경선에 나선 경험이 있거나 언론에서 차기 후보군으로 이름을 올려놓는 이들이 적지 않다.

비박 진영에서는 정몽준 전 대표와 김문수 경기지사, 김태호 전 경남지사가 있고 소장파 중에서도 원희룡 임태희 나경원 전 의원과 오세훈 전 서울시장 등이 준비를 하고 있다.

이에 비해 친박계는 딱히 내놓을 만한 카드가 마땅치 않다. 충청권의 3인방으로 비유되는 이인제 정우택 의원과 이번 재보선에서 당선 가능성이 높은 이완구 전 충남지사 정도가 도전자 반열에 서 있을 뿐이다.

때문에 국정 운영이 안정기에 접어들게 되면 여권 핵심층에서는 그 때부터 서서히 차기를 위한 작업에 들어갈 수 있다. 물론 친박 내부에서 커 나갈 수 있는 후보군이 누구냐를 가려보는 것부터 시작한다는 이야기다. 친박 시대가 본격적으로 개막되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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